Kel
  1. - Suspense/Thr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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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글쓴이
웬디 워커 저/김선형 역
북로그컴퍼니
평균
별점8.9 (47)
Kel

...강간은 미국에서 신고율이 가장 저조한 범죄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신고된 강간 사건 중 실제로 해결된 건이 전체의 2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추정한다....p.55

 

성폭행과 기억에 관한 스릴러는 이 작품 말고도 찾으려면 여럿 있을터이다. 한 사람의 신체를 강제 침범하는 이 행위는, 피해자의 인생과 정신세계를 붕괴시킨다. 비극적인 것은, 범죄행위에 가담한 인간 뿐만 아니라 사건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다.

 

위 글을 읽자 새삼 느낀게, 최근에 두건의 성범죄 기사를 보았는데, 하나는 미국 상류층의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사건과 일본 민박에서 일어난 사건. 후자는 일본 예능에서, 남자가 운영하는 곳을 가다니 피해자가 조심성이 없었던게 아니냐..는 식으로 사회자가 말하고, 심지어 여성패널도 그런 식으로 발언해서정말 깜짝 놀랐는데, 전자 또한 좀 더 다른 수준이겠지란 예상을 벗어나 가해자의 변호사가 "왜 더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습니까"란 2차가해를 법정에서 하고, 학교 또한 책임벗어나기에 연연한지라 피해자인 예쁜 소녀가 눈물을 흘리다 강인한 어조로 싸워나가겠다고 해서 혼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아참, 또 일본 아베총리랑 친한 한 방송인이 20대여성을 또 성폭행하고 유야무야 넘어가 그녀가 직접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싸우겠다고. 일본에선 미국보다 더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현실임에도 (밑줄 부분은 각각의 동영상으로 연결되어 있음) 

 

[성범죄수사대 SVU]나 [크리미널 마인즈]를 보면 피해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가해자에 의해 굴복되었다는 것. 성적인 쾌락 이전에 가해자는 이렇게 지배, 굴복시킴에 쾌락을 느낀다는 것이었고, 이 작품 속의 소녀 또한 자신의 등에 새겨진 상처를 만질때마다 분노를 느낀다. 범인을 잡을 때까지, 잡아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이러한 트라우마를 소중한 누군가가 겪게 된다면, 당연히 분노를 느끼고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야구배트나 골프클럽을 움켜지고 가해자를 파괴해버리고픈 파괴본능에 따르거나, 피해자의 기억을 지워 아예 아무것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고 싶거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코네티컷의 작은 도시 페어뷰. 고급 자동차 대리점을 여럿 운영하는 사장 밥 설리번과 가까운 회사간부 톰, 그리고 클럽 운영직을 노리는 아내 샬럿 크레이머에겐 이제 십대에 들어선 예쁜 딸 제니가 있었다.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따라 파티에 갔던 소녀는, 자신에게 관심없는 남자에게 상처를 받고 억지로 술을 마시고 구토를 한다. 아이들은 구경거리났다 하며 조소를 보내고, 제니는 밖으로 나간다. 비틀거리는 소녀는 검은 스키마스크를 쓴 남자에게 끌려가 얼굴이 바닥에 쳐박힌채로 성폭행을 당한다. 모든 것이 끝난후, 소녀는 몸을 일으켜보려 하지만 나오는 것은 비명. 사람들이 달려오고 소녀는 병원으로 실려가 찢어지고 상처입은 부위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게된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에 끄면서부터 보고듣고 느끼는 경험을 한다. 우리 뇌는 이 정보를 처리해 기억으로 저장한다. 이를 '기억강화'하고 한다. 각사건에는 이에 상응하는 정서가 있기 마련이다. 뇌는 그 정서의 영향을 받아 화학물질을 분비하며, 화학물질은 그 사건을 적당한 캐비닛에 정리한다....굳게 잠긴 금속 캐비닛...그것은 나중에 겪은 사건들로 대체되거나 쉽게 환기되지않는다. 덜 도발적인 다른 사건들...얇은 종이 서류철 같은데 보관된다. 이런 시억들은 시간이 흐르면 다른 종이서류철에 묻혀버리고...서류세단기로 보내질 수 있다.....p.32

 

꽤 독특한 것이, 일종의 다큐멘터리와 같이 보여지고 진행된다. 이 모든 것들은, 7장에서야 소개되는, 존스홉킨스 의대수석 졸업자에다 엄청난 이력을 가진 정신과 의사 앨런 포레스터 박사의 시선에서 보여진다. 이 점이 바로 이 작품을 독특하게 만들며, 어쩜 리즈 위더스푼을 영화화에 끌어들인 요인일지 모르며 (난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tch, 1999)]가 떠올랐다. 실제 누군가의 머리에 들어가는 독특한 작품인데, 이 작품에는 포레스터박사가 기억에 대해 설명하는게 또 뇌 안에서 움직이는 인간형상들의 프로세스인지라.

 

 

기억들이 들어오고, 약품에 의해 기억들을 처리하는 인간형상의 직원들이 혼선을 겪고, 쇠캐비넛에 들어가는 서류가 있고, 아님 혼란으로 방치되고 어둠속에 잊혀지고..하는 그런 이미지가 그려진다), 또 누군가를 읽다 지쳐떨어지게 만들어버리게 만드는 요인일지 모른다. 반전에서 드러나겠지만, 앨런 포레스터 박사는 꽤나 응뭉스럽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우는 아버지 톰과 달리, 샬럿은 적극적으로, 어쩜 기계적으로 문제를 봉합, 원래의 세계를 재건하려고 강박적으로 나선다. 성폭행이란 기억이 장기기억, 쇠로 된 기억 캐비넷에 들어가기전에 인터셉트해 그 경험이란 서류를 분쇄기에 날려버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불에 데이면 머리와 몸이 다 기억하듯, 아프다는 기억은 지워졌어도 몸은 불을 마주대할때의 그 공포감을 기억한다. 불에 데이면 놀라고 아파해하고 연고를 찾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중간이 날라가자, 제니는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불안감을 쌓아간다. 가족을 제외한 이들은, 제니의 기억이 지워진 것을 모르고, 또 가족들은 제니의 모든 표정, 말에 일희일비한다. 결국 제니는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한다. 

 

목숨을 건진 제니, 이제 범인을 잡는 길 밖에는 없는데... 과연 다시 살려낸, 그 기억을 믿을 수 있을까?  

 

... 기억의 재편..사람의 기억은 떠올릴 떄마다 바뀌고, 바뀐 기억은 그대로 다시 보관함으로 돌아간다....p.158

 

주된 사건은 한 십대소녀의 성폭행 사건이며, 결국 그 범인을 잡기 위함이지만, 화자는 정신과의사. 피해자 소녀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 그리고 또 다른 환자들도 상담해야 한다. 그래서, 어찌보면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그러니까 트라우마틱한 기억과 이를 지우는 케이스를 다루는 다른 화자의 이야기가 끼어들게 된다. 게다가, 정신과의사인 당사자의 가족의 이야기까지도. 만약 어떤 분석을 위한 시료가 있다면, 이 화자의 이야기는 정말 오염이 가득된 시료와 같은 모습이다. 독자는 그 시료를 분석해서 순결한 결과를 얻어내고 싶어하기에, 이야기를 읽어가는 과정은 그닥 쉽지않다. Goodreads에는 별하나 짜리 리뷰에 달린 글에, 이 작품은 잘 씌여지지않았다...는 말이 있는데 (별 하나준건 취향이니 이해가 가나, 이 작품이 잘씌여진 글이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정말 영리하게 씌여진 작품이다.  맨엔딩에 가면, 중간과정에서의 관련없었던 것들이 결국 그냥 화자의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촛점이 맞춰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말 독특한 스타일의 심리스릴러이다. 직전에 읽은 [브로큰 그레이스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었던 작품)] 또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며 진실을 직면하는 작품인데, 이 작품에선 그 기억이 얼마나 의지하지 못할 수 있는지 하는 부분에 촛점을 둔다. 지워지고, 조작되는 기억. 그래서 나온 번역서의 제목. 꽤 마음에 와닿는게, 나도 꽤 힘든 첫사랑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했던 적이 있어서. 오빠의 동기인지라, 수년전 졸업생명단이 날아와 봤는데 당최 그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해 순간 나도 당황했다.

 

그리고, 원제인 All is not forgotten. 맨 마지막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원제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매번 똑같은 말을 해준다. 모든 게 잊혀지지는 않는다고. 이 말을 들으면 환자들은 안심한다. 전부 잊히지않는다는 것을 알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p.372

 

추억에 관한 엄청난 명작영화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에선 너무나 사랑했기에 상실감에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한다. 최근에 누군가는 혼밥러를 가르켜 사회적 자폐라며 인간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회피해선 안된다! 라고 말했던게 정말 어리석게 보이듯, 또 그가 완전 비유가 잘못했지만 (혼자 밥먹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뭐 그리 자기 시점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나 참) 일단, 말이 나왔으니, 누군가 회피하고 도망가는 거는 어리석으며 문제는 극복해야 한다! 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개인의 역량의 차이니까. 그래서, 문제를 극복하자! 라는 말보다는, 그러한 문제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말이 훨씬 더 문제 극복에 (어???ㅎㅎㅎ)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의 지인이 십여년간 아낀 반려견을 무지개다리로 건너보냈다. 부부의 사이도 이어주고, 엄청난 효도를 했던 그 개가 떠난뒤 상실감에 거의 발버둥을 치는 것에 난 너무 슬프고 너무 두려웠다. 나의 개는, 내가 가장 힘들때,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주차장에서 시동걸어놓고 울고 그럴때 나에게 와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나의 자존감을 끌어올려주었고, 나 자신이 신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난 걱정인형이란 별명처럼 미리 걱정을 하고 두려워하고 그랬다. 인간마다 실패 등에 있어 재기하는 반응이나 속도, 강인함 정도를 측정하면 나는 하위점을 받을 인간인데, 그래서 다시 겪을 상실감에 너무 두려웠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상실감은 극복되지않을 것이다. 감정이 되살아나 눈물이 나 당황스러울때의 대응방법을 알아내고 더 능숙하게 대처하게 될뿐. 난 아직도 그때의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당신이 잘 견뎌내길 바란다. 나도 잘 견뎌내길 바라는 마음이니까.' 그래놓고 내가 놀랐다. 나 의외로 상실감과 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구나. 내가 이미 아는 그 힘든 과정을 잘 보내고 싶기에, 비슷한 누군가가 그 아픔을 잘 헤쳐나가기를 응원하는거, 그게 내가 배운 방법이구나 하는 것을.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던 작품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거 같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p.s: 웬디 워커 (Wendy Walker)


Four wives, 2008


Social lives, 2009 


All is not forgotten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2016


Emma in the night,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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