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마흔의 서재(수리중)

이미지

도서명 표기
식물학자의 노트
글쓴이
신혜우 저
김영사
평균
별점9 (99)
흙속에저바람속에

식물의 동물성에 대하여



<식물학자의 노트>를 읽고



 





 



이야기는 말없이 전해지기도 한다. 타자의 몸짓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이야기에 눈 기울이기 위해서는 가까이 다가가 상대와 키를 맞춰야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도 그러하다. 쪼그려 앉거나 때로는 까치발을 해야 제대로 식물을 마주하게 된다. '식물학자의 노트'는 식물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을 받아쓴 전기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식물의 관점에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간을 통해 식물의 생태가 곧 인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책 속에 뿌리내린 식물처럼 실제로 그들은 땅속에 고정된 채 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식물(植物)이라는 이름만 봐도 동물과 대척점에 서서 스스로가 심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으로 심겨지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책에서 만난 식물들은 상상 이상으로 생동감이 넘치다 못해 심지어 동물성(動物性)마저 느껴진다. 다양한 방법으로 씨앗을 퍼뜨려 그 속의 잠재력을 싹틔우려는 일에서부터 식물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씨앗이 거처를 땅으로 삼아 정착하는 것이 식물성의 한계로 보이려던 찰나, 줄기와 가지는 정주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다. 식물의 성장과 생존에 직결되는 광합성 작용을 하기 위함이다.



식물과 동물 모두는 중력 앞에서 평등하다. 인간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하늘을 날 수 없고 새들 역시 영원히 날지 못한다. 중력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로 본능을 추구하는 나무나 풀에 비해 힘이 없는 줄기를 가진 덩굴식물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괴테의 말을 몸소 실천한다. 칡과 등나무의 관계처럼 각기 다른 방향성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그들 역시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덩굴식물이 이웃한 식물에 기대어 살긴 해도 스스로 에너지를 만드는 일만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반면 식물의 본성인 광합성 능력까지도 버리고 다른 식물로부터 영양분을 얻어 생활하는 기생식물과 생존을 위한 자기 방어 혹은 공격용으로 독기를 품고 사는 독성식물로부터 동물의 향기를 맡게 된다.



식물 사회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부류가 있다. 논두렁 옆을 지날 때면 마치 개구리떼가 평형 영법을 구사하며 물 위를 떠다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개구리밥을 볼 수 있다. 삶의 터전을 흙에서 물로 옮겨 그 위를 부유하는 풀, 즉 부평초가 그의 또 다른 이름이다. 꽃 피우는 데 공을 들이기보다 그 에너지를 잎과 줄기로 분화하지 않고 잎의 기능을 하는 엽상체로 환원하여 번식에 집중하는 부유식물이 수상(水上)한 노마드의 후예 같기도 하다.



오랜 세월 식물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선택과 집중을 거듭하며 살아남아 진화했다. '식물의 동물성'은 환경 변화에 동물처럼 즉각 대응할 수 없는 식물적 한계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현된 기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몸과 마음을 돌볼 여유도 없이 쉼없이 움직이는 현대인들이 요즘 식물로부터 위로와 치유를 기대하며 식물성에 공감하고 있다. 인간에게 잠재된 '동물의 식물성'이 서서히 깨어나 식물과 동물의 차이를 넘어 생물로서 공통의 가치를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삶을 좀 더 유연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이야기를 그리고 쓴 노트를 서로에게 건네는 상상을 해본다.



 





 



#예스24X문화일보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기쁨



 


좋아요
댓글
22
작성일
2023.04.26

댓글 22

  1. 대표사진

    흙속에저바람속에

    작성일
    2021. 7. 20.

    @엄마는독서중(미듬)

  2. 대표사진

    모나리자 공식계정

    작성일
    2021. 7. 22.

  3. 대표사진

    흙속에저바람속에

    작성일
    2021. 7. 24.

    @모나리자

  4. 대표사진

    위풍당당

    작성일
    2021. 7. 25.

  5. 대표사진

    흙속에저바람속에

    작성일
    2021. 8. 17.

    @위풍당당

흙속에저바람속에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6.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6.1
  2. 작성일
    2025.5.3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31
  3. 작성일
    2025.5.30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30

사락 인기글

  1. 별명
    사락공식공식계정
    작성일
    23시간 전
    좋아요
    댓글
    3
    작성일
    23시간 전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1시간 전
    좋아요
    댓글
    4
    작성일
    21시간 전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naughtybae1993
    작성일
    22시간 전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2시간 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