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마흔의 서재(수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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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글쓴이
윌리엄 포크너 저
민음사
평균
별점8.3 (36)
흙속에저바람속에

불행 중 다행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고



 



 



  어디선가 톱질과 망치질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애정(이라고 쓰고 애증이라 읽어도 무방)한 이와의 영원한 작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큰 아들 캐시가 몸져누운 어머니 애디의 '관(棺)'을 만들고 그 모습을 애디가 바라본다. 둘째 아들 과 셋째 아들 주얼은 3달러를 벌기 위해 집을 나섰고, 넷째이자 집안의 유일한 딸 듀이 델은 어머니 곁에서 연신 부채질을 해댄다. 막내 아들 바더만도 가계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데, 애디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 앤스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애디의 죽음 앞에서 번드런네 사람들의 수상한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날 온가족이 애디의 유언에 따라 고향 땅에 시신을 묻기 위해 영면한 애디의 관을 싣고 40마일이 넘는 길을 떠난 것이다.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쓴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의 서사뿐 아니라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퍽 흥미롭다. 59개의 장(章)이 화자의 시점을 특정인으로 고정하지 않고, 번드런 가족과 더불어 그들과 관계를 맺은 이웃 부부, 의사, 목사, 청년들 등 총 15명의 독백으로 채워져 있다. 처음에는 말하는 이가 많다 보니 마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처럼 책의 갈피를 잡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하나 애디 역시 그 누구보다 힘주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고삐를 당기듯 각 장에서 화자인 '나'를 찾아낸 다음에 그들이 전하는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좇아가다 보면 곧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려는 여러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먼저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소설의 구성적 측면에서 볼 때 애디의 이야기는 단 한 장뿐이다. 그러나 각 장에서 남겨진 이들의 목소리로 애디의 삶이 어렵지 않게 재구성된다. 애디는 한평생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191쪽)"라는 아버지의 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결혼 전까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일과 결혼 후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할까지도 의무적으로 수행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출산한 뒤부터는 스스로를 죽은 존재로 인식하여 남은 삶을 말 그대로 '죽어 있을 준비'를 위한 나날들로 메꿔나가기에 이른다. 번드런네 가족이 죽어가는 애디를 대하는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 누워 있을 때까지도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는 본연의 나를 비롯하여 교사, 배우자, 어머니로서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한 개인으로서,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과연 타자의 저울(시선)로 가늠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다음으로 앤스라는 인물을 통해 '신념(집념) 혹은 '욕망'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된다. 문득 청개구리 우화가 떠오른다. 자신의 무덤을 개울가에 만들어 달라는 엄마의 유언만큼은 꼭 따르고자 한 아들과 같이, 소설 속 앤스는 애디가 살아생전 남긴 말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집념을 보인다. 아울러 이보다 앞서 젊은 시절 땀 흘려 일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부터 땀을 흘리는 날이 곧 자신의 제삿날이라고 선언하며 나머지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나가는 걸 두 손 놓고 바라만 본다. 아이들이 차례대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얻어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속도에 맞춰 강행군하는 그를 보면서 그래도 아버지라고 불리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목적지에 다다라서 드러난 그의 민낯에서 집념이 아닌 집착의 눈빛을 발견하는 동시에, 인간의 욕망이 이토록 비루하고 잔인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또한 목수일이든 어떤 것이든 매사 균형미를 중시하는 캐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미치광이로 보이지만 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 따뜻한 말(言) 한 마디 주고 받기 어려운 가족보다 말은 못하더라도 교감할 수 있는 말(馬)을 더 애정하는 주얼, 원치 않았으나 죽음과 생명은 계속 교차됨을 몸소 보여주는 듀이 델, 불가해한 죽음마저도 동심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기에) 하려는 바더만. 어머니의 부재 이후 각자가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번드런네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그밖에 종교적 신념으로 번드런네 식구들을 평가하는 이웃 부부와 종교적 윤리를 벗어나 번민하다 애디의 죽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정신승리에 도취된 목사를 보면서 어쩌면 삶이란 부조리한 것투성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또다시 머릿속을 스친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매순간 옳고 그름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우리의 일임을 모르지 않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저마다 크고 작은 차이를 그려낸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불행 중 다행을 찾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 같기도 하다. 이처럼 독자로 하여금 소설 안팎의 것들에 대하여 다채로운 해석을 시도하도록 만드는 작품이 바로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갖가지 일을 저지른 후, 다시금 똑같은 공포와 놀라움으로 자신의 광기 어린 행위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269쪽)" 캐시의 말처럼 이 소설을 읽고 소설과 현실 속 그 누군가를 찾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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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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