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의 서재(수리중)

흙속에저바람속에
- 작성일
- 2020.12.16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
- 글쓴이
- 반은섭 저
궁리출판
잘 모르겠으면, 미분하세요
<인생도 미분이 될까요>를 읽고
처음 책제목을 보고 두 가지 궁금증이 인다. 정말 인생도 미분이 될까? 그런데 미분이 뭐였더라? 말 그대로 철학적이면서도 수학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분이라는 수학 용어를 알고는, 아니 배운 적은 있지만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말을 빌리자면 학창시절에 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였다. 수학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보다는 해설집을 먼저 보고 거꾸로 답을 찾는 데 급급했다. 그때처럼 책이 던지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자마자 목차를 훑는다.
"잘 모르겠으면, 미분하라." 미분기학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고, 현대물리학에서 초끈이론의 중요한 원리를 이끌어낸 중국 출신의 수학자 천싱선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미분의 대상은 '함수'이며 함수는 '수의 변화'를 나타내는데, 다항함수를 미분하면 차수가 내려간다고 한다. 즉 삼차식을 미분하면 이차식이 되고 이차식을 미분하면 일차식이 되는 것처럼, 문제 상황을 조금 더 낮은 차원에 내려놓고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일러준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수치화할 수 있습니다. 변화의 정도를 나타내려면, 변수 두 개가 필요하지요.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x)에 따른 마음 상태의 레벨(y)을 체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함수입니다. 식 y=f(x)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함수는 그래프로도 표현이 가능합니다.(123쪽)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이렇게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가르켜 저자는 '미분'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미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복잡한 수식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수학이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수학적 상상력으로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함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인다.
"나는 주어진 최댓값, 최솟값 사이에서만 평생을 지냈지만, 자네는 그러지 말게, 함수식을 변화시키면 한계 역시 변한다네."(137쪽, 저자의 수학선생님 말씀)
미분과 함수의 관계가 머릿속에 다시 그려지자 정말 인생도 미분이 될 것 같다. 수학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호감과 호기심으로 바뀌는 걸 느끼며 다시 책의 목차를 살펴본다. 미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적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수학 수업에서 먼저 미분을 배우고 그다음으로 적분을 배운다. 그런데 수학의 역사에서는 적분이 미분보다 훨씬 오래된 개념이라고 한다. 미분이 차원을 낮춰 생각하는 것이라면, 적분은 차원을 올려 바라보는 것이며 차원이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진다는 표현이 퍽 흥미롭다.
가끔 일이 복잡하게 꼬여 있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에서 지혜를 빌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넓이를 구하기 위해서 주어진 함수의 원시함수를 찾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원시함수를 찾는 것은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넓이를 구할 때, 원시함수를 찾아 양 끝 값을 대입한 후, 빼주는 아주 간단한 작업만 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겠죠?(198쪽)
이 책은 수학이 갖고 있는 철학적인 면에 주목하여 이를 우리 삶에 비추어 보는 거울, 즉 '수학의 지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 미적분 외에도 공집합, 무리수, 소수 등 여러 수학 용어에서 우리 삶에 적용시켜 볼만한 지혜를 찾아 보여준다.
공집합은 모든 집합의 부분집합으로 아무것도 없는 공(空)의 개념, 무(無)의 개념을 집합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비어 있으나 추억으로 가득한 빈집을 묘사한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라는 시처럼, 세상을 살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도 있기 마련이라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때로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흔히들 눈을 감고 아무 숫자를 하나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자연수나 분수 같은 유리수를 생각하지 √3과 같은 무리수를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저자는 자연계에는 유리수보다 무리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보다는, 우리의 인식 너머에 무수히 많은 존재와 현상이 있음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한다고 조언한다.
소수는 2, 3, 5, 7 등과 같이 오직 1과 자기자신으로만 나누어떨어지는 자연수를 일컫는다. 저자는 수업 첫 시간이면 학생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소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친구들을 나 자신과 같이 존중하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한다고 가르친다.
타인이 있어야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도 공부합니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내 친구가 곧 나를 이루는 소수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60쪽)
책에는 철학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실제 수학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하는데, 수학 선생님이 왜 문제를 잘 풀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문제를 무조건 많이 풀어보고, 새로운 문제를 풀 때 이미 풀어본 문제 풀이법을 의도적으로 생각하며, 구체적인 표상(그림 등)과 연결지어 생각하기를 추천한다. 수학 문제 해결은 '직관'으로 시작해 이성과 논리로 마무리되는 고도의 사고 과정으로 과거에 내가 풀어봤던 경험과 감(感)은 풀이 과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데, 이때 직관이 큰 작용을 하게 된다고 한다. 직관의 힘을 기르기 위해 수학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을 나아가 인생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많이 쌓아가는 것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저자의 해석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또한 이러한 수학 문제 해결에서 '반성'이라는 개념도 빼놓을 수 없다.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 폴리아는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을 네 단계(문제의 이해->계획 세우기->계획의 실행->반성)를 제시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반성'의 단계라고 말했다. 위 사진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많은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처음부터 주어진 질문에 잘못된 덧칠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저 답안의 보기들을 대입해보는 것만으로도 정답(은 2번)을 구할 수 있는데, 불필요하게 양변에 제곱을 함으로써 문제 풀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평소에 우리도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불필요한 생각이나 행동을 종종 하게 되는데 이때에도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반성하는 삶은 우리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반성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고 말하며 '영혼을 기다려주는 인디언의 말 타기'로도 비유한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가끔씩 말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걸음이 느린 영혼을 배려하는 행동입니다. 마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아직 쫓아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려주는 것이죠.(82쪽)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현재는 싱가포르한국국제학교에서 생활중인 저자는 우리나라 못지않은 현지의 교육열을 체감하면서도, 특히 국내의 수학교육 현실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모습에서 수학 공부에 임하는 자세를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수포자’라는 말에 대해서는 깊은 유감을 표현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 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수학은 본래부터 어려운 학문이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수학 너머에 있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면 수학공부에 한결 더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다독인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야 하는 빈틈없고 차가운 수식으로 가득 찬 수학 교실보다는 실수나 실패가 허용되는, 누구나 마음속으로 수학을 음미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길 소망합니다.(153쪽)
저자의 이러한 소망이 담긴 이 책은 수학이란 단순히 시험문제 풀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수학에 관한 이론이나 용어 설명은 최소화하고, 수식이나 수학적 사고를 통해 삶에 적용시켜볼 수 있는 태도와 자세를 이야기한다. 나 역시 책을 읽고 난 뒤 요즘 초중고 수학 교과서의 구성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수학교과서에 삶의 지혜나 인문학적 사고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나 이야기를 각 단원마다 넣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무쪼록 청소년과 부모, 그리고 나같은 '수포자'(수학을 포용하고 싶은 자)의 수학감수성을 끌어올리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이 수학공부와 함께 그 너머에 있는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식'이 되어주길 바란다.
수학의 언어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직관이 작용하는 방식을 명쾌하게 표현해주며, 더 나아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풍부한 해석을 선물해줍니다.(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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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