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ㄴ아무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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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아무튼, 식물
글쓴이
임이랑 저
코난북스
평균
별점9.2 (26)
흙속에저바람속에

내 안의 다정함을 싹틔우는 식물

<아무튼, 식물>을 읽고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밤이면 테라스에 불을 켜고 멍하니 흙을 만진다. 괜히 하릴없이 흙과 비료를 배합해두기도 하고, 뿌리가 많이 자란 식물들을 들어내 더 큰 화분으로 옮겨주기도 한다. 시든 이파리도 정리하고, 화분도 닦는다.(78쪽)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손길을 따라가보자. 분주하면서도 차분한 손놀림에 질서가 있다. 손끝이 가닿는 자리마다 흙과 뿌리, 이파리 등 식물의 마디마디가 마치 가려운 곳을 긁었을 때처럼 시원한 탄성을 자아내는 듯 보인다. 그린 핑거(Green Finger), 즉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가 잠시 숨도 고를 겸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키우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 이에 쉬이 응답하긴 어렵지만 결코 '식물'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아무튼, 식물>의 저자이자 밴드 디어클라우드(가 부른 「얼음요새」를 독자는 새겨울이 올때마다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놓고 즐겨 듣는다)에서 노래를 짓고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면서 십 년 넘게 남들과 다소 다른 타임라인을 살아온 임이랑 작가는 꽤 오랫동안 불안장애를 겪었다고 털어 놓는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어느날 뿌리박힌 식물이 흙을 털어내고 일어나 그의 가슴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더이상 불안이 아닌 식물을 키우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면서 그동안 느꼈던 허무함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식물들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는 집 안팎에 들인 화분의 갯수가 세 자리수를 넘길 정도로 다양한 식물들과의 '공생(共生)'을 추구한다. 살아오면서 타인과의 만남에서는 고려할 것들이 무척 많고, 그것들이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공하기 일쑤였다면, 식물은 아무런 말 없이 꾸미지 않아도 자신이 쏟은 애정만큼 자라고, 이를 지켜보면서 그 또한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기에 이토록 '건강한' 관계가 있느냐며 스스로 감탄한다. 사계절이 돌아와도 별다른 감흥없이 지내던 나날들이 온도와 습도 변화에 예민한 식물 친구들을 만난 후부터는 계절감과 더불어 삶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가드닝도 자기를 알아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이다. 내 집에 맞는 식물, 나에게 맞는 흙, 내가 좋아하는 수형,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질감이 존재한다. 각자의 기질에 잘 맞는 흙과 화분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키울지 결정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스스로를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41~42쪽) 




 



  한때는 그린 핑거를 꿈꾸며 겁 없이 가드닝의 세계에 발을, 아니 손을 갖다 댄 내가 가장 어려워한 것이 바로 '물 주기'였다. 저자에 따르면 대체로 초심자가 식물을 죽이는 이유인 과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물 주기 3년', 곧 식물에게 제때 적당하게 물을 주는 데에 3년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물을 줄 때는 항상 흙 속에 물길이 나지 않고 화분 전체가 물을 머금을 수 있도록 천천히 골고루 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특히 구름이 많은 날을 조심해야 하며, 번개가 치는 날에 내리는 비에는 질소가 풍부하게 담겨 있어서 양질의 비료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일러준다. 이렇게 식물에게 공급된 물은 성장활동에 쓰이고 남은 수분은 뿌리에서부터 끌어올려져 이파리 끝에 물방울을 맺기도 하는데, 이를 가르켜 '일액현상'이라고 부른단다. 이 경이로운 모습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입장에서 괜히 샘이 나는 건 비밀로 해두자.



  그렇다면 과연 식물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란 게 존재할까? 이 물음에 저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어떤 식물이 가장 잘 맞는지는 많이 키워보고 또 많이 죽여보며 알아가는 수밖에(121쪽)" 없다고 답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살아 있을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122쪽)"라고 덧붙인다. 온갖 공과 시간을 들였음에도 시들어가는 화분 앞에서 자책하며 고개 숙인 적이 많았는데, 그린 핑거의 말을 들으니 식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작고도 큰 파장이 이는 듯하다. 아울러 타인과의 관계맺기와 자신을 포함한 타인을 돌봄에 있어서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말이라서 곱씹어 보게 된다. 결국 식물을 돌보는 과정이 식물은 물론 자신을 돌보는 일인 동시에 자기에 대한 상찰과 성찰의 시간임을 새삼 깨닫는다.



  책을 덮으며 얼마 전 읽은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이 떠오른다. 너른 정원이든 솔아 빠진 방이든 그 공간 속에 뿌리 내린 식물을 보살피는 자의 마음은 닮아 있을 테니 두 권의 책을 나란히 식물 곁에 놓고 두고두고 펼쳐보면 어떨까. 초심자의 마음을 잃지 않고 식물의 마음을 얻어 서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져버릴 연약한 식물들. 삶 속에 어떤 존재든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계속 앞날을 기대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들에 기댄다. 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다. 나는 나로서 더 강해지고 단단해진다.(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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