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마흔의 서재(수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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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역사의 쓸모
글쓴이
최태성 저
다산초당
평균
별점9.3 (586)
흙속에저바람속에

아무개의 역사에서 나를 발견하다

<역사의 쓸모>를 읽고



 





  누군가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역사가 에드워드 카의 말을 빌어 번하게 답할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면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는 왜 배워야 하는 걸까? 지난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역사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공부해온 시험 과목이었다. 역사 공부가 재미있어서 성적이 잘 나온 것인지, 아니면 시험 성적이 잘 나와서 역사를 좋아했는지 분명하지 않은 학창시절을 지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업무에 필요한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기도 했다. 또 시험인건가 싶지만 최근 제65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한 일은 이전과 다른 이유에서였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게 해주려면 나부터 다시 역사를 배워야겠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하여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시험 이후로 (『역사저널 그날』, 『벌거벗은 한국사』 등 교양프로그램은 논외로 하고) 오랜만에 나의 랜선 역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바로 우리나라 대표 역사 강사이자 큰별쌤으로 잘 알려진 최태성이다.

  당연하게도 시험을 위한 강의라 외울 것투성이였지만, 그것들 너머를 가리키며 역사를 왜 배워야하는지 가르치는 큰별쌤을 보면서 그와 한 약속대로 한국사 시험이 끝나면 그가 쓴 책을 꼭 읽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래서 얼마 전 신간 『최소한의 한국사』와 전작 『일생일문』의 토대가 된 <역사의 쓸모>를 홀가분하면서도 무거운 마음으로 펼쳤다. 책을 여는 글에서 ‘삶이라는 문제에 역사보다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편으로는 갸우뚱하기도 했다. 과거에도 저마다의 삶을 살아낸 무수한 사람들이 존재했고, 그들에게서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된 신분제 사회 탓일까, 대부분 역사에 기록된 사건과 인물이 왕 또는 위정자 위주라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처럼 느껴져 뭔가를 터놓고 얘기할 대상은 아니라는 인식을 떨치기 어려웠다. 살면서 고민이 있거나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역사 속 인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톺아보면서 도움을 받거나 생각의 전환을 경험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역사 속 인물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신분의 한계에 부딪혀 건너간 바다 너머에서 이룬 성공을 바탕으로 위기에 처한 신라인을 구하고 다시 그 벽을 넘고자 ‘도전’한 장보고, 정사(正史)만 취급하던 고려 전기에 야사(野史), 이를테면 단군신화, 전설, 민담 등 남들의 눈에는 쓸데없이 보이는 것들에서 ‘쓸모’를 찾아낸 안목과 노력으로 『삼국유사』를 후세에 남긴 일연, 임진왜란으로 수군이 거의 전멸한 상황에도 임금에게 ‘오히려’ 열두 척의 배가 남았기에 역전의 의지를 전하며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끈 이순신, 조선 후기 오랜 귀양살이를 참으며 끊임없이 글을 쓰고 많은 책을 펴냄으로써 역사의 ‘죄인이 아닌’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남은 정약용, 일제 강점기 안온한 판사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끝내 판사 앞 ‘피고인의 자리’에 앉게 된 박상진. 이처럼 이름난 사람들의 인생에서 각자가 추구한 삶의 가치와 태도를 되새겨보는 일은 언제나 옳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각 시대별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어요. 각 시대만의 과제라는 건 당대의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했던 그 무엇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시대 사람들의 꿈입니다.(217쪽)






  <역사의 쓸모>는이름난 사람들의 역사에 가려져 있던 ‘아무개’를 재발견하고 그들의 삶을 재조명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저자 역시 위인 중심의 역사에서 아무개들의 역사는 놓치기 쉽다고 지적한다. 전봉준, 김개남, 손병희 등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각자의 이름으로, 실제로 운동에 가담했던 수많은 농민들은 아무개로 통칭하여 함께 역사의 한 장면을 채우고 있다. 부여에서 공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고개인 우금치에서 벌어진 전투는 농민군이 패배하였고 동학농민운동도 실패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기록 너머에 죽창 하나만 들고 총으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농민군을 상상해본다. 그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한 발 더 나아가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조선의 복잡한 대내외 정세는 신분제 사회를 크게 동요시켰고, 아무개들도 시대의 과제를 점차 깨달아서 평등사회를 향한 꿈을 실현하고자 몸소 움직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신분제 폐지를 이끌어냈음을 역사가 말해준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아무개들의 행진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3.1만세운동의 지도자들 옆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을 부르짖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아무개들을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백성에서 시민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들’이라고. 책은 변화의 물결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방 후 분단의 아픔과 고통을 견디며 가족과 국가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세계수준의 경제문화 강국으로 견인한 아무개들로, 그 과정에서 갖은 시련으로 꺾일 번한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운 아무개들로까지 이어져왔음을 새삼 환기시킨다. 그동안 역사 교과서와 수험서에 나열된 사실로서의 기록 속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무수한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역사는 기록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계속해서 강조한 저자의 말을 곱씹어본다. 역사적 성취를 이룩한 위인들에게도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있었음을, 더불어 그들 곁에서 각 시대에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선택하고 행동한 아무개들이 존재했음을, 무엇보다 어느 시대에나 유명하든 무명하든 동시대를 산 이들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과거의 사람들에게 현재의 내가 끊임없이 묻고 그 답을 구하는 여정이 곧 삶이자 역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아울러 나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이 왜 그러한 결정을 했고 그로 인해 자기와 타자 그리고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한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타인 혹은 세상과 소통하는 데 적지 않은 조언과 위로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제 인생도 하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역사는 수많은 아무개의 작은 시간들로 빚어낸 큰 시간의 덩어리니까요.(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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