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마흔의 서재(수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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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마음의 오류들
글쓴이
에릭 캔델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평균
별점9.1 (46)
흙속에저바람속에

마음의 생물학이 지향하는 세계를 들여다보다



<마음의 오류들>을 읽고



 





  문과 남자에게 과학은 대체로 가깝고도 먼 학문(영역)이다. 일상에서 공기의 소중함을 의식하지 않아도 사는 데 불편하지 않듯이 ‘과학’이라는 공기로 둘러싸인 현실 세계를 사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문과생이기 이전에 지적 욕구로 충만한(?) 인간으로서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과학 감수성을 끌어보려는 시도를 간헐적으로 이어왔다. 이를테면, 요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에서 벗어나 ‘나는 무엇인가?’라는 과학적인 시선이 우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을 느꼈다. 그것도 잠시, 번번이 마주하는 실패 앞에서 ‘우울할 땐 뇌과학’을 다시 펼쳐보지만, 과학을 받아들이는 머리와 가슴(마음)의 간극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다.

  이때 한 과학자가 문제를 바라보는 틀을 바꿔보라면서 내 어깨와 자신의 머리를 번갈아 톡톡 두드린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아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빛나는) 뇌과학자 에릭 켄델의 말을 곱씹어본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있기(존재하기)에 생각할 수 있다는 역발상으로 우리의 ‘뇌’가 인간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뇌는 그 생김새에서부터 작동하는 구조, 방식, 역할 등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복잡하다. 그야말로 신경과학자들에게 연구대상이자 인체의 신비를 풀 열쇠로 여겨지고 있다. 유전학 연구, 뇌 영상 촬영, 동물 모형 개발 등 크게 세 가지를 밑바탕으로 하여 20세기 말부터 발전해온 뇌과학을 일컫어 에릭 켄델은 ‘마음의 생물학'이라고 부르면서 "뇌가 모든 창의적, 사회적, 무의식적 정신활동 과정을 매개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덧붙인다.

  그에 따르면 먼저 ‘유전학’이 조현병과 양극성장애 같은 정신 질환에 유전이 관여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런 질환들이 본래 생물학적 문제임을 밝혔다. 다음으로 ‘뇌 영상 촬영’으로 다양한 정신 질환들에 뇌의 어떤 부분들이 관여하는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의 뇌에서 이상이 생긴 뇌 영역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져 약물이나 심리요법으로 환자를 치료할 때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질병에 관한 ‘동물 모형의 개발’을 통해 유전자와 환경이 서로 반응하여 뇌 발달, 학습, 행동을 어떻게 교란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고, 학습된 공포나 불안, 우울증이나 자폐증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변형된 유전자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에릭 켄델의 저서 <마음의 오류들>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밝혀진 뇌와 마음의 생물학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담고 있다. 인간의 뇌, 특히 ‘고장난’ 뇌를 다양한 연구와 실험 사례들을 거울삼아 구석구석 들여다봄으로써 자폐증, 우울증, 양극성장애, 조현병, 치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중독 등 질병들의 발생 원인과 증상, 치료법을 설명한다. 그동안 뇌를 감정과 기억의 통제에 관여하는 신체기관 정도로만 여겼던 나에게는, 탈이 생긴 마음과 정신 질환을 뇌의 장애라는 과학적 시각으로 살펴보는 일이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뇌의 각 부위와 신경물질 그리고 이에 관한 이론들이 독자의 발목을 잡을, 아니 눈길을 가로막아 가독성이 떨어질지도 모르겠으나, 우리 뇌가 가진 특성 중 하나인 회피 성향을 활용해봐도 좋지 않을까. 갈래갈래 뻗은 수많은 신경(神經)들은 신경쓰지 말고 주요 신경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선에서 큰길로 성큼성큼 걸어가듯, 일단 뇌 한 바퀴를 돌아보자는 목표를 정해서 저자가 그려놓은 큰 숲(그림)을 보고 나서 나무들(디테일)을 챙겨보면 좋을 듯하다.

  젊은 날에는 젊음을 모르거나 건강할 때는 건강을 돌보지 않는 게 인간동물이라고 했던가. 심신에 이상이 생겨야 그간의 정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데, 에릭 켄델은 생각을 전환하여 “‘뇌 장애’를 전형적이고 건강한 뇌를 들여다보는 유리창”으로 바라본다. 의사는 환자를 살피고 과학자는 연구하면서 신경과학·유전학적으로 뇌 장애에 관해 많은 것을 발견할수록, 우리의 뇌가 정상 혹은 비정상일 때의 마음과 행동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과거에는 여러 정신 질환들이 눈으로 뇌의 손상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유전적 성향과 더불어 그것을 촉발하는 환경 요인들이 상호작용하여 뇌 장애로 인한 질병이 발생한다는 입장으로 변화했다.



 




편도체가 감정을 '조율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 영역이 감정 경험의 무의식적 측면과 의식적 측면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편도체는 시각, 청각, 촉각과 관련된 영역들로부터 감각 신호를 받으면 반응을 일으키고, 그 반응은 주로 자율적인 생리 반응을 조절하는 시상하부를 비롯한 뇌 구조들을 통해 중계되어 퍼진다. 우리가 웃거나 울 때, 즉 어떤 감정을 경험할 때, 그것은 이 뇌 구조들이 편도체에 응답해 지시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편도체는 이마앞겉질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마앞겉질은 느낌의 상태, 감정의 의식적 측면, 감정이 인지에 끼치는 영향을 조절한다.(264~265쪽)




 



  책에 소개된 여러 정신 질환 가운데 ‘편도체’ 이상으로 인한 ‘불안’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내내 소설 『아몬드(손원평 지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인공 선재는 누구나 뇌 속에 가지고 있는 아몬드가 작아서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소년으로,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 영역이 선천적으로 작아서 ‘감정표현불능증(알렉시티미아)’을 앓고 있다. 반대로 책에서는 편도체가 너무 활성화되면 불안을 일으키고 이는 두려움과 공포 반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며, 두려움의 신체적 반응이 두려움의 자각보다 앞선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려준다. 소설을 처음 읽었을 당시 미처 알지 못했던 편도체 장애에 대해 이번 기회에 알아가면서 선재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일까, 선재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뇌에서부터 촉발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뇌과학을 다룬 <마음의 오류들>을 완독하고 나니 저자가 왜 시종일관 마음의 생물학이라고 강조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뇌에 관한 의학·과학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유익한 책이지만, 마음에 방점을 찍어 ‘마음’의 생물학으로 접근한다면 인문학적 통찰까지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 질환들에 영향을 주고받는 뇌 기능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되고, 여러 요소들의 결핍 또는 과잉으로 인해 발현되는 심리, 감정, 성격, 성향 등의 문제가 결국 인간의 본성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뇌에 대해 안다는 것은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일이며,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넓혀 그들을 '낙인찍거나 배제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을 당신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의 뇌”라는 에릭 켄델의 말을 되뇌면서 다시 나와 당신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어설프게나마 응답해본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저자의 마음이 오류가 아닌 주류가 된다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우리의 뇌를 알게 되는 날도 앞당겨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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