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리뷰

이하라
- 공개여부
- 작성일
- 2021.6.6
《녹정기2020》 이란 제목으로 새로운 녹정기가 4월부터 Asia UHD 채널에서 방송되었고 현재는 Asia N 채널에서 방송 중입니다. 저는 소식을 늦게 알고는 다운 받아서 한 주 동안 정주행했는데요. 김용 작가의 흥미진진한 원작을 재밌게 풀어내고 나름의 색깔을 곁들인 《녹정기2020》에 대해 포스팅 해 볼까 합니다.
2020년 작
2014년작
2008년 작
1984년 작
신필 김용이라고 불리는 김용님의 무협소설은 인물 묘사의 섬세함과 스토리텔링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인데요. 신필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의 무협소설들 15편 중 서검은구록과 원앙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보았습니다.
중학시절에 영웅문시리즈로 사조영웅전을 시작으로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다 2 번, 5 번, 7 번을 읽고서 천룡팔부와 녹정기를 각각 3 번씩 읽었습니다. 비호외전, 설산비호, 협객행, 소오강호를 거치며 다 읽어보았지만 제게 최애의 작품들은 의천도룡기, 신조협려, 천룡팔부, 녹정기 순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교봉이나 곽정 같은 전형적이면서 정형화된 인물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사랑 받는 이유는 인물묘사의 섬세함에 있을 듯 합니다. 영호충 같은 호탕한 인물상도 그렇겠지만 햄릿처럼 갈등하는 존재인 양과나 우유부단해 보이면서도 세심하고 다정한 장무기, 순수한 단예, 임기응변에 능하고 자기 이익을 중시하지만 그보다 더 의리를 중시하는 사악해 보이지만 정의로운 위소보 같은 인물은 많은 남성 독자들의 뇌리에 남아 있을 인물들일 것입니다.
그 중 단연 위소보가 돋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무협소설들 속의 기존 영웅 이미지와는 판이한 인물로 교활하고 이기적인 면을 가지고도 영웅서사를 이끌어 갈 수 있음을 처음 깨닫게 해 준 인물이니까요.
김용님의 모든 소설들이 다 서사가 치밀하고 다채롭지만 마지막 작품인 녹정기는 역사와 픽션을 정교하게 재단해 너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수차례 거듭 드라마화 되고 있지만 드라마 수준이 엉성하더라도 재미난 작품으로는 녹정기가 으뜸이 아닐까 합니다.
녹정기는 제가 아는 작품만으로도 2020년 작, 2014년 작, 2008작, 2000작, 1984년 작이 있습니다. 이 중 1984년 작인 양조위님 출역작은 편집본으로만 보아서 원작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강희 황제 역할의 유덕화님의 배역에 비중이 높은 많이 개작된 드라마라고 하더군요.
2000년 작인 장위건님 출연작은 소보여강희(소보와 강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작품으로 코믹한 요소를 가미하여 개작한 드라마입니다. 당시 유명하던 정이건님이 사부인 진근남으로 출연하고 서기님도 출연했습니다. 도입부 밖에는 못봤지만 중도하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위건님은 중화권에서 유명하신 배우분으로 키가 좀 작고 귀여운 이미지인데 멋진 척하는 연기를 하셔서 오히려 더 귀여움이 부각되는 방식을 고수하는 분인데 2000년 작 녹정기에서는 그런 풍의 연기가 잘 먹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2008년 작 황효명님이 위소보 역할을 한 녹정기를 말씀 드려야 겠네요. 강희 역할을 종한량님이 연기했고 이 작품 이전에는 몰랐던 하탁언님이 쌍아 역을 연기했습니다. 배우분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자금성 곳곳에서 촬영된 궁중 씬과 중국의 명소들을 담은 배경 그리고 철저히 고증을 거친 듯한 궁중 의상들이 조합되어 명작으로 탄생된 작품입니다. 게다가 원작 소설을 그대로 옮긴듯한 디테일까지 살아 있습니다. 원작소설을 사랑하는 분들께는 가히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입니다.
배우 황효명님의 수려한 외모 때문에 위소보의 경박함이 조금 덜 느껴지는 경향은 있지만 위소보만의 상황 대처능력과 의리를 중시하는 면모 등과 인물들 간의 감정선이나 관계 등 원작의 내용을 제대로 구현해 주어서 다른 판 녹정기도 보신 분들이라면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 여길 거라 생각합니다.
2014년 작은 한동님이 위소보 역할을 연기했는데 저는 사실 이 작품은 대만판인 줄 알고 봤습니다. 자금성은 등장도 안할 뿐 아니라 약간 조촐한 세트에서 촬영한 드라마라 중국만의 대작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코믹판 녹정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잘 살려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녹정기2020은 장일산이라는 저는 처음 알게된 배우분이 위소보 역할을 했는데 뭐랄까... 양가적인 느낌의 작품입니다. 배우들의 의상이 조금 눈에 거슬리고 (그건 2014년 작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드라마 전개가 마치 예고편을 보듯이 디테일한 부분들을 생략한 편집이라 심히 거슬리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시트콤을 보는듯한 분위기로 재미지게 전개되고 있으니 양가적인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즘 중국 인기 배우분들을 잘 몰라서 출연진들이 다 익숙치 않았지만 비중이 상당해진 건녕공주의 역할을 한 당예흔님의 톡톡 튀는 연기도 좋았고 강희 황제 역할의 장천양님은 요소요소에서 강희 황제의 내면을 섬세히도 잘 묘사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감독분의 연출과 작가분의 집필까지 잘 어우러져야 배우분의 연기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싶기도 합니다. 다만 내용 전개상 꼭 필요한 장면들을 대략 난감하게 생략해서 원작을 모르거나 다른 드라마 녹정기를 보지 않았던 분들께 권하기에는 뭐 이렇게 대대적으로 생략했나 싶은 대목들이 많습니다. 위소보 역의 장일산님을 비롯해 건녕공주 역의 당예흔님과 강희제 역할의 장천양님을 비롯한 배우분들의 섬세하고 개성을 살린 연기들도 좋지만 전개상 필요한 장면들까지 대사로 옮기거나 아예 대놓고 생략한 부분들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사적인 견해로는 원작을 모른다면 조금 그럴싸한 시트콤 정도로 여기는 시청자들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만의 색다른 분위기와 전개 방식, 생략된 인물 감정선도 있지만 더 섬세하게 파고든 감정선 묘사도 있기에 충분히 시청자를 매료시킬만한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분들께 권하기에는 황효명님의 2008년 작 녹정기와 장일산님의 2020년 작 녹정기를 모두 본다면 원작을 모르는 시청자도 빈틈없이 재미지게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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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