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의 서재(수리중)

흙속에저바람속에
- 작성일
- 2025.4.27
나?
- 글쓴이
- 페터 플람 저
민음사
회의하는 인간에서 회복하는 인간으로
<나?>를 읽고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대체 무엇인가, 여기에 앉아 있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기묘한 손을 가진 것인가!"(16쪽)
어느 법정에서 산 자인 동시에 죽은 자가 진술하고 있다. 그는 '나'이면서 또 '나'가 아닌 듯 보인다. 설익은 철학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의 나는 각기 다른 존재라는 얘기를 하는 것인가 했더니, 내 예상을 뒤엎고 정말 서로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어떤 계기로 인해 또 다른 '(하)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그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혹자는 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을 텐데, 그야말로 귀신(망자)과 씻나락(빵)은 이제부터 살펴볼 작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나?>는 독일 출신의 의사이자 작가인 페터 플람이 1926년에 발표한 데뷔작이라고 한다. 소설의 제목과 소설가의 이름 그리고 줄거리 모두 낯선 것투성이지만, 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이 시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낯익은 고전의 모습도 비친다. 소설의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나'에게 끊임없이 물음표를 붙여가며 자기 정체성에 대하여 회의하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도한 저자가 전쟁이라는 인간이 만든 가장 큰 부조리극에 작디작은 개인을 등장시킴으로써 극적 효과와 함께 개인과 타인, 그들이 모인 사회로까지 그 질문을 넓혀간다.
대체로 정체성을 두고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이름'이다. '나'와 또 다른 '나'의 이름은 각각 베투흐 빌헬름과 슈테른 한스이다. 베투흐라는 단어는 침대보를 뜻하기도 해서 그의 조부모들이 멸시받았던 삶을 고스란히 그 역시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놀림받으며 되물림하게 된다. 이름 하나가 어찌하여 한 사람의 모든 걸 결정지을 수 있느냐고 그는 항변하지만 그 이름은 사람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불가항력적인 전쟁에서 '여권'에 적힌 이름은 빌헬름과 한스의 운명을 바꿔 놓기에 이른다.
전쟁이 끝난 날에 살아남은 빌헬름이 그렇지 못한 한스의 옷에서 여권(旅券)을 발견한 그 순간은, 어쩌면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손에 쥔 장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얄궂게도 전쟁은 한스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죽음의 문턱에 선 빌헬름에게 그의 이름과 더불어 부활의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두 사람이 아이스하키에서 퍽이 아닌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여권을 놓고 '페이스오프(face-off)'하듯, 아니면 당시 의학 기술로는 불가능했겠으나 영화 『페이스오프(face/off)』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 얼굴을 바꾼 것처럼 빌헬름의 인생은 180도로 바뀌게 된다.
한스의 아내 그레테와 어머니를 비롯하여 여러 지인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다시 돌아온 그를 한스라고 부른다. 거의 모든 이들에게는 당연한 그지만, 아내와 재회하여 떨리는 심장박동이 전장의 포탄 소리로 들린다거나 별을 보러 간 천문대의 망원경이 대포로 여겨질 정도로 빌헬름 자신은 현실에 적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빨리 스스로 정신을 차리는 것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체가 탄로나지 않고 나아가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임을 그는 모르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그를 의사라고 부른다. 살면서 이름 못지 않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직업'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빌헬름은 또 혼란스럽다. 이를테면 환자를 수술하기 전에 착용한 옷과 모자가 지난 날에 그가 밥벌이를 위해 입었던 복장을 연상시키거나, 오랫만에 자리한 가족 식사에서 빵부스러기가 목에 걸려 연신 기침하는 아내와 빵이 딱딱하다며 불평하는 어머니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빵 만드는 법에 대해 운운하다가 어머니로부터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렇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기 전까지 제빵사였던 것이다. 당대에 만연한 계급의식과 차별 섞인 시선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의사와 제빵사 모두 생사여탈권에 관여하는 일이라는 점이 퍽 흥미롭다. 전자는 아픈 사람을 살리거나 죽을 수 있고, 후자가 손수 만든 빵이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직결되는 음식이기도 한 까닭이다. 이름과 직업 말고도 한 사람을 사람답게 보이도록 하는 것들이 많을텐데, 소설 속에서는 아내의 입을 빌어 '이것'을 말한다. "모르겠어, 당신 정말 이상해 보여, 마치ㅡ 당신 배꼽이 없잖아!(64쪽)" 살아돌아온 연인과 오랫만에 배꼽을 맞추려고 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할 배꼽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전투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그렇다고 변명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 몸에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들이 한 순간 부자연스럽게 변할 때 한 사람의 실존이 의심받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다양한 잣대로 재단되거나 판단될 여지가 다분하다. 과연 '나'는 '나'를 (되)찾는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법정을 떠나 자기만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두에 언급한 문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낸 것도 같다. 바로 '손'이다. 그가 밝혔듯이 그의 기묘한 손은 많은 진실을 가리키는 듯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둘 다 자신은 물론 타인을 살리는 데 쓰이는 두 손을 갖고 있다. 넘어지거나 어려움에 처한 타인이 내민 손을 잡아줄 수 있고, 반대로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용기 내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을 테다.
초면에는 낯설었으나 재독하면서 구면이 된 페터 플람이 소설을 쓰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손 쓸 수 없을 만큼 파국으로 치달은 현실 속에서 당대의 환자이기도 했을 독일인과 세계인에게 의술과 서술이라는 행위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으리라. 이제 그만 다툼을 멈추고 더 늦기 전에 전쟁통의 포탄에 산화되거나 파편화된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그러고 나서 우리 같이 손을 맞잡고 절망 너머 희망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자고 말이다. 긴 시간을 달려 내 앞에 도착한 소설 <나?>를 솜씨 좋은 제빵사가 알려준 레시피 또는 슬기로운 의사가 내려준 처방전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끝으로 이 책을 찾는 손이 많아지길 바라며, '나'의 마지막 증언을 옮겨본다.
"제발 나를 도와 주십시오. (···) 나는 여기 존재하지 않습니다. (···) 또 다시 포탄이 날아들까요,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이미ㅡ 흙 속에 누워 있습니다. 평화롭습니다, 그래요, 나는 평화롭습니다."(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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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