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일반 도서
서유당
- 작성일
- 2018.9.26
역사의 역사
- 글쓴이
- 유시민 저
돌베개
266. 역사의 역사...역사 르포르타주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발군의 입담가인 유시민 작가에 의해 새롭게 펼쳐진 ‘역사의 역사’는 단순히 역사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하고 바라보았다. 그는 이 책의 성격을 사실 보도에 입각한 저널리즘과 과거사를 다룬 역사 서술 및 예술적 감정을 표현한 문예창작으로 승화시켰다. ‘역사는 인간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에 관해 문자로 쓴 이야기’(P.14)로 규정해 역사학자가 아닌 역사가와 역사 이론서가 아닌 역사서를 주로 다룬다. 이를 통해 ‘역사의 사실과 논리적 해석에 덧입혀 둔 희망, 놀라움, 기쁨, 슬픔, 분노, 원망, 절망감 같은 인간적, 도덕적 감정’(P.17)을 경험한다.
총9장으로 구성한 이 책의 목록을 보자. 서구 역사의 창시자인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를 1장에서 언급한 후 사마천을 2장에서, 이븐할둔을 3장에서 할애한다. 이어 랑케를 4장에서, 마르크스를 5장에서 다루고, 6장은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을 집어넣었다. 7장은 E.H.카를, 8장에선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을, 마지막으로 9장은 최근 경향을 담은 다이아몬드와 하라리를 선보인다.
구체적으로 차근차근 살펴보면, 서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와 역사 서술의 창시자인 투키디데스를 첫 장에서 다룬 것은 당연지사라 할 선택이다. 헤로도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수 많은 이야기꾼 가운데 역사가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은 최초의 인물’(P.26)로 그린다. 그는 열악한 역사 서술 환경(문자 기록의 수단이 미비)에서 구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직접 여행이나 탐문 정보와 들은 이야기를 기초로 기록했다. 반면에 투키디데스는 지휘관으로 직접 경험한 역사를 서술하면서 그리스 세계 몰락을 부른 내전의 원인과 결과를 연대순으로 기록한다. 그는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여 일회용 들을 거리로 쓴 것이 아니라 영구 장서용으로 쓴 것’(P.36)이다. 역사가로서의 그의 태도는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한 ‘공정’이었으며 결코 편향된 시각이 아니었다.
투키디데스의 시각은 랑케와 토인비로 이어졌고, 헤로도토스는 재래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로 공감 및 감정이입이 계속된다.
두 번째 장에서 그려낸 사마천의 ‘사기’는 인간이 휘두르는 권력과 그 시대의 생생한 화보를 다룬다. 첫 장에서 다룬 인물과 달리 작업환경이 보다 객관적인 서술이 가능했다. 그는 국가 역사기록 관리 공무원이었기에 민간인 이었던 1장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천문관측 및 조정기록과 의전담당관인 사마천은 본기와 열전이 사기의 중심이라는 후대 역사가들의 평가를 반영하는 ‘기전체’형식으로 역사를 집필한다. 또한 사실을 기록하면서 인간 본성의 빛과 그늘, 삶의 의미, 군주 덕성, 권력 광휘, 비루함, 반복된 사건 패턴을 포착해 최고의 역사서를 만들어낸다. 결국 역사를 역사답게 쓴 중국 문명 최초의 역사가로 이름을 올린다.
세 번째 장에서 다룬 역사가는 최초의 인류사인 ‘역사서설’을 쓴 이븐할둔이다. 7세기 이슬람 문명, 아랍 사회 현황, 특징을 기록하여 당시 아랍 지식인들이 인간과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을 서술해 ‘이슬람 문명 발생과 연구 길잡이’(P.87)이자 14세기 이전 이슬람 문명에 대한 종합보고서 성격이다. 특이한 건 찬양 문구가 들어있는데 이는 신앙고백이자 강력한 종교적 사상적 정치적 통제 아래서 역사연구를 위한 처세의 방편으로 이해한다. 역사이론서인 ‘역사서설’은 ‘자연조건과 인간의 본성을 통해 문명일반, 왕조, 도시, 기술, 산업, 학문, 교육 순으로 역사를 서술’(P.87)한 그는 탁월한 역사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다.
네 번째 장에서 살펴본 인물은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를 다룬 레오폴트 랑케다. 그는 수강생인 막시밀리안 2세 앞에서 로마제국 흥망부터 미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전쟁에 이르기까지 서구 2천년의 역사를 강의한다. 그는 논증법인 배리법을 활용하고,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를 서술하면서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극적 서사를 배제한 전문역사학자이자 역사가였다. 역사 연구와 서술, 강의가 유일한 직업이었으니 대중적 교양서가 아닌 학술지 실리는 역사학논문, 학술서를 지향해 유럽사 연구자 전통 역사서가 되기에 이른다. 작가는 랑케를 들먹인 이유가 학문적 업적과 더불어 중대한 인식오류에도 불구하고 사실주의 역사 서술을 실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중대한 인식오류란 건 문서에 의존해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줘 ‘무지와 정치적 유용성’엔 의미가 있었으나, ‘문서보관서류’라는 문자 텍스트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결국 ‘랑케의 역사는 인간이 없는, 열정과 미학을 느낄 수 없는, 지나간 시대에서 사신의 시신을 건져올린 글(P.140)’이란 평가가 내려진다.
다섯 번째 장은 마르크스를 다룬다. 제목이 ‘역사를 비껴간’이라고 명명한 게 이채롭다. 사회를 대립하는 계급의 통일체로 보고 그들의 투쟁과 그 투쟁이 초래한 사회의 변화과정을 역사라고 부르고 사회의 과거를 해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변화시킬 목적으로 역사이론을 만든다. ‘인간 생활의 기본은 물질을 생산하는 활동이며 물질적 이해관계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한다고 주장’(P.154)한다. 하지만 그의 전망은 현실을 비껴갔다. 유물사관 자체에 내포된 논리적 모순 때문이다. 역사법칙은 공산주의 혁명 이전 사회에 적용할 수 있지만 이후 공산주의 사회에 적용할 수 없다면 논리적 모순이므로 보편진리가 아닌 것이다.
여섯 번째 장에선 우리 역사학자를 다룬다.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 신채호와 사회주의 사학자인 백남운이다. 박은식은 ‘한국통사’를 통해 조선망국과 민족해방투쟁의 아프고 고단했던 과정을 서술한다. 형체인 나라는 망해도 정신인 역사는 보존되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를 통해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명명하며 고대사 기록에 심혈을 기울인다. 백남운은 조선역사 4단계 발전론을 유물사관에 기초해 민족사를 서술, 조선특수사회론을 배격하는 이론을 세운다.
여기서 역사 서술의 목적을 살펴보자. 헤로도토스는 돈을, 사마천은 실존적 인간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븐할둔은 학문 연구차원에서, 마르크스는 혁명의 무기 제작 활동으로, 박은식, 신채호는 민족 광복을 위한 투쟁을 위해서 였다.
일곱 번째 장에선 에드워드 카를 다룬다. 카의 역사서는 역사이론서로 각광받는다. 역사가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작업하는 지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서술했다. ‘사회 안에서 연구하는 역사가가 그 사회를 얼마나 면밀하게 연구에 반영하는 지 보여주는 것(P.222)이 역사서이다. 그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했던 연속 특강을 정리한 책으로 역사학에 관심이 있는 교양인의 필독서이자 2차 대전이후 유럽 지식인 사회가 도달한 최고 수준의 지성을 보여준다.
여덟 번째 장은 문명의 역사편이다. 토인비, 슈펭글러, 헌팅턴이 언급된다. 기존의 역사 개념인 개별민족, 왕조, 국가 아닌 문명을 연구한 역사가인 토인비는 유럽을 독립개체로 연구할 국가가 없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의 탄생과 성장, 쇠락과 해체 과정 및 원리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한다. 반면 ‘문명의 충돌’의 저자 헌팅턴은 문명의 공간적 접촉에 대한 토인비 이론을 정치무대로 끌어들여 냉전 해체이후 국제질서와 정세변화 이해의 단초를 제공한다.
마지막 장은 최근 화두인 과학적 인식에 기초한 역사가를 다룬다. 다이아몬드와 하라리. 과거의 역사가 문명과 국가의 역사이며, 과학은 역사학의 보조학문으로 간주한 데 비해 최근 인류사는 인류 전체를 역사 서술의 단위로 삼아 과학과 역사를 통합한다. 인류사는 과학과 생물학까지 포용한다.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로 알려진 과학자이다. 역사학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인 과학자의 역사책으로 대륙간 문명의 발전 격차 원인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춰 인류사를 기록한다. 반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과학자의 연구성과를 최대한 받아들인 역사학자의 역사책이다. 역사의 시작은 인지혁명을 통해, 역사의 진척은 농업혁명을, 역사의 종말은 과학혁명을 통해 달성된다. 또한 ‘사피엔스’는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토록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으며 어디로 가려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적고있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 것은 재미뿐만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라고 밝힌 저자는 총9장에 걸쳐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 그중 개인적인 특성과 독자를 고려한 안배도 보여지지만 대체로 ‘역사의 역사’를 구성하는 큰 틀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배려’한 부분이 넉넉하게 다가온다. 세계사의 흐름에 큰 걸림돌이 되지않는 한도내에서 민족주의 사학을 언급한 부분은 ‘신의 한수’에 버금가는 선택이다. 특히 사회주의 사학자를 끌어들인 것 역시 단순 재미로 삽입한 게 아닌 고도의 계산이 숨어있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유명 사학자들이 대거 등장해 보편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경향을 반영한 것은 과학의 거대한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자각한 저자의 각별한 관심이기에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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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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