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역사.과학

kokh96
- 작성일
- 2021.6.12
백년식사
- 글쓴이
- 주영하 저
휴머니스트
개항에서 대한제국 시기까지는 한국인의 식탁이 세계 식품체제에 개방된 때로, 이미 세상은 주도권을 쥔 서양을 표준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서양화의 길로 출발하기도 전에 제국 일본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식민지 시기, 제국의 힘을 내세운 일본인들은 농수축산물과 식품 유통을 장악했다. 조선인은 가정과 음식점에서 조선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일본식으로 변하고 있던 식재료와 음식을 거부할 수 없었다. 서양 음식에 일본의 맛을 입힌 카레라이스와 돈가스 같은 화양절충음식을 서양 음식으로 이해하고 소비했다. 장유라고 불리는 일본식 공장제 간장은 지금도 음식점에서 한국 음식을 요리할 때의 필수품 중 하나다.
1950~70년대 한국인들은 분식 장려의 시대를 살았다. 간신히 배급 받은 미국산 밀가루로 수제비 김칫국을 만들어 끼니를 때웠던 사람들 중에는 밀가루 음식에 질려버려 쌀이 넉넉해진 1980년대 이후에는 수제비에 눈길도 주지 않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등장한 인스턴트 라면은 밥과 국을 갖춰먹던 한국인에게 아주 반가운 음식이었다.
1980년대 중반, 공산물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권력층 엘리트들은 농업 분야를 더 많은 무역과 더 높은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라고 인식했다. 이후 세계화 시대에 한국의 식량 주권은 바닥으로 내려 앉았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전통 음식이 최고라는 `음식 민족주의`는 지난 IMF 위기 이후 잃어버린 농수축산물의 종자 재산권을 되찾아오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폐쇄적인 음식 민족주의가 지난 100여 년간 숨 가쁘게 시대를 헤쳐온 한국인의 식생활과 음식에 담긴 어두운 그림자를 거둬낼 해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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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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