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의 서재(수리중)

흙속에저바람속에
- 작성일
- 2021.6.5
우주를 정복하는 딱 10가지 지식
- 글쓴이
- 베키 스메서스트 저
미래의창
자전하는 나를 공전하는 책
<우주를 정복하는 딱 10가지 지식>을 읽고
천문(天文)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도(千聞) 그때마다 신비하고 경이롭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늘에 묻는 것(天問)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서점가를 둘러보면 천문학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이 많이 보인다. 이번에 만나본 <우주를 정복하는 딱 10가지 지식>은 책제목부터 '딱' 부러진다.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할 10가지' 정도로 번역해볼 수 있는 원제(SPACE: 10 THINGS YOU SHOULD KNOW)에서 알 수 있듯이, 우주를 정복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우주에 관한 지식'을 정복하는 데 알아두면 좋을 10가지 물음과 답안을 담고 있다.
저자 베키 스메서스트는 영국의 천체물리학자로서 '은하와 블랙홀의 진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중이며,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우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빅뱅과 블랙홀에 대해 들어보거나 외계인과의 만남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우주하면 떠올릴 만한 질문에 대하여 오늘날 가장 인정받고 있는 이론들의 배경과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그 답을 찾아나선다.
사과를 나무에서 떨어뜨리고, 우리를 땅 위에 서 있게 만들고, 계절까지 변화시키는 중력의 법칙은 우리은하와 태양계의 모든 존재에 영향을 끼친다. 나아가 우리은하 너머의 더 광활한 우주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와 크기의 별들에서도 중력의 영향력을 목격할 수 있다.(23쪽)
아이가 첫걸음을 내딛는 과정에서도,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에서도 '중력'이 작용한다. 태초에 혼돈 상태였던 우주가 질서를 찾고, 태양계가 만들어지는 데에 중력은 말그대로 중요한 힘을 발휘했다. 태양이 만들어지기 전, 그 자리에는 '스'스로 '타'는 스타인 항성(핵융합반응으로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들이 남기고 간 수소, 탄소, 철 등의 무거운 원소들이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된 거대한 구름과 함께 뒤섞여 있었다. 이 구름 속에서 각각의 원소들이 지닌 원자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덩어리를 키우고, 중력도 함께 강해졌다.
커져가는 중력만큼이나 여러 천문학 용어와 설명을 이해하는 데 나의 어려움도 커져갈 때쯤, 저자는 피자 도우 반죽 덩어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접시나 원반 모양으로 평평하게 펴지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피자 반죽이 펴지듯 중력으로 뭉쳐진 덩어리들은 태양과 그 주변을 맴도는 원시행성이 되고, 모두 같은 방향으로 도는 궤도를 만들며, 원반 모양이었던 가스 구름이 사방에 가득했던 원자들과 함께 뜨거운 원시별이 되는 일들이 모두 중력 때문임을 알게 된다. 또한 지금 우리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는 이유가 수소 핵융합(태양과 같은 항성 내부에서 수소 원자 4개가 만나 헬륨 원자 하나로 변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 덕분이라 것은 덤으로 알아두면 좋겠다.
물리법칙들은 질서를 만들지만, 그 질서는 필연적으로 다시 혼돈에 빠진다.(25쪽)
중력이라는 간단한 물리법칙 하나로 혼돈 상태가 질서정연하게 정돈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저자는 놀라움과 감탄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 중력 덕분에 아름다운 별들의 섬이 된 우리은하가, 중력 때문에 파괴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40억 년 이후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서로 충돌하여 그 잔해들이 다시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밀코메다[Milkomeda, 우리은하를 가리키는 밀키 웨이(Mliky way)와 안드로메다(Andromeda)를 합친 말]'라는 하나의 거대한 은하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빅뱅 이전에는 우주 자체가 없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곳'에 무언가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아무것도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29쪽)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가장 인정받고 있는 것이 바로 '빅뱅(대폭발) 이론'이다. 138억 년 전 우주를 이루는 모든 물질이 한 점에 모여 있다가 순간적으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생성된 뒤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걸 이제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빅뱅 이전에는 어떠한 시공간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반론도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시간이 빅뱅과 함께 생겨났기 때문에 빅뱅이라는 사건 없이는 '이전'이라는 개념도 없다는 저자의 설명을 곱씹어보게 된다. 곧이어 '우주의 팽창'이라는 개념 앞에서 내 머리가 폭발하려는 순간, 저자는 실뜨기 놀이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실뜨기 놀이를 하는 동안 손의 움직임에 따라 밴드 안쪽의 공간이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는 것처럼, 은하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팽창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최초의 공간이 커지는 것이지 새로운 공간이 창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처럼 팽창하는 우주의 미래에 관한 가설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우주가 계속 팽창해서 은하와 별들 사이의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진다는 '열린 우주', 안쪽으로 잡아당기는 중력의 힘과 바깥쪽으로 뻗어나가는 팽창의 힘이 평형을 이루는 '평탄 우주', 중력이 팽창의 힘을 이기고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한 점으로 몰아넣어 버리는 '닫힌 우주'가 그러하다. 어쩌면 우주는 대폭발과 대수축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과정 속에서 인류와 같은 우주의 무한반복을 추측할 수 있는 지적 생명체도 함께 탄생해온 건 아닐까 하는 저자의 견해에 한 표를 던지게 된다.
블랙홀이 형성되면 빛으로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블랙홀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이유는 블랙홀의 중력이 다른 천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바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펄럭이는 깃발처럼 바람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은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46~47쪽)
다시 중력이 등장한다. 블랙홀은 빛도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중력이 강하게 압축되어 있는 천체를 일컫는다. 이때 중력은 뉴턴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우주 어디서든 천체가 그 주변의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는 그의 말에 나의 뇌세포가 휘어지려는 찰나, 저자는 축구공(태양에 비유) 하나를 트램펄린(우주에 비유) 정중앙에 올려놓는다. 축구공의 무게 때문에 트램펄린의 중앙이 아래로 처지는데 작은 탁구공(행성) 하나를 올려놓으면 오목해진 면을 따라 굴러 내려갈 것이고, 트램펄린에서 매우 심하게 휘어져 들어가 아예 수직선이 되어버리는 지점[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블랙홀에서 절대 탈출할 수 없는 시공간의 경계면]이 생겨서 탁구공이 이 경계면을 지나면 절대로 되돌아 나올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블랙홀 연구가인 저자는 자신의 마음이 수명을 다한 별이 초신성이 되어 생을 마감할 때 만들어지는 항성질량 블랙홀이 아니라,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에 빠져 있다고 고백한다. 초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원을 가지고 있는데, 수십 년간 여러 연구자들의 관찰과 분석 끝에 이만큼 높은 에너지를 지닌 천체는 이 초대질량 블랙홀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가장 유력한 증거로 2019년 4월에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국제공동연구팀이 공개한 메시에 87(M87, Messier87)이 있다.
메시에 87(M87, Messier87)
[출처 : https://eventhorizontelescope.org/]
한 알의 모래알로 인생을 보고,
한 떨기 들꽃으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에 무한을 움켜쥐고,
찰나의 시간에서 영원을 붙잡아라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1863년작)> 중에서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
은하 자체의 크기는 수십만 광년인 데 반해, 초대질량 블랙홀에서 생성된 제트(jet, 블랙홀이 주변의 물질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이 물질들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방출하는 현상)의 전파 방출 규모는 1,000만 광년이 넘는다. 만약 메시에 87이 한 알의 모래라면 그 중앙에 놓인 초대질량 블랙홀의 크기는 원자만 하고, 거기서 나오는 제트는 손바닥 전체만 하다고 표현한 저자는 메시에 87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위 시구를 떠올린다. 이 대목에서 나는 여태껏 몇 권 안되는 다른 천문학자들의 책에서 발견했던 공통점 하나가 떠올랐다. 어쩌면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고력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문학적 감수성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 우주를 정복하는 딱 10가지 지식 #1 : Wannabe
- 우주를 정복하는 딱 10가지 지식 #2 : 포와 고양이
지금까지 <우주를 정복하는 딱 10가지 지식> 가운데 '딱' 3가지만 살펴보았다. 뒤이어 별과 별 사이를 채운 암흑물질, 생명이 살 수 있는 별의 조건을 가진 제2의 지구,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 외계인을 만나기 위한 방법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다. 혹시 나처럼 우주여행 중 전문용어나 원리로 인해 책멀미를 겪게 될 독자를 위해 저자는 그것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와 상상을 마치 멀미약처럼 책 곳곳에서 건네준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나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 즉 우주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곧 우리가 존재하는 까닭임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이렇게 끊임없이 자전하고 있을 내 주위를, 이 책이 늘 함께 공전하며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지식의 경계를 넓혀가면서 우주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더 고차원의 그림을 발견해내는 흥미로운 탐구다.(9쪽)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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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