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기록

생명은 소중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6.5.5
올해(2016년)는, 3월 20일에 텃밭농사를 시작했다. 그날 아침에 씨감자와 쌈채소 모종, 상추씨를 샀다. 쌈채소 모종은 이런 것들이다. 케일 4개(난 케일이 캐좋다), 오향상추 1개('다섯 가지 향이 난다' 해서 충동구매), 치커리와 청오크린 1개씩(같이 간 분이 사길래 호기심에). 거름을 뿌리고 땅을 뒤엎었다. 힘들었다. 씨감자를 칼로 두 조각 내서 한 줄에 5개씩 심었다. 모종들을 적당히 심고, 상추씨를 뿌리는데 미심쩍었다. 상추씨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렇게 작고 가볍고(불면 날라갈 게 확실) 없어 보이는데 이걸 심으면 정말 상추싹이 날까? 그래도 심었다.

그 이후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텃밭에 갔다. 내가 심은 것들이 어떻게 크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갈때마다 이것저것 충동구매하여 조금씩 텃밭 식구들이 늘었다. 추가로 늘어난 식구들은 쑥갓 모종 2개(쑥갓꽃 보려고), 딸기 모종 1개(이건 진짜 순전히 충동구매), 상추 모종 3개(씨뿌린 상추가 안나올 것을 대비하여), 들깨 모종 1개다.

올해 야심차게 심은 케일 4총사의 모습니다(3.25일).


감자를 제외하고 이 세 줄이 쌈채소의 전부다(4.10일). 가운뎃줄의 빈공간에 상추씨를 심었는데 나올 생각을 안해서 애가 탔다.

자세히 보니, 작은 싹들이 나와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4.10일). 근데 저게 상추인지 의심이 간다.

4월 17일, 첫수확했다. 그 전 주에 엄청나게 비가 내리더니 쑥쑥 컸다. 이날 얼마나 기쁘던지! 같이 수확한 분과 나는 연신 '와, 진짜 많이 컸다'를 반복하여 외첬다. 씨뿌린 상추싹이 안나와 마음을 졸이게 하더니, 4월 10일 뭔가가 올라왔다(내가 너무 깊이 심은듯, 고 힘없고 가벼운 것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행이고 반가웠다.
4월 24일, 열매채소를 심었다. 나는 찰토마토 4개(1,000원), 방울토마토 4개(1,000원), 안 매운 고추 1개와 청양고추 1개(같이 텃밭 하시는 분들이 주셨다), 가지 1개(파시는 분이 서비스로 주신 것)를 심었다. 이것으로 올해 상반기 텃밭은 완성체가 되었다(장마까지 이대로 간다).

왼쪽 중앙에 있는 파란 네모는 팻말이다. '카'는 카모마일이고, '바'는 바질이고, '깻'은 들깨이고, '??'은 모임에 갔더니 씨앗 4~5개 있는 걸 줬는데 무슨 씨앗인지 모르는 것을 심은 것이다. 그림을 대충 그렸다. 감자는 저렇게 윗쪽으로 쏠려 있지 않고 골고루 5등분하여 심었다. 다른 것도 그렇다. 원래 감자는 두 줄만 심으려고 했는데 옆밭 분이 안심는다고 해서 계획에 없는 감자 1줄이 더 생겼다. 감자는 6월 중순에 수확하고, 곧바로 고구마를 심을 예정이다.
위의 텃밭은 대략 3.3평이다. 10평짜리 한 고랑을 3분등 한 거니까. 3년째 텃밭농사를 해보니, 1인이 텃밭하기에는 이 정도 크기가 적당하다는 걸 알았다. 이 정도면 일 주일에 한 번 수확할 수 있다. 한 번 수확하면 혼자서 두 세 번 쌈싸먹을 수 있다. 쌈채소만 있으면, 된장과 김치만 있으면 한끼 식사가 가능하다. 거기에 국과 반찬 몇 개, 마늘과 고추가 있으면 풍성한 식사가 된다. 같이 텃밭하는 분은 쌈채소를 수확하고 목살 1근(600g)을 사서 두 번에 다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따라해보기로 했다. 난 목살 200g을 샀다. 난 이 목살을 세 번에 나눠먹었다. 그런데 목살은 내 취향이 아닌 듯 하다. 난 그냥 쌈채소에다 된장, 마늘, 밥을 싸서 먹는 게 더 좋다.
오늘 텃밭에 생소한 것을 심었다. 오늘 오전에 마리에띠님 집에 가서 접시(오로지 기부)를 드렸다. 새소리가 들리는 평화로운 집 밖의 탁자에서 얘기하고, 텃밭 구경했다. 마리에띠님이 '스윗 바질'과 '카모마일' 모종을 주셨다. 난 그걸 가져와서 오늘 내 텃밭에 심었다. 카모마일 모종 흙에 지렁이가 한 마리 있었다. 마치 알 속에 있는 듯 했다. 지렁이는 자신이 그 곳에서 이 곳으로 온 걸 모를 것이다.

텃밭이 이제 좀 풍성해졌다(5.5일).

쑥갓이 너무 왕성하게 자란다. 옆에 있는 상추가 불편해할 것 같다. 그래서 좀 이동시켰다(5.5일).

케일 4총사다. 힘세고 유능한 장수들같다. 안타깝게도 케일 하나가 누군가의 습격으로 구멍투성이가 되었다(5.5일).

고추는 딱 2개만 심었다. 매운 것과 안 매운 것. 그리고 가지 1개, 토마도 8개. 토마토는 장마철을 지나 10월까지 수확할 수 있다. 그리고 토마토 수확하는 재미와 보람이 상당하다. 그리고 토마토향이 참 좋다(5.5일).

오늘 감자잎에 무당벌레가 있는 걸 발견했다. 상추가 크면 달팽이도 보일 것이다. 케일 4총사 중에 하나가 누군가의 습격으로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나말고 케일을 약탈하는 다른 이가 생긴 것이다. 나에게는 경쟁자다. 그 경쟁자는 나처럼 케일을 캐좋아하는 것 같다(다른 건 안건드렸다). 범행풍경이 그려진다. 마치 자기 소유물인 양 와서 케일을 마음껏 배부르게 먹고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 경쟁자는 일관성과 예의가 있는 듯 하다. 케일 4개 중에 1개만 초토화시킨 것이다. 다른 케일 3개는 안 건들었다. 고맙게도.. 나는 이제 풀들에 대한 적의가 깊지 않다.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풀들도 없어져야 하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안다. 곤충들이 내가 키우는 채소를 좀 먹으면 어떤가. 다 먹어치운다면 곤란하지만 내가 먹을 걸 남겨둔다면 난 곤충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저 씨와 모종을 심고 가끔 물을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싹이 나고 줄기와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 이건 모두 햇빛, 바람, 흙이 한 것들이다(아무리 생각해도 식물이 자라는 건 마법같은 일이다). 내가 키운다고 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내가 먹을 정도만 남아있다면 곤충이 먹어도 난 크게 상관안한다. 풀들도 내가 심은 것들 부근만 뽑는다. 나머지 풀들은 적당히 뽑거나 남겨둔다. 알고보면 그들도 나와 같은 생명이다. 살려고 생명을 걸고 있을 것이다. 사람도 비슷하다. 미운 사람이 있다. 얄밉고 못된 사람이 있다. 그런데 미워하면 본인만 손해다. 미워하면 할수록 본인만 힘들다. 미운 사람과 하루종일 붙어있을 순 없어도 그냥 가끔 어울릴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쉽지 않겠지만. 풀들과 곤충들과 같이 텃밭 수확물을 공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미운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고 생명이다. 그의 미운부분이 존재하지만,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만나면 기분나쁜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적게 만나도록 하고 피할 수 없을 때는 적당히 부딪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쉽지 않겠지만.
오늘, 쑥갓이 너무 자라서 그 옆에 있는 상추모종을 5cm정도 이동했다. 그때 흙속에 제법 큰 지렁이가 있었다. 내 텃밭이 내 것만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리고 과연 이 텃밭을 내 텃밭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나는 그저 약 3.3평의 땅에 모종 몇 개와 상추씨를 뿌리고 가끔 물을 줄 뿐이다. 그 3.3평의 땅속에는 지렁이, 지네 등 다양한 생물들이 살 것이다. 그리고 벌과 나비와 무당벌레 등이 내가 심을 작물들에 와서 볼 일을 보고 갈 것이다. 난 그저 모종 몇 개 심고 가끔 와서 물주고 약탈해가는 존재일 뿐이다.
이번에 새로 심은 것들은 딸기, 오향상추, 치커리, 청오크린이다(케모마일, 스윗바질 제외). 딸기는 언제 열매가 맺을지 모르겠다. 작년에 그 비싼 ??(갑자기 기억이 안남)를 심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마음을 비우고 있다. 치커리는 길쭉해서 쌈싸먹을 때 볼륨감이 적어서 만족감이 적다(좀 쓴맛은 마음에 든다). 청오크린은 아주 만족하며 먹고 있다. 씹는 질감도 좋고 톱니모양도 독특하다. 어서 빨리 쑥갓꽃을 보고 싶다. 다음에 텃밭 갈 때 페퍼민트를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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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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