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않는 춤 속으로
마리에띠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1.10.3
이번 연휴에 가보겠다고 미리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길이었다. 그런데 내가 사고가 나고나서 어쩔까 망설이다가 괜찮아지는 듯 하여 오늘 아침 길을 나섰다.
오늘 출발은 대부도(초록색 원)에서 시작했다. 시화방조제를 건너서 영동고속도로를 타다가 어찌어찌 하여 팔당대교를 건너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라는 강을 끼고 달리다가 마재성지(빨간색 원)에 도착했다. 미사를 드리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다산유적지를 돌아보았다. 어제까지 다산문화제를 했다는데 오늘도 사람이 무척 많았다. 축제뒤의 가건물 철거등으로 복잡한 가운데 다산 생가와 실학박물관을 둘러보고 요당리성지(파란색 원)를 들러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지도에 길을 표시하려다가 잘모르겠길래 포기했다. 운전안하고가면 이렇게 맹탕이다.
강원도를 다니면서 여러차례 지나쳐가면서도 '다산유적지' 표지판을 보면서 언제 한번 저곳을 가봐야지했는데 오늘에서야 들려보게되었다. 마재성지(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116)는 다산유적지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인근이 수자원보호지역으로 성지조성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조그만 성당, 조그만 약종동산이 전부다. 그러나 아기자기하게 정성껏 가꾸어낸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이제 다음주면 3주년이 되어서 주교님모시고 감사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마재성지의 성당은 한옥식으로 지어진 성당이었다. 렌즈를 챙겨가지않아서 전체사진은 없으나 인터넷에 많이 올려져있다. 보통 도마성전이라 부르던데 현판에 토마스의 신앙고백이 붙어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 밑에 툇마루가 붙어있어 잠시 앉아있어봤다. 바로 옆에는 명례방이라고 이름표가 붙어있는 작은 집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커피와 코코아가 상시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우리는 커피를 금방 마시고 들어가서 생략하고 성지소개 팜플렛만 챙겨나왔다. 11시에 미사가 있다고해서 미사를 드리고 가기로 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미사를 드리는데 순례객들이 꽤 많다. 신부님 강론도 마음에 쏙 들었다. 오늘 복음이 사마리아인에 관한 것이었는데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말씀하셨다. 가슴에 잘 새기고(실천을 해야지).
성전 길 건너에는 약종 동산이 꾸며져 있었다. 십자가의 길과 몇가지의 조형물들이 있었다. 그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칼 십자가라 부르는 것이었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1801년 신유박해때 순교하였는데 그때 형리가 칼을 내리치기 위해 나무토막 위에 머리를 대라고 하자 "땅을 내려다 보면서 죽는 것 보다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하며 바로 누웠단다. 이 모습에 형리가 벌벌 떨며 내리친 칼이 그의 목을 다 끊지 못하자 그는 다시 일어나 크게 십자 성호를 긋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다음칼이 내려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내가 찍은 사진이 마음에 안들어 다른 분의 사진을 한장 얻어왔다.
(출처 : http://blog.daum.net/leesanggin/4016071)
가계도에 덧붙일 것이 있다.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부인이 이벽의 누이고, 정약용 형제의 누이가 이승훈의 아내다. 그러니 조선 천주교회의 창설의 주역들이다. 이중에서 정약종의 부인, 즉 정하상과 정정혜의 어머니는 유소사라고 표기되어있는데 이는 이두문자를 한문 음율 그대로 읽어서 생긴 웃지못할 이름이고 실제로는 조이라고 읽어야된다다. 그러나 조이는 상민의 부인이나 과부를 지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적당한 표현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그냥 유 체칠리아라고 표시하는게 옳은 표현이라고 한다는 걸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봤다.
점심을 먹고 다산유적지를 들러보기로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매우 언짢은 일이 있었다. 겉은 번지르르한 식당이었는데 종업원들의 태도며 그릇의 상태며 주차 문제며 결정적으로 맛도 없는데 가격은 이동네의 세배쯤이었다. 기껏 성지에서 미사드리고 묵직한 마음이었는데 와장창 깨트려버리는 대단한 효과가 있었다. 다산유적지중에서는 실학박물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마침 특별기획전으로 [곤여만국전도]를 전시하고 있었다.
곤여만국전도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설명이 제각각이다. 이거야 원. 해서 실학박물관 측의 설명을 복사해서 더보기에 넣어놨다. 관심있는 분들은 눌러보시길.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은 오는 2011년 9월 30일부터 2012년 3월 31일까지 ‘곤여만국전도, 세계와 우주를 그리다’특별전을 개최한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새로운 세계관 확립에 영향을 끼친 세계지도(곤여만국전도)를 중심으로 특별전을 개최함으로써 실학시대의 동서양간 문명교류를 재조명하고, 나아가 실학자들의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실학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기획되었다.
실학의 시대 17~18세기에 조선의 실학자들은 <천주실의>, <곤여만국전도>, <기하원본> 등 서양인 선교사들이 저술한 책들이 중국으로부터 전해지면서 서양의 종교와 과학기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마테오 리치가 만든 세계지도가 조선에 전해지면서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 바깥에 중국보다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중국 중심의 전통적 지리관에 따라 하늘은 둥글고 땅은 사각형[天圓地方]이라고 믿었던 조선인들에게 이러한 세계지도는 ‘지구설’ 등 새로운 천문지리관에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이처럼 새로 접한 자연과학의 지식은 조선의 지리학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번 전시의 컨셉은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포함한 조선후기에 그려진 세계지도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세계관과 우주관을 살펴보는 전시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세계지도는 조선후기까지도 중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삼고 다른 모든 나라는 조공국 내지는 번국으로 취급하던 동양적 세계관을 탈피하고, 만국평등의 새로운 세계관이 자리 잡게 되는 촉매가 되었다.
전시유물
이번 특별전 전시되는 유물은 실학박물관의 소장유물을 포함하여 국내·외 주요기관의 소장자료를 대여하여 전시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어람본(御覽本) ‘곤여만국전도’(1708년,숙종 34)의 복원품이다. 이 지도는 중국에서 들어온 마테오 리치가 그린 세계지도를 보고 감동한 국왕 숙종의 지시로 제작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세계지도인데, 이미 상당부분 훼손된 원본 자료와 당시 기록을 토대로 하여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으로 원형 복원하였다. 당시 최고의 지도 전문가를 동원하고, 궁중 최고 화원 여러 명을 시켜 그리도록 하였다. 또한 이 세계지도는 현재 몇 점 밖에 없는 희귀한 ‘회화식(=손으로 직접 그리고 채색한)’의 곤여만국전도이다.
숙종이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지도를 만들어 보급하도록 명한 사실에 비춰볼 때 당시 조선은 이미 최신의 세계지리 정보를 습득하였다는 사실과 서양 지도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원본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고, 또 다른 본인 봉선사본은 유실되었으나, 이번 전시를 위하여 국내 최초로 전면 복원하였다. 유일하게 남은 봉선사본 흑백사진을 저본으로 복원하였기 때문에 원래 채색은 복원하지 못하였으나, 지도의 내용은 훼손된 부분까지 추정하여 8폭 병풍으로 복원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를 바탕으로 1645년에 일본에서 만든 세계지도인 <만국총도> 도 복제 전시된다. 우리나라에서 그려진 세계지도 중 가장 오래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류코쿠대 모사본), 그 밖에 ‘하백원의 만국전도’ 및 <동국지도>, <천하총도>, 최한기의 <지구전후도>, <오르텔리우스 지도> 등 총 30여점의 유물을 전시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하여 최근 유행하는 미디어 모빌아트 기법으로 제작된 ‘움직이는 곤여만국전도’를 디지털 병풍의 형태로 전시하여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전시명 : 곤여만국전도, 세계와 우주를 그리다
- 기간 : 2011년 9월 30일(금) ~ 2012년 3월 31일(일)
- 장소 : 실학박물관 기획전시실
* 개막행사 : 2011년 9월 30일(금) 오후 3시 - 유물 : 신곤여만국전도 제작 전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하백원의 만국전도 및 동국지도, 오르텔리우스 지도 등 30여 점 외, 미디어 아트 ‘움직이는 곤여만국전도 디지털 병풍 전시
- 전시취지 : 1708년(숙종 34)에 조선에서 제작한 회화식 곤여만국전도를 복원하여 신곤여만국전도를 제작·전시하고, 1602년 마테오 리치가 북경에서 출간한 서양식 세계지도의 전래와 더불어 조선후기 변화된 세계관을 조명
- 전시 담당자 : 실학박물관 학예팀 정성희 연구원 031-579-6009
- 홍보 담당자 : 실학박물관 학예팀 양상훈 연구원 031-579-6006
<신곤여만국전도> - 1708년 그려진 봉선사본 곤여만국전도 복원(8폭 병풍)
<곤여만국전도> - 봉선사에 소장할 당시의 사진자료
하백원의 <만국전도>
<만국총도>
<만국인물도>
<당빌의 신중국지도첩>
이것은 다른 곳에서
보물 849호 :『곤여만국전도』는 1602년에 서양지리학을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한 마테오 리치와 명나라학자 이치조가 함께 만들어 목판으로 찍어 펴낸 것으로, 가로 533㎝, 세로 170㎝이다. 6폭의 타원형 세계지도인데 선조 36년(1603) 북경에 파견되었던 이광정과 권희가 돌아올 때 가지고 온 것이다. 그때까지 조선에 있던 세계지도는 1402년 중국중심의『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주류였다. 그러나 이『곤여만국전도』는 그 당시의 서양지리학과 지도학의 축적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지도의 주요내용은 유럽, 아프리카 등의 5대주를 나타내고 있고, 그림 중에는 850개를 넘는 지명이 있으며, 각지의 민족과 산물에 대해 지리지적으로 서술한 것이 보인다. 또 타원형의 세계지도 바깥에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모습, 아리스토천체구조론에 의한 구중천설, 일월식도, 천지의도 등이 그려져 있다. 1602년의 이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는 조선에서도 베껴 그려지거나, 목판인쇄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숙종 34년(1708) 관상감에서 제작한『곤여도병풍』이다. 관상감에서는 이 때 천문도와 함께 그려『건상도』라 하여 짝을 이루었는데 경기도 봉선사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 한국전쟁 때 없어졌다가 최근 일본에서 발견되었다. 1708년에 관상감에서 바친『곤여만국전도』는 숙종임금의 명으로 이국췌와 유우창이 당대 화가 김진여와 함께 그린 것으로 제8폭에는 이 지도의 성립과 제작경위를 말하는 최석정의 명문이 씌여져 있다. 이 지도는 조선시대에 제작한 가장 아름다운 세계지도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실학박물관 직접 가기
http://www.silhakmuseum.or.kr/silhak_home.aspx
박물관에는 이렇게 기념 스탬프가 준비되어있었다. 재미있게도 스탬프 자체가 약간 둥글게 만들어져있어서 찍을 때 둥글리며 찍어야된다. 아이들에게 정말 기념될만한 준비인 것 같다. 그밖에도 4종의 커다란 퍼즐판도 있던데 상시 존재하는 것인지 이번에만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좀 맞춰보고싶었으나 한무리의 아이들이 있어서 포기하고 나왔다.
들어갈때 봤던 모습과 같은데도 나올 때 본 이 모습이 더 울림이 깊다.
이렇게 다산 생가와 실학박물관을 둘러보고 요당리 성지로 향했다. 요당리성지는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 추정되며 이렇게 형성된 교우촌은 양간 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 왕림), 은이공소(현, 양지)와 깊이 연계되어 활발하게 복음을 전파하였던 곳으로 지리적 특성상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려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 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고 두번의 박해를 통해 수많은 신자들의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지이다. 헉헉..... 이하 다른 설명은 요당리성지의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라.
요당리성지 홈페이지
http://www.yodangshrine.kr/main.php
요당리성지는 성지회원이어서 매달 소식지를 받아보는데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가보게 되었다. 성지 땅 한평 봉헌하기를 통해서 회원이 된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않은데 성지는 이미 너무나 훌륭하게 모두 조성되어있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컸다. 마침 오늘이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성지의 모든 건물들은 닫혀있었다. 순례객 몇 명만이 묵주기도를 바치거나 우리처럼 돌아보고 있었는데 아무리 월요일이라도 오늘처럼 연휴에는 당연히 성지순례객들이 많을것을 예상해서 성지 관리인 한명쯤은 남아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화장실도 못가서 급히 되돌아나와 휴게실을 들러야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오늘 저녁에 있는 행사에 참여하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몸이 불편하고 교통이 막힌다는 핑계를 대며 봐달라고 사정했다. 쿨쿨 잠들어있는 곰탱이 깨워서 저녁 먹이고 출근시켰다. 연휴에는 나가는 길이 막혀서 일찍 출발해야지만 지각하지않고 도착할 수 있으니 서둘러 밤길을 나가게 했다. 긴하루가 지나갔다. 몸이 좀 피곤하니 푹 잘 수 있을테고 내일은 거뜬해져있을 것이다.
다산의 말
- 이해인 수녀-
"남이 어려울 때자기는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의 오만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도와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소리를 한 마디라도
입 밖에 내 뱉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듯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속의 이 말을
하루에 한 번씩 되새김하면
다산 초당의 청정한 바람 소리도
가까이 들려오는 기쁨
기껏 좋은 일 선한 일 하고도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여
향기를 달아나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라고 고백하는 사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푸른 기침 소리
- 희망은 깨어있네(이해인수녀시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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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