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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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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글쓴이
전경린 저
이룸
평균
별점6.3 (7)
kosinski
살다보면 숙명 같은 일이 일어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숙명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단 한번 정도면 충분하다. 제아무리 숙명이라 한들 그 또한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다면 그것은 숙명으로서의 함의를 잃게 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전경린의 소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전경린의 숙명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형벌같은 사랑인가 보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거듭되니 이제 그 숙명의 닳고 닳음이 오히려 안쓰럽구나.



“형주의 얼굴은 이전과는 다른 성격으로 단단했다. 권태와 중년의 이력으로 도포된 속물적 경직이 아니라 어떤 모욕과 불행과 슬픔도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난 듯 결연하게 단단했다. 자신의 죄를 영원히 반성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 대한 적개심과 같은 욕망이 그토록 오래 굳은 권태와 좌절을 밀어내버렸다. 두 눈이 곧 터져버릴 검은 폭약처럼 긴장되었고 몸에서는 화약 냄새가 새어나왔다. 익명의 타인들이 쉴새없이 스쳐가는 그토록 태연한 일상의 거리에서 홀로 전쟁을 선포한 전범자 같은 얼굴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소설의 축을 이루는 두 주인공은 세상의 합의된 룰에 어긋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그러니 항상 숙명이 되지). 결혼식 전날 약혼자와 의문의 여자가 여관으로 들어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혼을 해야 했던 혜규는 여러 해 동안 그 마음의 상처를 해소하지 못하여 세상의 변방을 향해 자신을 치닫게 만들다, 형주를 만난다.



“혜규는 첫눈에 반한다는 것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첫눈에 그 사람의 전부를 보아버리는 것이다. 아이인 그 남자, 소년인 그 남자, 청년인 그 남자, 어른인 그 남자, 노인인 그 남자, 죽음이 찾아든 그 남자……”



그리고 어느 날 혜규는 숙명처럼 자신에게 찾아든 남자 형주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형주는 이미 결혼이라는 제도의 틀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모든 걸 내버릴 듯이 혜규를 향해 질주하는 형주, 그리고 혜규를 찾아온 형주의 아내… 혜규는 결국 형주와의, 세상 너머의 품에 안기는 대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가족들의 품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오빠인 혜도가 운영하는 세상 끝의 입맞춤이라는 낯간지러운 제목의 카페를 돌보고, 동생인 혜미의 비디오 가게를 대신 보아주고, 언니인 혜진의 속내를 향하여 마음을 열어 그녀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결혼 파탄의 책임을 져야할 인채의 자식을 향해 근사치의 모성을 느낀다. 자신의 부도덕한 사랑에 대한 속죄의 의식인지, 자신의 천근만근 무거운 운명의 짐을 덜어내는 해탈의 의식인지 모를 그것들이 혜규의 엄마와 고모 할머니, 그녀들의 지혜의 품 안에서 이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일일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판박이로 밀어낸 것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을 보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다. 그들은 모두 이혼의 경력이 있거나 이혼의 위기를 눈 앞에 두고 있고, 그들의 사랑은 몽땅 숙명적이어서 십년 이십년을 뛰어 넘어서도 여전하다. 게다가 그들 모두의 말투는 모두들 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배합된 인기 여성 작가처럼 번지르르하며, 그들의 말 속에 들어 있는 단어들은 고상창연하기 이를 데 없다.



아 물론,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면서도 아직 전경린을 읽고 있으니 제 무덤 제가 판 격이다. 작가의 기름기 좔좔 흘러내리는 문장을 읽는 맛에 중독되어 있으니 이것만 읽고 이제 그만 봐야지, 하면서도 그녀의 문장을 계속 읽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 세상으로부터 백 보,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백 보, 이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나간 소설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통한) 일탈의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그녀가 창조한 인물들은 이미 너무 보아 식상하고, 그녀의 인물들이 겪는 시추에이션은 드라마틱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드라마틱함이 문제가 되어 시들하다. 문장만으로 소설을 만드는 일이 힘에 부칠 때도 되었다, 전경린...



ps.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금까지 보아온 책들 중에 이번 책처럼 편집이 엉망인 책은 정말 처음이다. 조사를 틀리는 것은 예사이고, 마침표를 빼먹지를 않나 띄어쓰기를 빼먹지를 않나, 어떤 경우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뒤바뀐 듯도 하고... 여하튼 최악의 편집이었다고나 할까... 이룸, 이라는 출판사가 편집인의 막장과 같은 곳이라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도 같은데, 그들은 그곳에서 이렇게 엉망인 편집으로 항거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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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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