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그.리.고(그림책 리뷰 창고)

이미지

도서명 표기
버찌 잼 토스트
글쓴이
문지나 글그림
북극곰
평균
별점9.8 (19)
흙속에저바람속에

"내년에 다시 만나자"

<버찌 잼 토스트>를 아이와 함께 보고 읽고

 

 

[들어가며] 4월초 주말 아이와 베란다에서 제법 따사로워진 햇살을 맞으며 창 밖을 내다본다. 얼마전까지 만개했던 벚꽃잎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무심결에 아이에게 벚꽃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라고 권한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 여기서 마무리가 되면 좋겠지만, 여지없이 아이는 벚꽃을 왜 내년에 다시 볼 수 있는지 되묻는다. 곧장 벚나무 생장에 관한 내용을 검색한 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이야기해주면서 잊고 지낸 사실 하나, 버찌는 벚나무의 열매라는 걸 새삼 기억해낸다.

    작년부터 그림책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알게 된 <고요한 나라를 찾아서>를 짓고 그린 문지나 작가의 신간 <버찌 잼 토스트>를 보면서 아이와 함께 보낸 봄날이 오버랩되는 걸 느낀다.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벚나무 공원, 그 곳에서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토스트를 파는 가게, 그 가게 주인 토토와 버찌를 무척 좋아하는 여행자 모모(아이의 태명으로 아이는 이따금 그렇게 불리길 좋아한다)까지 그림책의 배경과 등장인물만으로도 아이와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제 제목만큼이나 새콤달콤한 이야기가 듬뿍 담겨져 있을 것 같은 <버찌 잼 토스트>를 아이와 함께 펼쳐본다.

 

 

[줄거리]  어느 여름날 벗나무 공원에서 토스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토토는 여행중인 모모를 만난다. 토토와 모모는 금세 친구가 되지만 여름이 끝날 무렵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토토는 모모를 그리워하면서 모모가 남기고 간 버찌로 잼을 만든다.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와도 버찌 잼 토스트는 토토와 친구들과 함께 한다. 모모도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모는 바뀌는 계절마다 편지로 토토의 안부를 묻는다. 약속했던 여름이 다가오자 토토는 모모를 위해 버찌 잼을 만들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끝내 모모는 오지 않고 미안함을 담은 편지만 토토에게 전해진다. 과연 이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 보면서 아빠 혼자 딴생각 하기] 그림책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오는 그림에 대한 아이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버찌 잼 토스트>를 함께 보면서 아이의 상상력과 말솜씨는 나로 하여금 때로는 웃음을, 또 때로는 감탄을 자아낸다. 먼저 토토가 토스트를 만드는 장면에서 아이는 지금까지 엄마가 (토스트기에서 나온 빵에 딸기잼만 발라서) 해준 토스트만 먹었던 걸 상기하며 "왜 토토는 빵에 계란 후라이를 올려?"라고 묻는다.

 

 

    반면 나는 토토 옆에 있는 회전목마에 시선을 고정한다. 모모가 떠난 날 밤 토토의 꿈 속에도 목마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모모와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토토에게는 항상 두 가지 마음, 즉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픈 마음과 또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픈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다음으로 토토와 모모가 버찌를 먹는 장면에서 아이는 "모모는 (버찌 발음이 익숙하지 않은 듯) 이거 잘 먹는데, 토토는 왜 안 먹고 자꾸 토해(로 듣고 '뱉어'로 해석)?"라고 묻는다. "모모는 신 걸 잘 먹는 친구이고, 토토는 신 걸 잘 먹지 못하는 친구라서 그런거 같아."라고 나는 답하면서 모모가 토토에게 한 말을 곱씹어본다. "전 버찌를 아주 좋아해요. 이렇게 멋진 곳에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토토는 버찌가 너무 시어서 말문이 막혔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살아온 벚나무 공원이 너무 익숙하다보니 멋지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나 혹은 다른 멋진 곳을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대답을 못한 건 아닐까.

 

 

    다음으로 아이는 모모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태연하게 지적한다. "모모는 왜 의자에 똑바로 앉아서 안 먹어? 이거(버찌)는 왜 식탁에 다 흘리고 먹어?" 요즘 한창 식사예절을 익히고 있는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토토의 시선을 좇아 창 밖을 바라본다. '나도 모모처럼 넓은 세상을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토토의 생각으로 미루어 보건대, 창 너머로 길을 떠나는 이는 혹시 토토가 아닐까.

 

 

    모모가 떠나고 새로운 봄을 맞은 토토가 겨울 내내 예술의 도시에서 무용수들의 춤 공연을 보며 마음 속에 봄이 찾아온 것만 같다며 지난 봄을 그리워하는 모모의 편지를 받은 장면이다. 흩날리는 벚꽃과 벚나무 아래에 그려진 무용수들의 다리를 보고 아이는 연신 외친다. "팁, 톡! 팁, 톡!" 두 돌이 지나서 잠시동안 배웠던 발레수업이 생각난 모양이다. 토토와 벚나무 공원의 친구들이 즐겁게 춤추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토토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이 다시 찾아오지만 끝내 모모는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짧은 편지를 통해 미안함을 전하며 자신은 북쪽 얼음나라에 오로라를 보러가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모모의 편지를 읽어준 뒤 모모는 오지 않았다고 말하자, 아이는 "(토토가 바라보고 있는 분수 속을 가리키며) 여기 있는데?"라고 소리친다. "이 모모는 진짜 모모가 아니고, 토토가 보고 싶어서 모모를 생각하고 있는거야."라고 말해주지만, 또 다른 생각에 "어, 맞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라고 얘기하며 아이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로라(어쩌면 모모)가 너무 보고 싶어요...."

 

 

"버찌 잼은 정말 달콤했어요."

 

    마지막으로 <버찌 잼 토스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모모가 떠나면서 남긴 버찌를 밤새워 잼으로 만든 토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양의 버찌 잼 위에 누워 밤하늘에 떨어지는 버찌별을 바라보는 토토가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커다란 숟가락은 이 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나오며] 나날이 길어지는 집콕생활로 인해 계절이 오고 가는 것조차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무감각증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키트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독서가 이러한 키트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는 걸 주위 사람들을 통해 실감하고 있다. 여러 장르 가운데 부담없이 상상하며 사색할 수 있는 그림책, 이번에 만나본 <버찌 잼 토스트>도 추천하고 싶은 책 중 하나다.

    그림책 속 밀도 높은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와 어른 모두 무뎌진 계절감이 새싹 돋듯이 자라나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벚나무와 코스모스, 비와 눈 등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감각할 수 있고, 버찌 잼이 발린 토스트는 보기만 해도 떨어진 식욕을 돋게 만든다. 기운없을 땐 잘 먹는 게 보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토토와 모모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나면 일상과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평온한 삶을 사는 토토에게 모모가 건네준 버찌는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처럼 보인다. 토토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를 일으켜준 것을 보면 말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또 재충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일 것이다. 잠시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설음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은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토와 모모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오로라를 함께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여행이 길어지고 힘들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돌아오면 반겨줄 일상이 늘 기다리고 있기에.


 

"토토 아저씨, 여행하다가 힘들면 이 사진을 보세요.

언제라도 돌아올 데가 있다는 걸 알면 힘이 날 거예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좋아요
댓글
2
작성일
2023.04.26

댓글 2

  1. 대표사진

    Joy

    작성일
    2021. 4. 3.

  2. 대표사진

    달밤텔러

    작성일
    2021. 4. 4.

흙속에저바람속에님의 최신글

  1. 작성일
    15시간 전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15시간 전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5.4.19

    좋아요
    댓글
    1
    작성일
    2025.4.19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4.13

    좋아요
    댓글
    1
    작성일
    2025.4.13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4.24
    좋아요
    댓글
    221
    작성일
    2025.4.24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4.25
    좋아요
    댓글
    200
    작성일
    2025.4.25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4.24
    좋아요
    댓글
    117
    작성일
    2025.4.24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