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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의잠못이루는밤
- 작성일
- 2022.10.12
아무튼, 여름
- 글쓴이
- 김신회 저
제철소
‘여름은 늘 그런 식이다. 부푼 가슴으로 기다리면서도 정작 다가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입맛만 다시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예상보다 많은 추억이 쌓여 있다.’
- 본문 중, ‘이야기의 시작’ 중에서
여름을 향한 무한한 예찬으로 가득한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 <아무튼, 여름>은, 그간 읽어왔던 ‘아무튼’ 시리즈 책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그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예컨대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를 놓고 본다면 책이 품은 이야기의 주제이자 소재로 삼은 떡볶이를 향한 작가의 예찬이 떡볶이를 제외한 다른 음식들을 향한 비예찬이나 부정을 의미하지 않지만, 사계절 중 여름 하나만을 두고 굉장한 예찬을 벌이는 <아무튼, 여름>의 경우는 네 가지의 계절 가운데 여름을 중심으로 호와 불호가 명확하게 갈린다는 점에서 여타의 아무튼 시리즈들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즉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을, 특히 김신회 작가가 ‘구리다’고까지 표현한 겨울을 선호하고 예찬하는 이에게 <아무튼, 여름>은 어쩌면 불편하거나 아쉽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겨울을 사랑해마지않기에 나 역시도 여름을 향한 예찬을 넘어서 겨울을 향한 저주(?)까지 내 비친 <아무튼, 여름>이, 그렇게 호와 불호가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는 이 책이 처음에는 까슬까슬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튼, 여름>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무더위와 장맛비가 번갈아가며 기승을 부린 변덕스러운 계절을 오롯이 견뎌냈기에 이후에 찾아오는 겨울을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미국의 문학가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한겨울에도 우리의 마음속에 여름을 조금이나마 간직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겨울이 찾아와도 내 마음속에 여름을 나도 모르게 조금씩 간직해왔기에 나는 겨울을 애정할 수 있었나보다. 반대로 김신회 작가는 여름 안에서 알게 모르게 겨울을 조금씩 간직하듯 감내해왔기 때문에 여름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품을 수 있었나보다.
결국 내가 애정하고 선호하는 계절과 그렇지 않은 계절 간의 상호보완적 관계맺음을 통해서 우리는, 나와는 대척의 관계에 것들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여지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여름을 사랑하는 이는, 자신이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겨울을 필연적으로 감내해야만 재차 여름과 조우할 수 있다. 반대로 나처럼 겨울을 애정하는 이에게 여름은, 꺼려지더라도 필히 마주해야하는 관문과도 같다.
난생 처음으로 여름을 제대로 즐겨보겠다는 결심을 안고 올해 여름을 맞았다. <아무튼, 여름>을 읽기 전부터 이미, 내가 선호하지 않는 것을 감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선호하는 것을 더욱 의미 깊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준 사람 덕분에 가능해진 결심이자 준비였다. 여전히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훨씬 더 애정하고 앞으로도 계속 겨울이 오기만을 고대하겠지만, 이제는 겨울 이후의 여름도 더불어 고대하며 기다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가능해질 것 같다. 덕분에 그간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니 알아차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여름의 근사한 면들이 하나 둘 씩 솟아오르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여름과 같은 하나의 계절은 독립적인 계절이 아닌, 봄이 먼저도 아니고 겨울이 마지막도 아닌, 모든 계절이 시작과 끝을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순환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 본문 중, ‘여름을 완성하는 것’ 중에서
- 본문 중, ‘이야기의 시작’ 중에서
여름을 향한 무한한 예찬으로 가득한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 <아무튼, 여름>은, 그간 읽어왔던 ‘아무튼’ 시리즈 책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그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예컨대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를 놓고 본다면 책이 품은 이야기의 주제이자 소재로 삼은 떡볶이를 향한 작가의 예찬이 떡볶이를 제외한 다른 음식들을 향한 비예찬이나 부정을 의미하지 않지만, 사계절 중 여름 하나만을 두고 굉장한 예찬을 벌이는 <아무튼, 여름>의 경우는 네 가지의 계절 가운데 여름을 중심으로 호와 불호가 명확하게 갈린다는 점에서 여타의 아무튼 시리즈들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즉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을, 특히 김신회 작가가 ‘구리다’고까지 표현한 겨울을 선호하고 예찬하는 이에게 <아무튼, 여름>은 어쩌면 불편하거나 아쉽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겨울을 사랑해마지않기에 나 역시도 여름을 향한 예찬을 넘어서 겨울을 향한 저주(?)까지 내 비친 <아무튼, 여름>이, 그렇게 호와 불호가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는 이 책이 처음에는 까슬까슬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튼, 여름>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무더위와 장맛비가 번갈아가며 기승을 부린 변덕스러운 계절을 오롯이 견뎌냈기에 이후에 찾아오는 겨울을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미국의 문학가 헨리 데이빗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한겨울에도 우리의 마음속에 여름을 조금이나마 간직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겨울이 찾아와도 내 마음속에 여름을 나도 모르게 조금씩 간직해왔기에 나는 겨울을 애정할 수 있었나보다. 반대로 김신회 작가는 여름 안에서 알게 모르게 겨울을 조금씩 간직하듯 감내해왔기 때문에 여름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품을 수 있었나보다.
결국 내가 애정하고 선호하는 계절과 그렇지 않은 계절 간의 상호보완적 관계맺음을 통해서 우리는, 나와는 대척의 관계에 것들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여지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여름을 사랑하는 이는, 자신이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겨울을 필연적으로 감내해야만 재차 여름과 조우할 수 있다. 반대로 나처럼 겨울을 애정하는 이에게 여름은, 꺼려지더라도 필히 마주해야하는 관문과도 같다.
난생 처음으로 여름을 제대로 즐겨보겠다는 결심을 안고 올해 여름을 맞았다. <아무튼, 여름>을 읽기 전부터 이미, 내가 선호하지 않는 것을 감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선호하는 것을 더욱 의미 깊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준 사람 덕분에 가능해진 결심이자 준비였다. 여전히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훨씬 더 애정하고 앞으로도 계속 겨울이 오기만을 고대하겠지만, 이제는 겨울 이후의 여름도 더불어 고대하며 기다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가능해질 것 같다. 덕분에 그간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니 알아차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여름의 근사한 면들이 하나 둘 씩 솟아오르고 있다. 이제는 나에게 여름과 같은 하나의 계절은 독립적인 계절이 아닌, 봄이 먼저도 아니고 겨울이 마지막도 아닌, 모든 계절이 시작과 끝을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순환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 본문 중, ‘여름을 완성하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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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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