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서평

산바람
- 작성일
- 2023.9.22
식물학 수업
- 글쓴이
-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
키라북스
식물학 수업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잡초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장은정
ISBN/2022.3.1.
sanbaram
세상의 모든 생물을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 또한 살아남기 위한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잡초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기 때문에 잡초는 끈질긴 생명을 가졌다고 이야기 한다. 정말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가? <식물학 수업>은 잡초의 특성과 생활양식을 설명하면서 격변하는 4차 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한다.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오카야마대학교 대학원 농학 연구과에서 잡초생태학을 전공하고 농학박사학위를 받은 식물학자이며, 현재 시즈오카대학교 농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세계를 바꾼 13가지 식물>, <생명 곁에 앉아 있는 죽음>, <싸우는 식물>, <재밌어서 밤새 읽는 식물학 이야기>, <이토록 아름다운 약자들> 등이 있다.
식물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빛과 물 그리고 좋은 토양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한다. <식물학 수업>에서는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환경을 차지하기 위해 잡초가 벌이는 생존경쟁 방식을 파헤친다. 흔히 잡초는 어디에서나 제멋대로 자라는 식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잡초는 아무 데서나 자라지 않는다. ”잡초가 주로 자라는 곳을 떠올려보자. 길가, 공터, 공원, 밭, 뜰 등이다. 이런 곳은 일반적으로 식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p.7)” 오히려 언제 뽑힐지 모르는 곳, 밟히고 꺾이기 쉬운 곳이다. 다시 말해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수시로 일어나는 장소’다. 식물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험난한 환경이다. 책은 ‘제1부 잡초의 탄생, 제2부 식물에게 배우는 성공법칙, 제3부 식물의 철학‘ 등 3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왜 잡초는 이런 가혹한 조건을 선택했으며, 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쓰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극심한 변화 속에 살아가는 식물의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유용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나무에서 풀로의 획기적인 진화는 어떻게 진행된 것일까? 식물의 진화를 가속화한 가장 큰 요인은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의 변화다.(p.23)” 속씨식물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자 겉씨식물은 경도가 높은 추운 지역으로 쫓겨났다. 이때 겉씨식물을 먹고 살던 공룡도 함께 추운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거기에 끝나지 않았다. 속도가 붙은 식물의 진화는 멈출 줄 몰랐다. 속씨식물은 짧은 생존 주기를 최대한 활용해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궁리하며 변화를 거듭했다. 예를 들어 초식 공룡에게 먹히지 않도록 알칼로이드 같은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생성하는 식물이 생겨났다.
“현재 생존하는 모든 생물은 나름의 영역에서 일등인 것이다. 영역을 다양하게 구분해서 일등의 자리를 나눠 가졌다.(p.36)” 생물의 경쟁은 니치(생태적 지위)를 거머쥐기 위한 싸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딘가에서는 일등이 되어야 살아남는다. 그렇기에 이길 수 있는 영역을 찾아야 한다. 니치를 잃은 자는 지구상에서 전멸한다. 생물의 니치는 비즈니스의 핵심 역량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 핵심 역량이 필요한 것처럼 생물은 죽지 않기 위해서 니치가 필요하다. 생물은 각각의 환경에 맞춰 생존 전략을 선택하고 거기에 적합한 장소에서 살아간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업으로 치면 핵심 역량을 살릴 수 있는 사업영역을 결정하는 것이다. 일등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야 한다. 주변의 전략을 흉내내봐야 소용이 없다. 일등이 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면 승부보다 남과 다른 능력을 찾아 발휘하는 것이 좋다. 또한 다른 생물과 니치가 겹치지 않도록 피해야 한다. 조금 치사해 보여도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자연계에서 생존하는 방법이다. 살아남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에서 약자의 전략이라 하면 란체스터 전략을 떠올릴 것이다. “란체스터 전략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엔지니어 프레더릭 란체스터가 발견한 전쟁의 법칙으로 대표적인 ‘선택과 집중’의 방식이다.(p.42)” 이후 산업계에 적용되어 현재 격전이 벌어지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판매 전략의 바이블’로 불릴 정도로 중요시되고 있다. 자연계에 있는 모든 생물을 상대로 일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생물은 기본적으로 강자의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 모든 생물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이 유리한 분야에서 생존을 건 승부에 임한다. 잡초는 약한 식물이다. 정면승부로는 살아남을 승산이 없다. 그래서 경쟁력이 필요 없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일어나는 장소를 택한 것이다. 잡초가 약하기 때문에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선택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으로 승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경쟁력을 높이느라 무리하게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대표적인 전략은 경합형, 스트레스 내성형, 교란 적응형 등 세 가지다. “경합형 전략에 중요한 것은 ‘크기’다. 크기가 클수록 경쟁에 유리하다. 스트레스 내성형에는 ‘저장’능력이다.(p.58)”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둥글고 두꺼운 줄기에 물을 저장한다. 심한 추위를 견디는 식물은 땅속의 뿌리나 줄기에 영양을 저장한다. “한편 교란 적응형 전략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수적이다.(p.58)” 언제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기에 한가하게 있을 여유가 없다. 계속되는 환경 변화에 바르게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교란 적응형 식물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다음 세대를 향한 투자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환경의 변화 이후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교란 적응형 식물은 세대를 갱신하며 계속 새로운 형태로 대응한다. 지금 성공했다고 해서 다음 세대도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지금 괜찮다고 거기에 안주해선 안 된다. 다음 세대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교란 적응형 식물은 대를 이어간다.
“잡초는 아무데서나 자란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잡초만큼 각자의 장점에 따라 살아갈 장소를 고르는 생물은 많지 않다.(p.75)” 식물은 가능한 한 많은 씨앗을 흩뿌려 많은 싹을 틔운다. 운 좋게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에서 자라나게 된 개체만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자동차 바퀴자국 사이나 길가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질경이처럼 여러 번 밟혀도 견딜 수 있는 종류의 잡초가 자란다. 도로 너머의 밭을 보면 경작에 강한 잡초가 자라고, 풀이 무성한 공터 같은 곳에는 잡초 중에서도 경쟁에 강한 대형 잡초가 자란다. 이와 같이 같은 공간에서도 식물마다 자신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볏과 식물은 줄기를 쉽게 뻗지 않는다. 참고 참다가 준비가 끝나자마자 단번에 줄기를 올린다. 밑동의 성장점에서 이삭을 만들기 시작해 칼집 모양의 엽초라는 기관 속에서 이삭의 생성을 완료한다. 그리고 이삭이 꽃을 피울 준비를 마치면 단숨에 줄기를 뻗어 올린다.(p.82)” 이런 놀라운 성장의 비결은 줄기의 마디에 있다. 짧은 줄기는 마디별로 세포 분열을 해 세포의 수를 늘려나간다. 그러나 세포의 크기가 커지면 줄기가 쑥 자라므로 준비가 되기 전에 세포를 키우면 안 된다. 세포의 수를 늘리면서도 응축시킨 채로 품고 있어야 한다. 볏과 식물의 줄기는 넣었다 빼는 접이식 지시봉처럼 곳곳에 마디가 있다. 마디마다 세포를 응축시키고 있다가 때가 되면 세포를 단숨에 팽창시킨다. 이렇게 해서 단기간에 줄기를 뻗어낸다. 이윽고 이삭 패는 시기에 이르면 밤사이 수 센티미터가 자란다.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이삭이 이튿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식물의 성장이 눈에 보일 정도라니 상당한 속도다. 핵심은 낮은 키를 고수하다가 뻗어야 할 때 단숨에 뻗는 것이다. 다시 풀이 베이기 전까지의 아주 짧은 기간에 꽃을 피워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이다.
“영국의 밀밭을 조사해보니 잡초의 씨앗이 1제곱미터당 7만 5천 개나 있었다고 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씨앗이 흙 속에서 발아하려고 대기 중인 것이다.(p.86)”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 씨앗이 일단 떨어지면 그곳이 어디든 그 자리에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태어난 환경은 바꿀 수 없다. 식물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주변에서 자라는 다른 식물도 변화시킬 수 없다.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식물은 변화에 따라 자신을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 자신이 싹틔우기 좋은 조건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 기다린다. 이렇게 땅속은 잡초의 종자를 저장하는 종자 은행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잡초라는 식물은 도감에 나와 있는 대로 자라지 않을 때가 많다. 봄에 꽃이 핀다고 써 있지만 가을에 피기도 하고, 키가 30센티미터 정도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자라기도 한다. 심지어 위로 자라지 않고 지표면과 맞닿아 옆으로만 뻗어가기도 한다.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교란 속에서 살아가는 식물의 기본 전략은 크기가 작은 씨앗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일어나는 환경이다.(p.140)” 당연히 씨앗의 대다수는 살아남지 못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씨앗이 싹을 틔워보지도 못하고 사그라진다. 어느 것이 살아남을지 확실하지 않으므로 잡초는 1만 개의 씨앗을 흩뿌린다. 1만 개 중에 하나라도 새싹을 틔운다면 성공이다. 실패하더라도 투자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작은 씨앗을 많이 퍼뜨려두는 것이다. 작은 도전을 계속함으로써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극복하는 전략이다. 채소나 초화의 씨앗을 뿌리면 동시에 싹이 나지만 잡초는 다 같이 싹을 올리는 법이 없다. 씨앗의 성질이 다 다르므로 불규칙하게 싹을 틔운다. 그래서 잡초는 전멸하는 일이 없다. 풀을 뽑아도 제초제를 뿌려도 계속해서 기회를 기다리던 새로운 싹이 올라온다. 씨앗의 성질이 각기 다르다는 ‘다양성’이 잡초의 무기인 셈이다.
“풀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는 ‘단순함’이었다. 단순화는 성장 속도를 높이고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 역경을 극복하는 회복력 등의 부가가치로도 이어졌다. 이러한 능력을 갈고 닦아 인간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진화한 식물이 바로 잡초다.(p.162)” 블루오션 전략은 한 발 더 나아가 불필요한 기능을 줄여서 가격을 낮추는 동시에 새로운 기능을 늘려 고가치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식물의 세계에서 풀은 불필요한 기능은 줄이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블루오션을 실천한 모델이다. 거대하고 복잡했던 나무에서 단순하지만 적응력이 뛰어난 풀로의 진화는 이제까지 식물이 생존할 수 없었던 장소, 블루오션에 들어서기 위한 혁명이었다. 식물학자 베이커는 잡초성을 보여주는 이상적인 잡초의 특징을 열두 가지로 정리했다.
1) 씨앗은 휴면할 수 있으며 발아에 필요한 환경 요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2) 발아가 불규칙하며 땅속 종자의 수명이 길다.
3) 성장이 빨라서 꽃을 금세 피울 수 있다.
4) 가능한 한 오래도록 씨앗을 생산한다.
5) 자가수분할 수 있지만 절대적은 아니다.
6) 타가수분을 할 때는 바람이나 곤충을 이용한다. 다만 곤충을 특정하지 않는다.
7) 이상적인 환경에서는 씨앗을 많이 만든다.
8) 열악한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씨앗을 생산한다.
9) 씨앗을 퍼뜨리기 위한 영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0) 여러해살이풀은 절단된 기관에서 강인한 번식력과 재생력을 발휘한다.
11) 여러해살이풀은 인간의 교란이 닿지 않는 깊은 땅속에 휴면 눈을 갖고 있다.
12) 식물의 종간 경쟁에 유리한 구조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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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