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kosinski
  1. 해외소설

이미지

도서명 표기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글쓴이
무라카미 하루키 저
민음사
평균
별점9.4 (25)
kosinski

  《작가란 무엇인가》의 하루키 편을 읽고 그의 소설을 다시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대학 시절 이제 막 상륙한 그의 소설들을 누구보다 빨리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이르게 읽은 탓에 책장에는 그의 소설들이 이가 빠진 채로 남아 있다. 《태엽 감는 새》도 한 권만 남아 있어서 새로 장만했다. 겉표지 안의 금빛 양장이 독특하다. 이런 색상의 소설 표지가 있었나 싶다.

 

“... 근처에 있는 나무에서 마치 태엽을 감는 것처럼 끼이이익 하는 규칙적인 새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그 새를 ‘태엽 감는 새’라고 불렀다. 구미코가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진짜 이름은 모른다. 어떻게 생긴 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태엽 감는 새는 매일 그 근처 나무로 날아와, 우리가 속한 조용한 세계의 태엽을 감았다.” (p.20, 1권)

 

무라카미 하루키의 ‘혼미’한 세계는 그의 엉뚱한 문장들, 예를 들면 ‘실제로 내가 청혼을 하기 위해 그녀 집에 갔을 때, 그녀 부모님의 반응은 몹시 차가웠다. 마치 전 세계의 냉장고 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 같았다.’와 같은 문장들 덕분에 유머러스해진다. 그러니까 1권에서는 와타야 노부로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사라지고, 2권에서는 아내인 구미코가 사라진다는 속상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데도 그렇다.

 

“... 그것은 정말 좁은 세계였다. 그리고 거의 걸음을 멈춘 세계였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고 있는 세계가 그렇게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그것이 움직임을 멈추면 멈출수록, 그 세계가 기묘한 일들과 기묘한 사람들로 넘쳐 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마치 그들이 내가 걸음을 멈추기를 어딘가에 숨어서 지긋하게 기다렸던 것처럼. 그리고 마당에 태엽 감는 새가 날아와 태엽을 감을 때마다, 세계의 혼미는 점점 더 깊어져 간다.” (pp.261~262, 1권)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소설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아내 구미코를 찾아 나서는 남편 오카다 도오루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실종 고양이 혹은 실종 아내를 찾는 추리물의 구조를 띠지만 일반적인 추리 장르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고양이는 어느 순간 불쑥 언제 나갔었느냐는 듯 다시 돌아오고, 아내 구미코는 다른 남자와의 정분 끝에 집을 나갔노라고 남편에게 연락을 해온다. 원인과 결과과 명확하지 않고 사건의 발생과 해결이 후려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미증유의 미스터리물에 가깝다.

 

“... 나라는 인간은 결국 어딘가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외부에서 왔다가 다시 외부로 사라진다. 나는 그저 나라는 인간이 지나가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 (p.190, 2권)

 

이야기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속성들이 소설 전체에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입힌다. 나의 집과 빈 집 사이 어디쯤에 사는 소녀 가사하라 메이가 그렇고, 점쟁이 혼다 씨 그리고 가노 크레타와 가노 마르타 자매가 그렇다. 이야기의 후반부가 되어 등장하는 시나몬과 넷메그 모자 또한 그렇다. 이들은 저마다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고, 그 이야기들이 나의 과거와 현재로 묘하게 연결된다.

 

“태엽 감는 새는 실제로 있는 새야.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소리밖에 못 들었어. 태엽 감는 새는 이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서 세계의 태엽을 조금씩 감아.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태엽을 감지. 태엽 감는 새가 태엽을 감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이지 않아. 그런데 아무도 그걸 몰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훨씬 더 복잡하고 멋들어지고 거대한 장치가 세계를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사실은 태엽 감는 새가 온갖 장소에 가서, 가는 곳곳마다 조금씩 태엽을 감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이는 거야...” (pp.295~296, 2권)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들어내는 공간들의 분위기 또한 현실감의 결여에 일조한다. 저주의 내력을 지닌 빈 집의 말라 있는 우물은 내가 다른 많은 장소와 연결되는 비밀 공간 같은 곳이다. 나는 이 우물 안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얼굴에 파란 멍이 생기고 난 이후에, 그 이전의 나와 구별된다. 우물은 전쟁터의 동물원이나 여러 여인들이 등장하는 호텔 방 등과 연결되는 열쇠 구멍과 같은 공간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나중에 얘기할래요. 괜히 재려는 게 아니라,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잖아요. 지금 내가 아저씨에게 할 수 있는 얘기는, 이 방 안에 대해서뿐이에요. 지금은요.” (p.16, 3권)

 

읽는 순간 현실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데에는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만한 것이 없다. 동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하루키 월드는 소설에 등장하는 우물과 같은 세계이다. 물론 거기에 들어갔다 나온다고 해서 소설 속 오카다 도오루처럼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 사실 오카다 도오루도 크게 바뀐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는 그저 거길 들어갔다 나온 것일 뿐인지도...

 

 

무라카미 하루키 / 김난주 역 / 태업 감는 새 연대기 (ねじまき鳥クロニクル) / 민음사 / 1권 도둑 까치 357쪽, 2권 예언하는 새 405쪽, 3권 새 잡이 사내 581쪽 / 2018 (1994, 1995, 199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kosinski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2.13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2.13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5.2.13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2.13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2.13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2.13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2
    좋아요
    댓글
    92
    작성일
    2025.5.2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75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2
    좋아요
    댓글
    121
    작성일
    2025.5.2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