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의 서재(수리중)

흙속에저바람속에
- 작성일
- 2025.2.15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글쓴이
- 이호 저
웅진지식하우스
죽음을 배운다는 건 삶을 톺아보는 일이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을 읽고

살아 있는 사람이 매일 같이 죽음을 마주한다면,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유한한 삶에 무한한 허무감을 느끼거나 혹은 죽음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에 압도되지는 않을까. 독자의 걱정과 달리 한 법의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날마다 주검을 대하며 죽음을 대비하게 되고 나아가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생긴다고. 특수청소부,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 등 죽음을 일(상으)로 하는 사람들이 쓴 책들을 아껴 읽은 터라, 그가 삼십여 년간 수천 건의 시신을 부검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하여 깨달은 것들을 담아낸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도 무겁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집어든다.
저자가 법의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동안 법의학과 법의학자를 놓고 '의(醫)'보단 '법(法)'에 방점을 찍으며 지레짐작했던 나의 오해를 바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는 (아프지만) 살아 있는 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의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보통 때는 '사인(死因)을 찾는 사람'이지만, 최근 일어난 여객기 추락 사고처럼 화재, 폭발을 동반한 참사에서는 시신이 훼손되어 맨눈으로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의학자는 '사람을 찾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에게 부검은 단순히 죽은 이유를 밝히기 위해 해부하고 검사하는 일이 아니다. 부모보다 먼저 스스로 또는 타의로 생을 마감한 자식부터, 보험금 때문에 배우자에게 살해된 사람,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와 세월호 침몰 사고 같은 대형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사망했으나 그 원인을 모르(려 하)는 '사인 불명'의 사람들까지. 죽어서야 들리는 소리 없는 외침과 죽은 몸을 통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며 한 사람의 삶을 되짚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망자가 저세상으로 가는 길을 헤매지 않도록 촛불을 들어 밝혀주며 고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법의학자가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을 맞은 이들과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죽음의 이유를 밝혀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삶의 이유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까지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58쪽)
차마 말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의 억울함을 대신 풀어내어 당사자는 물론,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충분히 설명하여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또 상실을 애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법의학자의 역할이라고 그는 굳게 믿는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되도록 제도 마련 또한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개인과 집단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 그속에 숨겨진 문제를 찾아내어 동일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계속해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반복되는 죽음은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라는 인식을 다 같이 나누기 위한 첫걸음으로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세 가지의 죽음을 소개해본다.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오지 않는다. 죽음이 왔을 때에는 우리는 이미 살아 있지 않다.(221쪽)"는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나의 죽음'은 경험할 수 없다. '너의 죽음'은 가족, 애인, 친구 같은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 상실과 애도가 있는 반면, '그들의 죽음'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죽음으로 여겨질 테다. 저자는 '그들'의 죽음에 주목하면서 '그들'을 대상화하지 말고 '우리'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연대함으로서 함께할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여기에 그가 다른 장(章, 「의미를 찾는 삶에 대하여」)에서 인용한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와 『페스트』 이야기를 덧붙여도 좋을 듯하다. 무한반복되는 형벌의 굴레를 짊어진 시지프에게서 우리는 삶의 부조리를 애써 극복하거나 부정하기보단 차라리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다시 말해 페스트에 맞서 공중보건연대가 보여준 것처럼 "부조리함에 희생된 이들끼리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함에 맞서는 반항이며 삶에 희망을 안겨주는 유일한 방법(122쪽)"임을 모두가 깨닫는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과 괜찮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을 덮으며 죽음에 관하여 배운다는 건 삶을 톺아보는 일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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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