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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 작성일
- 2007.6.9
춘향전
- 글쓴이
- 정지아 저/정성화 그림
창비
-<서평>, 우리 고전 시리즈인 ‘춘향전’을 읽고
모진 춘향이 그 밤 새벽에 또 까무러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 뵈어 한은 풀었건만 살아날 가망은 아주 끊기고
왼몸 푸른 맥도 홱 풀려 버렸을 법
출도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보다 잔인 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
- 김영랑의 ‘춘향’ 중 제7연
위 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김영랑이 춘향전의 특정 부분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면서 쓴 자유시의 마지막 연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1연에서 6연까지는 원작과 큰 차이가 없다. 즉,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다 옥에 갇히게 된 춘향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이도령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던 중, 상거지꼴로 나타난 이도령을 보고 절망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김영랑은 행복하게 끝나는 결말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지, 원작의 해피엔딩과는 달리 춘향을 과감하게 죽여 버린다. 김영랑은 변학도로 대표되는 당시 지배계급의 포악함을 질타하고,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더욱 숭고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작을 비틀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적인 비틀기를 통해 독자들은 색다르면서도 신선한 감흥을 받기도 한다.
사실 춘향전이나 흥부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같은 우리 민족의 고전 작품들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어떤 기준을 갖고 대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 중에서도 춘향전은 가장 대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춘향전은 그 탄생배경부터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춘향전에 관련된 설화만 하더라도 박색설화, 열녀설화, 암행어사 설화, 성이성 설화 등이 있으며, 숙종 때에 이르러 창작된 소설 춘향전의 이본만 해도 무려 120종이 넘을 정도라고 한다. 그뿐인가, 판소리 춘향가 역시 다양한 형태의 판본이 전해져 오는데, 가장 오래된 판본인 만화본 춘향가에서부터 경판본, 완판본, 근세에 창작된 신재효 춘향가까지 그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행한 춘향전은 ‘재미있다! 우리 고전’이라는 기획 출판물의 12번째 작품인데, 이 작품은 <열녀춘향수절가>라는 판소리계 사설을 주요 텍스트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하였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따라서 이 춘향전은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쓰인 일종의 동화 같은 춘향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책 중간에 삽입된 아기자기한 그림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할 정도로 정겹다. 그러나 조금은 어른스러운 동화, 막상 아이들에게 읽어보라고 하기엔 선뜻 권하기가 쉽지 않은 동화이기도 하다. 그것은 아무래도 춘향과 몽룡이라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주요 테마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 사고방식이 예전 우리 때보다 현저하게 다른데다, 워낙 많은 정보를 접하는 추세다 보니 이런 작품을 통해 자연스레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꺼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청소년들에게 작품 속에 녹아있는 민중들의 생활상을 오늘과 비교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향전 표지
특히 이 작품에 나오는 풍부하면서도 다양한 한국어 어휘는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며, 실제적인 어휘 구사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춘향전은 판소리와 소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어온, 일종의 적층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구조와 계급타파 같은 근대사상, 탐관오리를 언제든지 징치할 수 있다는 사회 개조 사상 등이 농축되어 있다.
한마디로 춘향전은 백성들의 개혁적 사고가 수십, 수 백 년의 세월을 통해 은밀하면서도 느릿느릿하게 녹아들어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엔 철없는 두 남녀의 연애 담에 불과한 춘향전이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사상과 문화는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분석될 것이다.
어쨌든 창비사의 이번 춘향전은 그 기획의도에 걸맞게 원본의 맛을 살리면서도, 어려운 한자어나 낯선 표현을 배제한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린이나 청소년뿐만 아니라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어른들도 춘향전의 참맛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부모와 자녀들이 우리 고전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토론하고 싶다면 이런 책을 활용하는 것도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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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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