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이하라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4.7.28
근대까지의 문학에서 그려지는 성(性)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성을 상실과 해체로 인식했던듯 하다.
성의 일상에서의 일탈, 즉 지복(至福)에 대한 엿봄으로서의 기능... 우리 안의 천국에 대한 잠시나마의 자각과 체험으로서의 기능을 그들은 애써 부정했었던가 보다.
허나 생이 주는 고독과 고통이라는 멍에를 정말이지 잠시나마 잊게해주는, 천국의 문턱을 엿보게해주는 성의 가치를 이 시대는 지나치게 남용하고 있다.
이 시대에 길들여져 버렸기에 나는 그토록 성에 탐닉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시절을 모두 스쳐보내고나니 내가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은 성이 아닌 긴시간 내게 부재했던 어머니의 사랑이었음도 깨달았다.
그리도 나를 송두리채 휘감고 휘둘러대던 것은 성적 유희도 일탈도 아니었다. 내가 전전했던 숱한 여성들의 나신은 그저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가 찾아든 음습한 동굴이었던듯 싶다.
내게 첫사랑과 진정한 성적 쾌락과 안락을 안겨주었던 여성은 마치 태어나 처음 안기는 어머니의 품 같았다. 아마도 나는 그녀 이후의 모든 여성들에게서 그녀를 찾았던것 같다. 끝내 맛본 것은 유희였을뿐 그녀가 주던 사랑은 아니었지만...
내가 향하던 그 단하나의 사랑과 이별한지 7년만에 환상 속에서 헤어질때쯤에야 비로소 나는 성에 담백해질 수 있었다. 기어이 내가 헤메던 안락과 서늘함 사이... 천국과 죄의식 사이에서 벗어난 것이다.
본능적으로 찾아들던 그 품이 결코 엄마의 사랑과 따스함일 수 없음을 깨달았고 그 어디서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고서야 의미없던 여정이 끝난 것이다. 어쩌면 성욕이란 죽음에 이르는 시절이 오기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겠지만, 더이상 성이 주는 잠시의 일탈과 천국의 엿봄에도... 애써 억누르던 그리움에도 연연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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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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