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저바람속에
  1. 마흔의 서재(수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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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양장 에디션)
글쓴이
패트릭 브링리 저
웅진지식하우스
평균
별점8.9 (575)
흙속에저바람속에

예술과 삶을 바라보는 마음가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미술관에 가면 '예술품'이 있다. 미술관에 가면 예술품도 있고, '관람객'도 있다. 미술관에 가면 예술품도 있고, 관람객도 있고, 바깥과 전혀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것처럼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공기'로 가득하다. 미술관 안에서 예술품과 관람객 그리고 분위기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미술관의 풍경을 이룬다. 또 미술관에 가면, 에헴, 어디선가 (이제 말놀이는 그만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나'도 여기에 있음을 알리고 싶은 것인지 모를)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주위를 둘러본다. 수많은 걸작들과 그것들에 대하여 각양각색의 반응을 나타내는 방문객들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이제서야 내 두 눈에 들어온다. 그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의 경비원이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쓴 패트릭 브링리이다.
  《뉴요커》에서 뉴요커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던 그를 멈춰 세워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메트에 가만히 서 있게 만든 사건이 일어난다. 그의 전도유망한 친형이 젊은 나이임에도 암투병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죽음만큼 삶을 강렬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게 또 있을까. 삶의 덧없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그는 자신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말한다. 미술관에서 경비란 '아무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종일 걸려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독자는 십 년간 메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만나가면서 그가 맡은 일이 결코 가볍거나 직업으로서 가지는 의미가 덜하지 않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된다. 각 시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와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와 더불어 거대한 메트를 유기적으로 가꿔 나가는 데 필요한 전시, 사무, 보안 등 미처 몰랐던 미술관의 일들도 알 수 있다. 그를 따라 메트의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그에게서 보안예술가를 넘어 도슨트의 향기마저 느껴진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응시한 작품들로부터 길어 올린 그의 단상과 성찰이 예술은 물론, 나아가 삶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것을 '예술이 가진 힘' 혹은 '예술이 전하는 위로'라고 부른다. 그는 예술과의 첫 만남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면서 좋음과 좋지 않음이나 미술사적 지식을 적용하여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 보단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 기다리라고 조언한다. 대체로 위대한 예술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데, 모두가 너무도 당연하지만 금새 잊거나 애써 부정하고 싶은 한 가지 사실을 온몸으로 전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같은 그림을 거듭해서 보듯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피하지 말고 다시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메트에서 가장 슬픈 그림이자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으로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꼽은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또한 그는 두 눈을 연필로, 마음을 공책으로 삼아 미술관과 그 안에 전시된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스케치한다. 그 가운데 몇 장면을 엿보자면, 당대의 유행을 따르거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개인의 관심사 혹은 사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담아낸 화가들, 그들이 남긴 작품들을 보러 전시실을 '자유롭게 헤매고 다닌' 실존했거나 실존하는 관람객들, 또 그들을 경계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경비원들이 그러하다. 예술품이 가진 긴긴 생명력의 원천이 어쩌면 이것들을 향한 사람들의 손길과 눈길, 그리고 발길이 끊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저자 또한  자신을 향한 관람객들과 동료 경비원들의 손길, 눈길, 발길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곧 세상과 소통하면서 그동안 상실로 인해 뚫린 구멍 안에 들어간 자기를 일으켜 세워 자기 앞의 생을 밀고 나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메트에서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하고 중앙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그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책을 덮는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물음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가.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166쪽)" 질문을 살짝 비틀어 보자. '위대한'이라는 말은 타인의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조심스레 이 말을 걷어내고 다시 생각해본다. 누군가에 의해 이미 그려진 그림을 지향하는 삶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으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한 삶을 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조금 더 욕망하자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나를 아껴준 사람이 내 삶을 그려주는(이라 쓰고 '기억해주는'이라고 읽는다) 그림이라면 괜찮은 삶을 살다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 쓰고 보니 결국 인생은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앞으로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 때면 메트를 찾아가 삶의 짐을 보관함에 맡긴 뒤 그와 함께 삶과 예술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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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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