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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해석
- 작성일
- 2014.1.5
동경만경
- 글쓴이
- 요시다 슈이치 저
은행나무
우리가 헤엄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서평> 『동경만경』(은행나무.2004. 9500원)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문학적 표현으로 ‘사랑에 빠지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흔히 빠지다란 말은 물이나 구덩이 따위 속으로 떨어져 잠기거나 잠겨 들어갈 때 또는 곤란한 처지에 놓일 때 쓴다. 많은 표현 중 왜 하필이면 ‘사랑에 빠지다’라고 표현할까? 그만큼 상대방의 마음속에 깊숙이 잠기고 싶거나, 아니면 사랑을 하면 곤란한 처지에 놓일 상황이 생기는 걸까.
저자인 요시다 슈이치는 1997년 데뷔작 『최후의 아들』로 제 84회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2년 야마모토슈고로상과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을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동경만경』은 2004년 일본드라마로도 각색이 되었다.
글쓴이는 『동경만경』을 통해 사랑에 빠졌던, 빠지고 싶은 사람들을 보여주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도쿄만을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 료스케와 여자 주인공 미오(료코)가 미팅사이트를 통해 서로를 만나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처음 소설은 료스케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그 뒤는 미오의 시점으로 바뀐다. 료스케와 미오의 시점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랑에 대해 상반된 생각을 지닌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료스케는 사랑에 한번 빠졌었던 인물이다. 그는 18살 때 담임선생님과 사귀면서, 졸업 후 동거까지 했지만 결국은 이별한다. 사랑이 깊었던 만큼 그 사랑이 변하자 료스케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사람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걸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쑥스럽긴 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했어. 그런데 내가 그녀를 따르지 않았어. 그 당시에는 내가 그 사람을 따를 수가 없었던 거지. 아직 철부지였기 때문일 거야”-P154
미오는 좋아하지도 않은 남자와 손을 잡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만큼, 외로워 보이는 사람에게는 자기도 외롭다고 털어놓고 싶을 만큼 외로운 사람이다. 그녀는 진실한 사랑을 믿지 못하기에 외롭고,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진실한 사랑에 빠지고 싶은 인물이다.
“난 줄곧 뭐랄까, 남자와 여자가 한마음이 된다는 걸 환상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니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몸과 몸을 부대끼는 걸거라고......”-P263~264
이러한 둘의 만남은 미팅사이트를 통해 이뤄졌다. 애초부터 진지한 만남이 아닌 가볍고 충동적인 만남인 셈이다. 료스케는 그녀의 몸을 탐할 생각으로 만났고, 미오는 료코라는 가명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료스케와 만난다. 이 둘은 쉽게 육체적인 사랑에 도달하지만, 서로 마음은 쉽게 열지 못한다. 이는 료스케와 미오(료코)가 호텔에서 몸을 섞기 전 미오가 어느 동호회 기사를 떠올리는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빠지다’라는 말과 ‘탐닉하다’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탐닉하다’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빠지다’라는 건 영혼의 문제다.”-P120
이들은 그저 상대방의 몸을 탐닉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품안에서 자유롭게 몸을 해방시킨다. 료스케와 미오는 사람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믿기에 사랑에 빠지기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이 둘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제 2의 소설로 인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또한 작가는 도쿄만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료스케와 미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료스케와 미오는 불과 1km 남짓한 거리에서 근무하지만 도쿄만이 사이를 가로막아서 우회해서 만나야만 한다. 그런데 도쿄만을 가로지르는 지하철이 개통되고서 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진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는 료스케가 도쿄만을 헤엄쳐서 미오한테 가겠다고 말한다. 미오는 농담처럼 받아들이지만 도쿄만을 헤엄쳐 건너는 료스케를 상상한다.
이렇듯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지만 서로에게 깊이 잠겨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그로인해 상처를 입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거나 사랑을 믿지 않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서로의 몸만을 탐닉하는 것에 만족한 채 정작 진실한 사랑은 어렵다고 느낀다.
소설 속 미오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은 너무나 심플한 거라서 그렇게 어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지는 법은 간단하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상대방을 믿고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극복할 용기가 필요할 뿐. 미오를 향해 도쿄만을 건너는 료스케처럼 서로한테 헤엄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료스케와 미오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동경만경』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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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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