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기록

생명은 소중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9.10.14
낯선 전화가 왔다. 낯선 목소리가 낯익은 사람의 이름을 말할 때 난 불안해진다.
아버지가 내시경검사 받다가 큰병원으로 갔던 날도 그랬고,
내 동생이 사고쳤을 때도 그랬다.
119란다. 병원 응급실이란다.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내 어머니 이름을 말한다. 그리고 보호자냐고 묻는다. 난 그 때 차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러 어머니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때는 이런 걸 모른다. 그냥 뭔가가 나를 얼어붙어 버리게 만들고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제한다.
어머니는 길을 건너다가 (버스시간 놓칠까봐 급하게 무단횡단하셨다) SUV차와 부딪치셨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왼쪽 다리가 완전히 부러지셨다. 제법 무거운 가방을 메시고 장을 본 손가방을 드시고 시내에서 길을 건너시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차 바퀴에 깔린 상태로 운전자가 내려서 뭐라고 나무랐단다.
갑자가 예전 일이 떠오른다. 내 동생이 어릴 때 맞고 오면 어머니를 맞고 왔다며 때리셨다(속상해서 때리셨단다). 울며 집에 들어오는 동생을 어머니는 왜 맞고 다니냐며 때렸고 동생은 도망가지도 못하고 울었단다. 그 얘기를 어머니는 몇 번이고 하셨다. 나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맞아서 화나는데 집에 오니 어머니가 또 때린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낯선 전화번호에, 낯선 목소리에, 그것도 밤에, 그런데 낯익은 이름이 들릴 때, 난 그냥 얼어붙는다. 그 상황에서 대부분 나쁜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그건 내 숙명이다. 내가 '보호자'니까. 그건 구조요청이니까. 내 아버지, 내 동생, 내 어머니에게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어머니는 그날 입원하고 1차 수술을 받으셨다. 난 그날 병실에서 어머니 곁에서 불편한 밤을 보냈다. 새벽 5시 55분 전철을 탔다. 낯선 전화는 낯선 일들을 불러온다. 나 대신 간병해줄 동생을 데리고 왔다. 어머니는 벌써부터 짜증을 내신다. 나와 동생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와 동생에게 빨리 사라지던가 어디로 가란다. 사라지면 어쩔려고? 당분간 누워만 있어야 하는데. 대변과 소변을 누군가가 받아줘야 하는데 어쩌시려고! 비참한 기분일 것이다. 누워있는 사람도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난 이번에 또 다른 불안감이 생겼다. 과연 내가 저 상황이 되면 나는 누구에게 구조요청을 하고 누가 내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현재로선 없다. 아프지 않도록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난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으니..
간병인을 구했다(이제 좀 살만 하다). 그리고 손해사정인의 조언도 들어야지. 나는 제대로 보호자 노릇을 하고 있는 건가? 어차피 인생의 대부분은 '대응'이다. 그 수많은 대응의 폭격 속에서 내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하는 것이 희망이고 즐거움일 것이다.
글이라도 쓰니 위안이 된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
정경심 교수가 언급한 아래 시(박노해 '동그란 길로 가다')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갑작스런 고통과 불행을 맞은 사람들 또한 위로가 될 겁니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