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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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나비꽃 에디션)
글쓴이
박우란 저
유노라이프
평균
별점9.4 (36)
흙속에저바람속에

남자는 엄마와 딸의 눈칫밥을 먹고 자란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를 읽고



 





 



[책을 열며]



 



"네가 아니면 내가 누구한테 이야기하니?"



 



  어느 연속극 속 대사는 오늘날 현실가족 사이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지난 30년간 한지붕 아래 아들이자 오빠로서 '엄마와 딸'을 지켜 보았다. 지금은 남편이자 아빠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엄마와 딸'을 만나 함께 한지도 5년이 지났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여성들과 함께 보냈음에도 여전히 내게는 미지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른 두 별에서 온 남녀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난 알고 싶다. 아니, 알아야만 한다. 엄마와 딸이라는 두 여성의 관계에 대해 배우고 또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슬기로운 가족생활의 지름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여정에서 이정표가 되어줄 책 한 권을 집어든다. 바로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라는 책이다.



  우선 책표지를 통해 엄마와 딸이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억울함, 그리고 고마움이라는 양가적 마음들을 동시에 갖고 있는 관계라는 걸 알게 된다. 심리 분석 전문가인 저자는 다년간의 심리 상담과 꿈 분석을 바탕으로 이러한 엄마와 딸의 숙명적 애증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의 '무의식' 속 욕구와 욕망은 엄마의 '감정', '시선', '결핍', '모성', '남편'이라는 여러 회로를 통해 딸에게 전달되는데, 각 회로에서의 고장을 파악하고 이를 바로 잡아나가는 과정이 곧 엄마와 딸 각자가 '회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책속으로-엄마의 감정에 대하여]



 



"아이가 가장 불안할 때는 엄마가 바로 등 뒤에 있을 때이다"



- 자크 라캉



 




  여성이 자신의 만족을 직접 채우기보다 남편이나 아들, 즉 남성의 빈 곳을 메우는 방식으로 채우려 한다면, 왜 딸아이의 결핍은 같은 방식으로 채우려 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엄마가 딸을 자신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나 남편은 그나마 타자, 어떤 대상으로서 존재한다면 딸은 엄마에게 어떤 대상이기보다 마치 자신과 같은 존재들이지요.(18쪽) 




 



  먼저 엄마의 '감정' 회로를 들여다보자. 남편이나 아들과 달리 딸을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엄마이기에 딸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저자는 딸을 위해 상담을 의뢰한 엄마가 바로 가장 큰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딸을 위한 변화가 아니라 엄마의 불편한 감정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라는 것이다. 또한 딸이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 엄마는 그것이 해결되기 바란다고 하지만 그 범위는 엄마 자신이 불편하지 않은 선까지라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아니 어림짐작만 해왔던 엄마와 딸 사이에 관한 많은 것들이 오해였음을 여지없이 깨닫게 된다.



 



 



[책속으로-엄마의 시선에 대하여]



 



"가장 먼저 사랑을 빚어내는 것은 시선이다."



- 자코모 다 렌티니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좇거나 자녀를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그 대상으로 삼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즉,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자신의 삶 자체를 욕망해야 한다. 아이는 엄마의 시선이 향하는 그곳을 함께 욕망하고, 엄마가 좇는 그 무엇이 되고 싶어한다.(82쪽)




 



  엄마의 '시선'이 향하거나 머무는 곳을 살펴보자.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저자는 "자신은 지옥이다"라고 변주한다. 니체가 말한 타인도 결국 내가 투사한 타인이기에 타인을 내가 생각하는 시선과 생각의 틀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타인과 나의 경계가 없이 동일화를 겪으면서 심리적 혼란과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된다. 외부에서 원인을 찾거나 그것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만의 시선을 담은 인생의 항로를 찾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아이도 엄마가 내놓는 정답이 아니라 엄마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본받아 자기만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속으로-엄마의 결핍에 대하여]



 



"어떤 신체 증상은 암호화된 질문이며, 어떤 것을 표현하려는 노력이다"



- 대리언 리더



 




  우리의 기억은 선택에 따라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부모와 자식의 기억이 판이한 것은 우리가 결국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혹은 그것이 고통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적 이득이 있는 쪽으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결핍을 선택함으로써 끝없이 갈망하고 욕망할 수 있는 것이지요. 끝없이 나약한 사람으로, 결여된 자로 요구를 멈추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116쪽)




 



  엄마의 '결핍' 회로에 대해 알아보자.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라면 응당 채우려고 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핍을 해소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저자는 '나는 이런 사람인데 어쩌라고?'와 같이 그냥 결핍감을 내버려두지 말고, '나는 네가 상상하는 엄마는 아니지만 네 엄마로서 충분히 너를 사랑하고 있고, 너도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하다'라는 것을 아이와 엄마가 서로를 통해 경험하여 그것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외적으로 아무리 좋은 이미지를 가진 엄마라도 내 엄마로서 아이에게 개인적인 기억으로 체화되어 있지 않다면, 아이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부여될 수 없다고 한다.



 



 



[책속으로-엄마의 모성에 대하여]



 



"엄마가 가진 모성에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고 독성도 있다"



- 마이클 아이건 



 




  꽤 긴 시간 동안 만나 온 여성들을 보면, 모성이 없다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상처와 결핍에 압도되어 모성애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156쪽)




 



  엄마의 '모성'은 여태껏 엄마의 고유한 본능이라고만 여겨 왔는데, 모성이 의식적이고 선택적일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과거 엄마의 심리적 부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딸의 마음을 다독여주기 위해서는 이미 일어난 일을 만회하기 위해 지금 아무리 많은 것을 부어 넣는다고 해서 상처가 옅어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미 일어난 일을 충분히 인정하고 수용하고 충분히 겪어내고, 더 나아가 그에 따른 책임과 대가를 기꺼이 짐으로써 아이와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의 어린 딸아이와 성인이 된 여러 여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한 가지가 바로, 어떤 고통과 시련의 순간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 내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그저 나를 알아주는 '엄마'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안전한 관계가 확보되지 않아 벌어지는 갈등과 고통도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보호받음을 곧 사랑받음이라고 느끼는 아이들이 거꾸로 부모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아이들에게 애정 욕구 못지 않은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현상이 그러하다.



 



 



[책속으로-엄마의 남편에 대하여]



 



"어머니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자녀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애도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진다"



-대리언 리더



 




  아이들과 아빠가 직접적인 관계를 잘 맺고 그들만의 소통 창구를 잘 유지하고 있을 때, 은근히 불안해하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이는 가정 내에서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진 않을까, 내 존재감이 이들 사이에서 약화되지는 않을까에 대한 무의식적 불안이지요. 남편에 대한 분노가 심할 때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엄마의 말이나 행동, 시선 등은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204쪽)




 



  엄마의 '남편'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혹은 모른 척해왔던 나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기 전부터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이라 읽는 내내 나는 과연 어떠한 남편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평소 아빠의 입장에서 엄마와 딸의 애착관계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기란 요원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아빠와 아이의 관계를 불안해하는 엄마도 있다는 얘기가 뜻밖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아빠가 엄마와 딸의 2자 관계에 발을 들여놓는 건 아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엄마의 초대와 물러남'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반면, 책에 따르면 아빠가 엄마와 아이의 2자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 오히려 스스로 배제되거나 은근히 즐기며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많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이와 엄마, 그리고 아빠의 3자 관계가 아니라 엄마 아래로 들어가 아이와 등등한 위치에 서려는 아빠도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따금 "내가 애 둘을 키운다!"라고 푸념하는 아내와 늘 딸에게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구애하는 나의 모습를 돌아보게 된다.



  또한 부모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아이에게 끝없이 마음과 곁을 내주면서도 '네 삶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라는 일종의 무능의 자세도 필요하다는 걸 배우게 된다. 더불어 양육에서 있어 '누가 아이를 더 많이 돌보느냐'는 물리적 분배보다는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아내를 정서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남편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퇴근 후 조금이라도 함께 아이를 돌보려고 노력하는 남편을 알아주는 아내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책을 덮으며]



 




  어쩌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상실과 애도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매 순간의 내 모습,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끊임없이 잃어 갑니다. 그 잃어 가는 것들에 대한 적절한 애도는 나의 삶을 조금 더 가볍게 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지요. 잘 잃어 가는 것이 나를 잘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234쪽)




 



  책 곳곳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는 물론, 각자의 자기 '회복'을 위해서는 '상실'과 '애도'라는 의식이 충분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비움으로써 채운다는 말처럼, 잃어감으로써 온전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역설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살면서 저마다의 무의식적 욕구와 욕망에 대한 원인 혹은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상실을 허용하고 충분히 애도하지 않은 감정들은 그 모양을 달리하며 끝없이 돌아오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 안에서 진정한 상실과 애도를 경험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를 엄마와 딸에게 적용해보자면 어미 닭이 그동안 알을 품으며 느꼈던 만족감을 포기하는 일이 상실에 해당하며, 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견디는 과정을 애도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른바 줄탁동시(?啄同時)의 심리학인 것이다. 엄마와 딸 사이의 심리적 탯줄을 끊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는 책 제목만으로도 누군가에는 격한 공감으로 일독의 욕구를,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정할 수 없는 반감을 불러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일단 책을 읽고 나면 엄마의 감정, 시선, 결핍, 모성, 남편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국 자신과의 대화이자 자기를 들여다보는 행위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이해가 바로 회복의 첫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엄마답게, 딸답게가 아니라 '오롯이 나답게' 사는 삶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끝으로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주는 눈치밥 말고 한 공기의 사랑을 원하는 남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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