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ㄴ이어령의 발상지(發想志)

이미지

도서명 표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글쓴이
이어령 저
문학사상
평균
별점9.2 (5)
흙속에저바람속에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ㅇㅇ' 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고



 



 




우리의 피부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이 있다.



(17쪽, 「여는 말」 중에서)




 



  두 해 전 예스블로그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닉네임을 '흙속에저바람속에'라고 정한 이유를 말한 적이 있다. 고(故) 이어령 선생의 저작 중 가장 아끼는 책이 바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정작 지금까지 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때마침 2월 26일이 선생의 1주기가 되는 날이기에 그를 기리는 마음으로 다시 책을 집어든다.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했던 1960년대 초에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주제로 경향신문에 연재한 글들을 엮어 만든 책에는 청년 이어령의 자유로운 사유와 예리한 시선이 가득 담겨 있다. 6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가 설파한 이야기들 가운데 시대에 맞지 않아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방대한 한국사를 토대로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 문화론을 일구어낸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자신과 같이 누런 얼굴색을 하고 같은 말을 쓰며 같은 의식주 문화를 공유해온 이웃들을 지켜보면서 그가 글로 그려낸 한국의 자화상은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 속 글쓴이의 모국에 대한 짙은 애정과 관심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림을 찬찬히 음미하도록 이끈다.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추함도 감추지 말고 드러내 마주할 때 비로소 한 단계 더 성숙한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선생의 쓴소리도 책 곳곳에서 들린다. 한국 문화를 하나로 콕 찝 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우리 문화의 정수(精髓)를 찾아내기 위해 의상(한복, 모자), 식습관(밥상, 음료), 건축(돌담, 신라 오릉), 생활도구(지게, 바가지, 장죽, 가래), 예술(노래, 설화)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소재를 끌어다 놓고 서로 다른 것들과 견주고 비틀고 뒤집기를 거듭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렇게 한국인의 손으로 빚은 마음들이 『우리 문화 박물지(리뷰 바로보기)』에 잘 드러나 있으니 함께 읽어도 좋을 듯하다.



 




배고픈 울음, 윷놀이 같은 정쟁의 울음 그리고 내 조국을 내 조국이라고 부를 수 없었던 울음······. 이 땅의 어느 흙 속에도 어느 바람 속에도 그 울음이 젖어 있지 않은 것이란 없다.(38쪽)




 



  본 서평에서는 『우리 문화 박물지』에서 다루지 않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흔히들 한국인의 정서하면 '한(恨)'과 '정(情)'으로 한정(限定)짓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먼저 '한'에는 원망과 억울함 그리고 안타까움과 슬픔이 배어 있다. "잘 울어야 효자였고 잘 울어야 충신이며 열녀였던(21쪽)" 우리나라는 울음과 눈물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 슬픔과 울음은 대부분이 가난과 굶주림에서 비롯되었음을 짚어낸다. 배고픈 설움보다 더 큰 것은 없다며 목청높여 울어대던 아이들이 종종 부르는 옛노래들에도 온통 먹는 얘기뿐이다. 그렇게 서민은 배고파서 울고, 유복한 인간이나 지식인은 삼족을 멸하는 당쟁의 검은 선풍 속에서 울었던 것이다.(32쪽) 특히 그동안 남녀노소 누구나 웃고 떠들며 즐기는 놀이로만 알았던 윷놀이에서 '비극성'을 재발견한 저자의 해석이 퍽 흥미롭다. 엎치락뒤치락 하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윷가락과 말판에서 쫓고 쫓기는 말들이 우리 민족의 비극을 암시하는 것 같다고, 어쩌면 윷의 말판은 피비린내 나는 사화 당쟁의 압축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의 그 '사랑'이란 말은 본래 고어(古語)로는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곧 사랑이요, 사랑하는 것이 곧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격렬하고 노골적인, 행동적인 사랑보다는 언제나 마음 속에서 샘솟는 사모의 이 한국인의 기질에는 더 어울렸던 모양이다.(164쪽)




 



  다음으로 '사랑'을 생각해본다. 저자는 서양인들의 그것을 활활 타오르는 난로불에, 한국(동양)인의 그것은 불이 다 타고 난 후에야 시작되는 화롯불의 불덩어리 혹은 온돌의 온기에 가깝다고 비유한다. 국경 없는 세계화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 오페라 『카르멘』의 카르멘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와 고려가요 「가시리」, 민요 「아리랑」의 화자들이 사랑에 임하는 자세를 비교해본다면 일리 있는 얘기다. "쉬이 덥지도 않고 쉬이 식지도 않는 사랑의 풍속은 엄격한 의미에서 애(愛)라기보다 정(情)이다.(164쪽)"라는 저자의 말과 위에 인용한 옛말(고어)로 유추해보건대, 한국인은 '겉사랑'보다 '속사랑'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를 거칠게 해석한 독자에게는 옛사람들이 너무 소극적인, 속된 말로 '멋대가리' 없는 사랑만 한 것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이제 '스타일'과 '멋'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차례다.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옷을 '스타일리시하다'고 말하는 것은 '멋지다'는 뜻과 다르지 않기에 '스타일'과 '멋'은 비슷한 의미로 여겨진다. 그러나 저자는 이 둘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정반대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스타일'이 '산만하고 무질서한 것에 어떤 법칙을 부여하는 것(268쪽)"인 반면, "'멋'은 무엇인가 격식에서 벗어나고 틀에 박힌 질서를 깨뜨리는 데에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거나 단추를 다 잠그지 않고 한 두개 풀어놓은 상태를 상상해보자. 아울러 지나치게 짜임새가 있어 빈틈이 없는 것을 보고 '멋대가리가 없다'고 말하는 걸 볼 때 '스타일'을 벗어난 파격성에서 '멋'이 우러남을 알 수 있다. 충청도 민요 「천안 삼거리」는 또 어떠한가. "천안 삼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척 늘어졌구나 흥!" 여기서 '멋'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를, 통제가 아니라 해방을, 타율이 아니라 자율을 나타내는 말로 한국인은 '멋'을 존중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당시 사회분위기에 억눌려 제대로 아니, '제멋대로' 발현시키지 못했던 그들이 오늘날의 K-문화를 본다면 조금이라도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멋' 속에서 미를 찾으려고 하고 '멋' 속에서 인생을 살려고 했다. 그것을 보면 우리는 개성과 자유 의식을 존중하는 민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자유 의식을 갖고 싶어 하면서도 부자연스러운 사회 예의나 유교적인 고식성* 밑에서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해석해야 될 것이다.(270-271쪽)



*고식성(姑息性): 뚜렷한 해결 대책 없이 임시적인 변통으로 그때그때의 안정만을 바라는 성질




 



  끝으로 책을 만난지 이십년이 지나도록 책의 제목이 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인지 궁금해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막연하게나마 우리나라의 인문(人文)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흙'과 '바람'이 제격이라고 어림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2021년에 출간된 이어령 선생과 김민희 기자의 인터뷰집 『이어령, 80년 생각』에서 마침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뭐가 있는진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거야. 뒤에 무슨 말을 넣든 그건 각자의 자유예요.(107쪽, 『이어령, 80년 생각』)"라는 선생의 말을 곱씹어본다. 한국인과 한국문화는 그 혼자만 써낼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대 혹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함께 그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과 반론을 제기함으로써 작게는 보다 적극적인 독서를, 크게는 집단지성으로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쓴 책이라고 믿는다. 전세계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K-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읽으면서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톺아보고 앞으로 만들어나갈 우리 문화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일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리 교과서 같이 딱딱한 '풍토(風土)'라는 말을 세 살 때 배운 우리말로 풀어봤어. '풍'을 '바람'으로, '토'를 흙''으로 바꿨지. 그랬더니 새 말이 됐어. 진짜 우리가 살아온 한국의 흙냄새, 바람결이 몸에 와 닿는 것 같은 말이 된 거야. 그리고 '바람 속에 흙 속에'로 하지 않고 '풍토'의 순서를 바꿔 '흙 속에 바람 속에'로 해봤지. 어때요? 말의 느낌이 한겨 살아나지? 한국의 풍토론이 시적 감각어로 변신한 거예요. '풍토'라는 판박이 말의 굳은살에서 새살이 돋아나게 된 거야.



(102쪽, 『이어령, 80년 생각』 중에서)




 



 


좋아요
댓글
3
작성일
2023.04.26

댓글 3

  1. 대표사진

    이하라

    작성일
    2023. 3. 1.

  2. 대표사진

    ne518

    작성일
    2023. 3. 2.

  3. 대표사진

    추억책방

    작성일
    2023. 3. 2.

흙속에저바람속에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6.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6.1
  2. 작성일
    2025.5.3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31
  3. 작성일
    2025.5.30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3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30
    좋아요
    댓글
    184
    작성일
    2025.5.30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30
    좋아요
    댓글
    168
    작성일
    2025.5.30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6.2
    좋아요
    댓글
    115
    작성일
    2025.6.2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