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感後..

koogi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9.11.9
영화의 시작.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앳된 청년이
흥분으로 말을 더듬으며 카메라를 응시한채 이야기한다.
"오디션이 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호주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어요.
믿을수 있어요? 마이클 잭슨이라고요, 세상에.."
역시 마이클의 세계투어 백댄서 오디션을 보기 위해 찾아온 또 다른 청년.
"그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그의 노래만을 따라부르고, 그의 춤만을 추며 자랐어요.
그는 내 인생의 전부에요. 그가 내 인생을 바꾸어놓았지요."
Rock 밴드를 다룬 만화로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은 일본의 히트만화 Beck에서
음반 기획사 겸 갱조직의 행동대장은
암살을 실패하고 돌아와 그를 추궁하는 보스에게 이렇게 답변한다.
살아서도 전설이었지만,
죽어서 더욱 격이 올라가버린 지미 핸드릭스와
동격인 살아있는 마이클이라니(만화 출간 당시엔 살아있었으니까).
대체 그가 뭐길래..
그의 전성기였던 80년대에 사실 난 꼬맹이였고,
이름으로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그의 음악을 음반으로 제대로 접한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TV를 안 보는 집안 분위기 덕분에
마이클 잭슨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의 무대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니
그의 환상에 가까운 문워크와 비디오에 먼저 반했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반대에 가까운 길을 걸은 셈이다.
어땠냐고?
한마디로 그냥 얼이 빠져있었다.
이런 사운드도 가능하구나.
댄스음악에 이 정도로 Rock 기타가 어우러질 수도 있구나..
AC/DC, 할로윈, Guns & Roses 를 들으며,
슬슬 싸구려 댄스(?)음악을 저질이라고 무시하며 멀리하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달까.
그리고 고딩 때.
학생 주임의 눈을 피해 야자를 빼가며,
상습적으로 드나들었던 동인천의 오래된 음악감상실에서
난 마이클 잭슨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에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심지>라는 이름의 이 음악감상실은
극장처럼 캄캄한 공간에서 신청곡을 받고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는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쿠션이 죄다 꺼진 쇼파에 주저 앉아
뮤직비디오를 안주 삼아 몰래 마시는 소주는 정말 최고였던 것이다..-_-b
3층에서는 팝, 4층에서는 메탈을 틀어주는 이 곳에서,
당연히 나는 4층의 단골이었는데
그날은 평소에 음악을 듣지 않던 친구놈을 꼬드겨 갔기에
3층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 같다.
급하게 올라오느라 가빠진 숨을 고르고,
가방에서 소주를 꺼내 뚜껑을 따는 순간,
화면에서 펼쳐진 그의 무대.
아마 빌리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사람이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저렇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가 싶었다.
발레에서 흔히들 많이 쓰는 중력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을
발레가 아닌, 문워크에서 발견하게 될줄이야.
마이클 잭슨이 처음 문워크를 선보인지 10년이 훌쩍 넘은
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문워크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팬이 되었냐고?
설마.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된 시기도 아니었고, 피씨통신이 고작이던 시절이다.
그의 영상 같은 걸 모으려면 비디오테잎이 고작인데
심지어 우리집엔 비디오도 없었다..;;
음악감상실을 찾을 때마다 몇 번 더 3층을 찾아 올라갔고,
(나로서는 배신에 가까운 선택이긴 했다.)
마이클 잭슨의 뮤비를 이것저것 신청해서 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곧 대학에 갔고
나는 이런저런 것들에 빠져 음악을 예전만큼 듣지 않게 되었으며
마이클은 그렇게 많은 것들과 함께 내 안에 묻혀갔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그가 죽었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빌딩전광판에서 보고 주저앉은 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2009년에,
그들의 죽음을 들을때마다 느꼈듯이
그 역시 죽은 이후에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되새기게 되었다.
죽어서도 그를 놓치지 않는,
타블로이드들의 루머 공세와 여전한 악플 속에서도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스톡홀름, 마이클의 죽음을 추모하는 대규모 플래시몹.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극장에 턱을 괴고 앉아
그의 콘서트 준비를 보며 그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꿈 속에서 살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그의 모든 것은 그저 이상(理想)을 향해 있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중력을 벗어난 듯 보이는 그의 춤이 그랬고
어른이 아닌 아이를 좋아하는 그의 성향이,
그가 영원히 살길 원했던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그랬다.
그의 자연 사랑은
Earth Song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지듯
아름다운 자연과 강한 인간이라는 이분법 속에
해결책 없이 그저 연약한 자연을 보호하는 인간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그의 세계 평화는
서구 자본의 침탈은 무시한 채, 그저 이유없이 가난하고 굶주리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돕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이 모든게,
좋은 놈과 나쁜놈이 확실히 구분되는 냉전이 남아있던,
아직 끝없는 성장의 환상이 가능해보였던,
현실을 가리는 것으로 꿈을 만들어냈던 80년대에만 가능했던 일이었다.
90년대 이후 그의 몰락은
그러므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은 아니었을까?
아동 성추행 파문과 성형 중독 의혹,
90년대의 차가운 현실은 그의 이상과 부딪혀 온갖 루머로 그의 사생활을 소비했고,
스타로서의 그의 삶은 현실과 루머가 뒤엉켜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 채 서서히 죽어갔다.
영화는 끝이 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아무도 나가지 않는 영화는 오랫만이다.
슬쩍 둘러본 관객들의 평균 연령대는 30대.
50이 넘어보이는 여자 두 분이 눈물을 닦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석은 조용했다.
그토록 흥겨운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따라부르거나 발을 구르지 않았으며
심지어 소근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영화는 장례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장례식은 단순히 누군가를 땅에 묻는 과정이 아니라,
남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를 보내는 의식이다.
생전의 그를 기억하고 되새기며
마음속의 그의 자리를 새롭게 위치시키는 의식.
평생 꿈 속에서 살았고
대중의 꿈으로 남고 싶었던 그에게
그가 만들어낸 환상의 절정인 콘서트 준비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장례식은 아니었을까.
얼마 전 개봉했던
퀸 락 몬트리올의 관객석은 떠들석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손에 야광띠를 두르고,
이 세상에 없는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다.
언젠가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 역시
그런 식으로 개봉되길 바란다.
그가 장례식이 아닌
축제의 주인공으로 돌아오길.
The King of Pop
p.s.
한국 정치 관행을 따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삼김시대도 끝났는데 더 이상 사람의 이름을 약자로 부를 필요 있을까.
박근혜는 KH라고 안하면서, 왜 정몽준은 MJ라고 부르는거냐..-_-;
겹쳐서 기분 나쁘다.
- 좋아요
- 6
- 댓글
- 34
- 작성일
- 2023.04.26
댓글 34
- 작성일
- 2009. 11. 11.
@책읽는낭만푸우
- 작성일
- 2009. 11. 14.
- 작성일
- 2009. 11. 14.
@비키언니
- 작성일
- 2009. 11. 14.
- 작성일
- 2009. 11. 15.
@에델바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