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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j8284
- 작성일
- 2020.5.14
동물농장
- 글쓴이
- 조지 오웰 저
스타북스
<요즘 책방~책 읽어드립니다>에서 방송되었던 <동물농장> 회차를 보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지 오웰의 <1984>는 먼저 읽어보려 했는데 미처 다 못 읽었던 적이 있어요.
<1984>가 그리는 디스토피아 세계가 숨막히게 다가왔고 실제로 그런 세상이 현시점에 구현되고 있는 모습에 소름이 돋아서 손에 잘 안 잡혔어요.
<동물농장>은 <1984>보다 먼저 쓰였다는데 순한 맛 버전이네요.
사람이 아니라 동물로 묘사해 풍자했다는 것만으로 술술 읽혔어요.
이걸 다 읽고나니 <1984> 읽기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이번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줄거리 소개를 할게요.
메이너 농장에서 평소에 소홀한 대우를 받고 있던 가축들이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호소에 힘입어 반란을 일으켜 농장주 존스와 관리인들을 내쫓고 동물들 스스로가 농장을 경영한다. 농장의 이름도 <동물농장>으로 바꾼다. 비교적 지능이 발달한 돼지인 나폴레옹, 스노볼, 그리고 스퀼러의 지도와 계획 아래 모든 동물들은 평등한 동물 공화국 건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돼지들의 주도하에 일요회의도 열고 문맹 퇴치의 학습시간도 갖게 되어 말과 오리새끼에 이르기까지 주인 의식을 갖고 농장의 운영에 참여하게 되어 그야말로 평등의 이념에 입각한 이상적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풍차 건설을 계기로 동물들 사이의 권력 투쟁이 노출된다. 이상주의자 스노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축출된다. 나폴레옹은 간교한 스퀼러를 대변자로 내세워 동물들을 설득도 하고 조작도 하며 개 9마리를 앞장 세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완전한 독재 체제를 세운다. 농장 운영의 방침도 바뀌어 중의를 모으던 일요회의도 폐지되고 모든 일은 나폴레옹과 그의 측근들이 임의로 결정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원래 스노볼의 계획이었던 풍차의 건설을 빙자해서 동물들의 자유를 허물어뜨리고 존스가 다시 쳐들어온다는 위험, 스노볼에 대한 반동 낙인, 동물들의 내적 불만을 외적인 공포 분위기로 제압한다. 돼지들은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동물을 첩자로 몰아 숙청하기도 하고 옛날처럼 작업량을 늘이고 식량 배급을 줄이기로 한다.
반면에 나폴레옹을 둘러싼 지배계급은 존스 시대의 인간보다 더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서 호의호식한다. 그들은 존스 부부가 살던 집으로 이사해서 술을 마시고 침대에서 자며 옷을 걸쳐 입고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한 교실을 짓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적인 인간들과 상거래를 트고 돈을 만지기 시작한다. <동물 농장>은 인간 사회의 악폐라고 주정하던 그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던 혁명은 완전히 실패하고 정책마다 위협과 명분만이 동원될 뿐이었다. 7계명도 수정되고 우직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만 하던 복서는 인간의 도살장에 팔렸고 마침내 그들은 두 다리로 서서 채찍을 들고 동물들을 감시한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던 구호는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다”는 구호로 둔갑을 했고,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는 구호는 “어떤 동물들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뀐 것이다.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 스탈린 체제를 비판한 정치 풍자소설안 <동물농장>은 농장의 가축들을 혹사하는 농장주 존스에게 대항할 것을 호소하는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호소로부터 시작해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불로소득을 누리는 부동산 재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많은 지식인들이 당시 사회주의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왕과 귀족이 존재하고 열심히 일하는데도 풍족함을 누릴 수 없었던 평민이나 현대의 자본가와 노동자를 생각하면 사회체제만 다를 뿐, 현실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고, 러시아는 소련이라는 전체주의, 공산당 독재, 공포정치를 실시하고 마니까요.
이 대목은 종교를 비판하는 것 같네요. 동물들이 후에 나폴레옹의 공포정치에 힘들어할 때도 모제스가 슬며시 날아 <설탕사탕 산>에 대해 늘어놓고 가는 대목이 후에 또 나와요.
인간을 쫓아내고 동물들이 농장을 차지한 후 돼지들은 동물주의 원칙에 입각해 칠계명이란 규칙을 만들고 불변의 것이라 설명해요. 하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이것은 변질돼죠.
권력을 잡은 돼지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칠계명을 수정해버리니까요.
동물들을 위한 교육도 이루어지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글자를 잘 배우지 못하는데 돼지들은 동물들의 기억마저 계속 왜곡시키며 있었던 일도 없게 만들고 없던 일도 있게 만들며 점점 세뇌돼고 생각하는 걸 멈추죠.
또 칠계명조차 못 외우는 동물들 때문에 간단하게 한문장의 슬로건을 만들어내는데 여기서 <1984>의 슬로건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어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란 슬로건으로 사람들을 세뇌시켜가죠.
<동물농장>이 <1984>의 밑바탕이 된 작품임이 여실히 느껴져요.
물론 러시아와 소련이라는 현실 배경이 있기도 하지만요.
정말 무식하게 일하는 복서를 보며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성실함도 미덕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비판 없이 선동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결국 비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당시 많은 민중들이 사회주의 사상으로 그들을 이끈 지도자나 지식인들을 믿고 좋은 세상이 오기를, 평등하고 풍족한 세상이 오기를 바랐지만 결국 권력을 잡은 인간들은 그들이 쫓아냈던 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말았으니까요.
우리가 공산국가, 독재국가에서 보던 모습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요.
변질되고 수정되어 남은 단 하나의 계명,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이건 권력자만 바뀌었을 뿐, 예전의 상태로 돌아간 건 다름없죠.
농장의 소유주가 인간 존스에서 돼지 나폴레옹으로 바뀌었을 뿐.
동물들은 자신이 동물농장을 평등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돼지들의 소유가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엔 동물들도 인간과 어우러지고 있는 돼지들을 보며 혼란에 빠지는데, 과연 이 모습이 과거 스탈린 체제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싶네요.
자본주의 개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더욱더 국민들을 통제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모습.
그리고 여전히 푸틴과 시진핑에게 지지를 보내는 러시아인과 중국인들.
세뇌 탓인지, 두려움 탓인지, 아님 둘 다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이들도 강도는 약하다고 하지만 저 모습과 다를 수 있을까 싶어요.
물론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는 있지만 과연 모두가 평등한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죠.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더 많은 평등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계속 공정사회를 외치는 이유겠죠.
사족이지만 어렸을 때 본 만화영화 중에 <똘이장군>이란 만화영화가 있었는데요.
내용은 전형적인 반공만화지만 어린 시절 충격받았던 게 마지막에 가면이 벗겨진 수령이 돼지였다는 거였어요.
완전 반전이었죠.
왜 대장이 돼지지? 김일성이 뚱뚱하니까? 욕심많고 더러운 이미지 주려고 돼지로 나온 건가?
악당 동물은 무조건 늑대 아니야?
그런데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그 의문이 해소돼네요.
책 속의 나폴레옹 모습이 제작진들이 묘사하고 싶었던 공포정치 독재자를 제대로 소름끼치게 보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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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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