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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소중해
  1. 일상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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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주도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날인 지난달 2월 4일(화) 밤 10시 38분쯤 고속터미널역에서 9호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면서 카메라를 9호선에 놓고 내렸습니다. 그리고 3월 13일(목) 오후에 강동구보건소 4층에서 잃어버렸던 카메라를 찾았습니다. 그 사이에 이 카메라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한 달이 지난 후에 카메라를 찾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카메라는 베터리가 방전되었을 뿐 온전했고 카메라 안에 든 사진들 역시 그대로 였습니다. 이런 기적같은 일이! 아직 살만한 세상일까요! 어제 본 '그랜드 부다페스타 호텔'에서 구스타프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도살장처럼 변해버런 잔혹한 세상에도 희망은 존재한다."


잃어버린 카메라 관련하여 제가 쓴 글 두 개를 링크합니다.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카메라 분실, CCTV 확인 과정

잃어버렸던 카메라 찾았습니다!


지난 두 개의 글만으로는 이 사건이 마무리된 것 같지 않아 (마치 밥먹기를 마치지 않은 것 같고, 리뷰를 쓰다 만 것 같아서) 마지막 조각퍼즐을 맞추는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결론은 저는 이번 사건으로 구스타프 같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됐고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잔혹한 세상에도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잃어버린 다음날에 CCTV 화면에서 어떤 남자가 손에 카메라를 들고 가는 것을 본 후에 저는 그 남자가 훔쳐갔을 거라고 단정했습니다 (수사를 진행한 경찰분들도 그랬을 듯). 그런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3월 21일(금) 낮 12시 조금 못되어서 전화가 왔습니다. 경찰서였습니다. 카메라를 찾은 후에 한번은 경찰서에 오라는 얘기를 들어서 그 전화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좀 달랐습니다. 그리고 곧 카메라를 돌려준 사람을 바꿔주겠다고 했습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그동안 불편했다고 합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 불려다녔다고 합니다. 저는 이때까지도 이 남자가 경찰이 연락하자 겁이 나서 수서역에 돌려줬거나 경찰과의 어떤 거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남자의 목소리는 화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억울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일단 그럴 의도는 없었고 미안하다고 돌려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례를 하고 싶어서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이날 오후에 경찰의 전화를 또 받았습니다. 이수역에 있는 지하철경찰수사대에 와서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때까지도 의심해서 수서역에 이 카메라가 도착한 날짜와 시간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습니다. 2월 4일 밤 12:03분경이랍니다. 아! 저는 이때야 이분이 훔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카메라를 잃어버린 날인 2월 4일 밤에 9호선을 타고 가다가 고속터미널역에서 저처럼 3호선으로 환승한 후에 수서역까지 가서 그날 밤에 수서역 역무실에 맡긴 것입니다.


그 후에 이분 아버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님 역시 화가 많이 나있지 않으시지만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단호하게 말하십니다. 사과를 안하면 고소할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편함을 드려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분실신고가 아니라 절도신고라서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분쯤 후에 그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미안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분은 사과 문자로 받아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화를 끊고 사과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날 3만원짜리 편의점 상품권을 MMS문자로 그분에게 보내드렸습니다.


그분은 1달정도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고속터미널역에서 카메라를 들고 수서역까지 가는동안 얼마나 갈등에 시달렸을까요? 그분이 만약 그 카메라는 돌려주지 않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그분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두고 내린 카메라를 주운 것이지요. 그러니 저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경찰분은 분실하신 분들 10명 중에 2~3명 정도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고 합니다. 


지하철수사대에 가서 경찰과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면서 난생 처음으로 경찰 명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사(경찰은 질문하고 저는 답하고) 역시 처음입니다. 그 경찰은 영장까지 발부된 경우는 처음 본다는군요. CCTV에 증거화면이 잡혔기 때문에 수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영장까지 발부되으니 그분은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더구나 그분은 공무원 시험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날 경찰서에 가기 전에 이 얘기를 했더니 어떤 사람은 지하철수사대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날 밤에 수서역에 카메라가 들어왔는데 그걸 왜 한 달이나 넘은 시간 후에 발견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지하철수사대에 가서 했습니다. 지하철 노선에 상관없이 분실물은 통합 관리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카메라에 제 이름이 붙어있지 않고서는 바로 알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말을 들으니 한달 가까이 제 카메라를 찾아주신 경찰분들께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여튼 이번 일로 저는 세상에 선한 사람들과 희망이 존재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확실한 증거도 없이 누군가(CCTV에 잡힌 그 남자가) 훔쳐갔을 거라고 단정해버린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래도 제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참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같습니다. 


제가 이 카메라를 찾으려고(못찾더라도 나중에 후회할 거리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몽땅 다 하려 했습니다. 그 중에 2012년 2월달에 이 카메라 A/S 받았던 니콘서비스센터에 전화해서 카메라 시리얼번호를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그쪽에서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시리얼번호를 즉시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꾸 다그치자 절차를 어기고 통화만으로 저를 믿고 시리얼번호를 알려준 그 니콘서비스센터 남자가 있습니다. 고맙기도 해서 저는 제가 만약 실제 그 카메라 주인이 아니면 어쩌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분은 제가 맞을 것이 확실하다면서 한번도 보지 못하고 통화만 한 저를 믿어주었습니다. 아, 세상에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 역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을 때 거기 갔다가 400만원짜리 카메라를 잃어버렸고 아직도 못찾고 있답니다. 저의 심정을 충분히 알고 계신 거지요. 그리고 통화 말미에 카메라 꼭 찾기 바란다고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아, 카메라 찾으면 그분에서 전화드리겠다고 했는데 깜박했네요. 전화드려야겠습니다. 


때로는 실제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기막힙니다.

때로는 실제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반전이 큽니다.

때로는 실제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교훈적이고 희망을 심어줍니다.

때로는 실제 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으로 이것을 느꼈고 이 글로 이 사건을 마무리지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제 카메라를 훔쳐갔다고, 제 카메라를 찾기 힘들다고 단정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제 카메라를 돌려준 그 분에게, 저에게 돌아온 제 카메라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어제 본 '그랜드 부다페스타 호텔'에서의 첫 장면처럼,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꾸며낸 이야기에 현실을 담지 못한다면 그 이야기는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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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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