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마흔의 서재(수리중)
주간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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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우한일기
글쓴이
팡팡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9.3 (19)
흙속에저바람속에

바이러스와 여덟 글자가 만나면 생기는 일



<우한일기>를 읽고



 



 





 



"호수의 도시, 교통의 요지"



백호지성, 구성통구(百湖之城, 九省通衢)



 



  몇 해 전 여름, 중국 출장에서 만난 현지 관계자가 내게 우한을 소개하면서 했던 여덟 글자다. 우한은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로서 지리적 이점을 살려 중국 전역을 잇는 교통의 허브이자 양쯔강과 더불어 동호(東湖) 등 호수가 많아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무더운 날씨 속에 인파를 헤치며 걸었던 우한 시내의 풍경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뒤 우한은 세계인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주목받게 된다. 2020년 창궐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말이다.



  그 사이 중국 관련 업무를 그만두고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긴 내게 "요즘 괜찮냐?"라고 물어오는 주위 사람들의 SNS와 전화가 한동안 끊이질 않았다. 또한 중국 친구들을 통해 우한 봉쇄 소식과 소설가 팡팡이 쓴 '우한봉쇄일기(武漢封鎖日記)'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번에 만나본 <우한일기>에서도 거듭 나오지만,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 매체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검열과 더불어 아주 민감한 사안이었던 만큼 우한일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 이 책은 이미 지난 해 미국에서 발간되는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본으로 만날 수 있지만 정작 중국 내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여러 의미로 와닿을 책, <우한일기>를 드디어 펼쳐본다.



 










  오늘은 우한의 홍보영상 한 편을 보았는데, 제법 잘 만들어진 영상이었다. 광활하고 평온한 우한이라는 도시에 '일시정지 버튼이 눌렸다'고 표현했다.



(69쪽, 2월 3일 X 봉쇄 12일 차)




 



  이 책은 초유의 전염병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두 달여(76일)간 봉쇄되면서 벌어진 일들에 관한 개인의 기록이자 일기다. 우한은 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다. 하루 아침에 어제와 전혀 다른 일상을 맞이해야만 했던 그 많은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저자는 자신의 웨이보(블로그)를 통해 60개의 일기 형식으로 전한다.



  무릇 보통의 일기가 그러하듯이 <우한일기>도 그날그날의 날씨와 계절의 변화로 시작된다. 나날이 심해지는 전염병의 기세 속에서도 저자와 우한 시민들을 위로해주는 건 맑은 날의 햇살이다. 그러다 비가 내리고 매서운 추위가 몰려오면 다시금 그들의 기분도 한없이 가라앉게 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어서 봉쇄된 도시에서 유일한 창문을 열듯이 저자는 매일 눈을 뜨면 핸드폰을 열어 도시 안팎의 전염병 상황을 확인한다. 전염병으로 인해 낯설어진 일상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우한 사람들의 소식을 수집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의료계와 언론계 등에 몸담고 있는 오랜 친구들이 그의 소식통이 되어준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마스크를 물에 빨아 다리미로 다려서 소독한 후 재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32쪽, 1월 27일 X 봉쇄 5일 차)



 



  또다른 뉴스에서는 아버지가 격리되는 바람에 뇌성마비 아이가 혼자 닷새 동안 집안에 있다가 아사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48쪽, 1월 30일 X 봉쇄 8일 차)



 



  최근 들어 내 주변에서도 '사망자'가 생기고 있어 코로나바이러스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



(100쪽, 2월 9일 X 봉쇄 18일 차)




 



   저자에게 있어 가장 나쁜 소식은 매일같이 전해지는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다. 부고를 전해들을 때마다 망자와 그의 가족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말들을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린다. 비록 암담한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밝은 빛과 같은 좋은 소식을 찾아서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장면도 여럿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웃음의 순간을 만들어 우한 시민들을 위로하는 쓰촨성 사람들의 유쾌함,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만든 병원(팡창병원)에서 환자들이 보여준 활기, 죽음의 공포 속에서 피어난 새 생명이 주는 희망이 그러하다.



 










  "청두에 있는 우한 사람 2만명을 전부 찾아낼 방법이 있다. 지진이 났을 때 깜짝 놀라 허둥지둥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은 분명 우한 사람이다. 청두 사람들은 집에서 족욕을 하고 있다."



(68쪽, 2월 3일 X 봉쇄 12일 차)



 



  팡창병원의 내부는 공간이 아주 넓어서 춤추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병과 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광장무(廣場舞)를 추고 있었다. 우리 이 춤을 '팡창무'라 부르는 건 어떨까?



(106~107쪽, 2월 10일 X 봉쇄 19일 차)



 



  이게 오늘 들은 소식 중 가장 좋은 소식이다. 맞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하늘이 주신 최고의 희망이다.



(115쪽, 2월 11일 X 봉쇄 20일 차) 




 



  <우한일기>에서 저자는 그의 소식통들과 함께 도시가 오랫동안 봉쇄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분석하여 세 가지로 밝히기도 한다. 첫째, 초기에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바이러스가 확산되었고, 둘째, 적절치 못한 격리방식으로 감염이 가속화되었고, 셋째, 의료자원이 고갈되고 의료진들이 쓰러지면서 치료 속도가 더뎌졌다고 말이다. 그의 일기를 보기라도 한 것일까, 초기 대응이 미숙했던 중국 정부도 전염병의 확산에 따라 나름의 방역 조치를 시행하며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 맞춰 적응하고 변화하는 우한 사람들 저마다의 고군분투기를 보면서 지금은 봉쇄가 해제되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중인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또한 1918년 스페인독감은 코로나19의 데자뷰로 종종 회자되곤 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바로 이러한 기시감 같은 것이 계속 느껴지기도 했다. 도시 봉쇄까진 아니더라도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 달 뒤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며 개인방역,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조치가 시행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제 주거단지에 대한 봉쇄령이 각 구역마다 전달되었다. 이제 누구도 밖에 나갈 수 없다. 이는 더욱 엄격한 거리두기를 위한 조치일 것이다.



(116~117쪽, 2월 12일 X 봉쇄 21일 차)



 



  제2호 전체 봉쇄관리 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문연 단지에서는 이전에 모두 협회를 통해 명령이 전해졌는데, 현재는 단지 내 가구들도 관리팀을 만들었다. 팀장과 지역사회가 손잡고 물품을 구매하고, 순번에 따라 공동현관에서 각자 물품을 가져간다. 새로운 생활이 새로운 관리방식을 가져왔다.



(141쪽, 2월 15일 X 봉쇄 24일 차)



 



  지역사회의 서비스가 더없이 세심하고, 마트 사장님의 수고가 만만치 않음이 엿보인다. 많은 우한의 일반 시민들이 현재 이렇게 살고 있다. 공동구매하고, 드라마 보고, 자고. 오늘로 봉쇄 42일째다.



(274쪽, 3월 4일 X 봉쇄 42일 차)




 



  이처럼 도시 봉쇄라는 물리적으로 단절된 상황속에서 인터넷과 SNS을 통한 사진, 동영상의 공유와 네티즌, 오랜 친구들과의 대화는 저자의 숨통을 틔어주는 소통의 창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심리적으로나마 외부세계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던 건 아닐까 짐작해본다. 더 이상의 그의 일기는 한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한 시민들은 물론 중국 각지의 사람들에게 우울한 일상의 '산소호흡기'가 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우한일기>는 위태로운 우한의 상황처럼 결코 순탄치 않았다. 바로 여덟 글자 때문이다.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



인불전인, 가공가방(人不傳人, 可控可防)



 



  어쩌면 전염병은 이 여덟 글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2019년 12월말 우한 중신병원의 안과 의사 리원량이 의대 동기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경고했다가 중국 당국이 유언비어 유포죄로 그를 체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회 혼란을 우려한 중국 당국은 그가 불었던 호루라기를 빼앗고 코로나 발병 사실을 은폐하며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는 말로 사람들을 안심시켰던 것이다. 결국 최초로 호루라기를 불었던 그는 환자를 돌보다 코로나19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우한의 시민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그를 추모했다.



  연일 이어진 의료진들과 제때 검사와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은 저자가 <우한일기>를 계속 써나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정부 검열로 인해 자신의 웨이보(블로그)가 차단되고 글이 삭제당하지만 그는 직무를 다하지 않은 지역 공무원들에 대한 질책과 우한시 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나간다. 여기에 더해 중국 정부의 조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책에서 '극좌파'라 부르는 주요 언론인과 교수, 일반인들의 비난과 공격이라는 이중고를 겪는다. 그럼에도 그는 무턱대고 욕하는 사람들을 차단할 수 있는 웨이보의 블랙리스트 시스템을 '자신을 깡패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는 방호복과 N95 마스크'라고 비유하는 위트를 선보이며 굳은 의지로 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수많은 인민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중국 각 지역 공무원들의 평균 수준,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고질병까지 들춰냈다.



(48쪽, 1월 30일 X 봉쇄 8일 차)



 



  전환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시민들이 집안에 갇혀 있는데, 꼭 이렇게 (중앙정부와 지역 공무원들이)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노래를 불러야만 했느냐는 말이다.



(121쪽, 2월 12일 X 봉쇄 21일 차)



 



  왜 우리 인민들은 이렇게 경계를 높이는데, 우리의 수장들은 이리도 무지한 것인가? 역시 상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상식을 생각하고, 우리는 생활 속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식을 생각한다.



(310쪽, 3월 9일 X 봉쇄 47일 차)




 



  새해 첫날 세계 각국의 새해맞이 뉴스에서 수많은 우한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원을 비는 현장을 보았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적어도 화면 속에 비친 그들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비치는 듯하여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최근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 종식 선언을 한 일부를 제외하고 유럽 각국에서 봉쇄 조치가 다시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우한일기> 속 이야기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여전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책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에게 시선이 가닿도록 이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길거리를 청소하고, 생필품을 공급하고, 죽음을 배웅하는 사람들, 묵묵히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그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에 감사함을 가져야겠다. 또한 다시는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보듬고 챙겨야할 이들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바로 아이들이다. 코로나로 인해 저마다의 크고 작은 상처와 슬픔을 안고 있을터인데, 가정과 사회에서는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심리적 도움과 치료를 잘 마련해야할 것 같다.



  끝으로 '일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혹은 느낌을 적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한사람의 일기장만 들여다봐도 무언가를 기억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살피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하물며 무수한 사람들이 같은 것을 바라보고 또 겪어내며 적은 일기들이 다 모인다면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기록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 시대의 일기장을 빼곡히 채운 일들이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나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예전에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문학은 개인의 표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무수한 개인의 표현이 모이면 그것은 민족의 표현이 되고, 민족의 표현이 여럿 모이면 그게 바로 한 시대의 표현이 된다. 같은 이치로 개인의 기록은 보잘것없고 전체적인 상황을 다 담기에는 부족하지만, 무수한 개인의 기록이 모이면 아마 전체적인 진실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270쪽, 3월 4일 X 봉쇄 42일 차)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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