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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7890
- 작성일
- 2011.11.1
엑스칼리버
- 글쓴이
- 버나드 콘웰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버나드 콘웰의 아서 왕 연대기 3부작
윈터킹, 에너미 오브 갓, 엑스칼리버를 주말 동안 읽었다.
내가 웬만큼 두꺼운 책 읽고도 뭐라 안하는데...
음- 이 책은 정말 두께가 사전급이다.
처음에 책을 받고선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는-_-;;;
영국 역사상 아서 왕은 켈트 족의 신화 내지는 전설 정도로 치부되는 듯 하지만
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원탁의 기사, 성배를 찾는 모험, 엑스칼리버, 마법사 멀린, 귀네비어와 랜슬롯, 아발론, 캐멀롯-로 인해
유럽사의 숨겨진 보물창고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수많은 영화와 심지어 애니메이션(희망이여~ 빛이여~ 아직 이 노래 기억한다)들이 아서 왕의 신화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가 여기서 유래한 것인 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실제 아서 왕 이야기는 중세 때 기독교적으로 각색되거나 부풀려진 부분이 매우 많다.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 3부작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리얼한 역사소설이라는 점으로 차별화 될 것이다.
기존 아서 왕의 전설을 군벌의 개념에서 새롭게 다루며
기독교적으로 각색된 부분을 말끔히 걷어내고 치밀한 고증 끝에
5~6세기 경 야만적이고 냉혹한 브리튼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우아하고 멋진 기사들의 무용담과 화려한 마법이 펼쳐지는 낭만적인 판타지가 아니라
피 튀기는 잔인한 전투와 음험한 드루이드의 주술, 복수와 암투, 지켜지지 않는 서약이 난무하는
원시적이고 무자비한 암흑 시대를 생생히 재연해낸다.
"치밀한 고증과 사실주의를 원칙으로, 신화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피와 살이 튀는 정통 역사 소설!"이란 문구가 딱 들어맞는다.
책이 워낙 분량이 많다보니 초반에 조금 지루한 면이 있지만,
주인공들이 얼추 파악되고 나면
영웅이라 여겼던 아서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을 아쉬워하지 않을만큼 속도감있게 읽히며
각각의 등장 인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샘솟는 것을 느끼게 된다.
둠노니아의 왕이며 브리튼의 대왕인 유서의 서자 아서는
조카 모드레드의 왕위를 위해 수호자가 되기로 서약하지만
밖으로는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는 색슨족을 몰아내고
안으로는 브리튼 왕국의 대왕 자리를 노리는 다른 부족과도 싸워야 한다.
게다가 아서는 브리튼의 평화를 위해 포위스의 공주 케인윈과 정략 결혼을 하러갔다가
헤니스 우이렌의 망명 공주 귀니비어와 사랑에 빠져 도주하고
그로 인해 포위스의 고르버디드와 싸워야만 한다.
이 이야기의 화자이자 아서의 친구인 전사 데르벨 카다른은
멀린의 마법으로 사랑하는 이를 얻고
그에 대한 서약으로 클러노드 에이든의 솥을 찾으러 다크로드로 떠난다.
성배를 찾으러 떠나는 여정보다 이쪽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다.
마법사 멀린과 여사제 니무에는 신들이 브리튼을 버렸기에 솥을 비롯한 잃어버린 열세개의 보물을 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데,
점점 힘을 얻어가는 기독교와 토착 켈트 신앙(기독교 입장에선 이교도)의 대립과 반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외에도 이시스, 미트라스 등 온갖 신앙들이 미신과 함께 범벅이 되었음직한 그 시대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만약 아서 왕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면 그 시절엔 이러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야심찬 귀니비어는 왕위엔 관심이 없는 아서에 실망해 란슬롯과 이시스의 신앙에 빠져 부정을 저지르고
아서는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이제는 색슨족을 몰아내고 평화로워지겠지 기대하며 무수한 전쟁을 하고
왕이 아닌 통치자로서만 역할을 다하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고
어리석은 조카 모드레드의 음모로 부상당한 채 떠나간다.
그 곳에 마법의 땅 아발론인지는 몰라도
늘 아서가 꿈꾸던 초속계의 사과나무 아래가 아닐런지.
그저 평화롭고 조촐하게 살고 싶었던 인간적인 모습 가득한 아서,
왕이 아닌 통치자로서 조국에 평화를 가져오려 그렇게 노력했건만
수없이 배신을 당하고 기독교와 이교도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마지막까지 신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브리튼을 통일하고 외세를 몰아내고자 했던 아서는
조악하고 궁핍한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단 느낌이 들 정도로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다.
백전백승하는 멋진 기사가 아님에도 아서는 매력적인 영웅이었던 것이다.
아서는 호수의 요정으로부터 엑스칼리버를 받거나 돌에서 뽑아낸 것이 아니라 그냥 멀린에게서 받았으며
원탁의 기사 따윈 없었고 그저 돌테이블이 있었으려나 평화의 약속은 말뿐이었고 실제로는 배신과 음모가 판을 치고
멀린은 미치광이라 해도 좋을만한 영감이며 자신의 제자이자 연인인 니무에에게 힘을 빼앗기기까지 하지만.
이 땀냄새, 피냄새 진동하는 이야기가 더 감동적으로 와닿는 것은 아마도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버나드 콘웰은 정말 리얼한 시대 묘사로 150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다.
역사 속에서도 만족할만한 고증으로 설득력을 주고
소설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 매혹적이고 장엄한 대서사시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는 아서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갖 등장인물들의 얽힌 사랑과 원한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스펙터클한 전투씬 외에도 지독한 사랑과 집착, 욕망에 대해 접근한다.
특히 화자인 데르벨의 운명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광기어린 집착과 집념으로 결국 적이 되고 마는 그의 연인 니무에의 삶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왜 그 시절 전사들은 죄다 "서약"에 그렇게나 집착했던 것일까.
(어쩌면 기사도라는 게 나타나는 중세 이전임에도, 역시 순진했던 것일까.ㅋㅋ)
뭐니뭐니해도 5~6세기 영국의 시대를 철저히 반영하여 기독교적인 거품을 걷어낸 버전의 아서왕 연대기 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
살아숨쉬는 등장인물과 야만적인 시대상을 제대로 표현한 저자의 필력이 주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어
매우 즐거운 책읽기였다.
난 웃고 말았다.
이 와중에도 그가 원하는 건,
홀 하나와 약간의 땅,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뿐이었다.
평생을 간직한 꿈이다.
그는 멋진 궁전을 가져본 적도,
권력을 누려본 적도 없다.
전쟁을 즐기기는 했다.
전쟁에 대한 사랑을 부인하려고는 했지만
그는 전투에 능했고 사고 전환이 빨랐다.
그로 인해 죽음의 전사가 되기도 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도,
브리튼을 통일하고 색슨족을 물리친 것도 군인으로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권력에 대한 혐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집요한 믿음,
서약의 신성함에 대한 집착으로,
하찮은 자들에게 그의 위업을 망치도록 허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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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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