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서평

산바람
- 작성일
- 2023.12.8
엄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 글쓴이
- 낸시 에이버리 데포 저/이현주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엄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낸시 에이버리 데포/ 이현주
한국경제신문/2017.7.17.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치매환자가 증가하는 것이다. 치매는 초기에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발견된 때는 이미 많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치매는 다른 질병과 달리 뾰족한 치료약이 없고 오랫동안 앓게 된다는 특징 때문에 온 가족들이 힘겨워한다. <엄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는 치매환자 가족들과 경험을 나누려고 쓴 책이다. 저자는 뉴욕에서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 등 다양한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다수의 책을 출간한 경력이 있는 작가이자 시인이며 교직에 몸담기 전에는 저널리즘과 홍보분야에서 활동한 바 있다.
<엄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저자 낸시 에이버리 데포는 부모님에게 바치는 시와 산문으로 엄마의 알츠하이머병과 함께 했던 여정을 표현하고 있다. 힘든 상황을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글로 표현하면서 치유의 힘을 경험한다. 그 누구도 원치 않지만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여정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마칠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병을 최후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아직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병이 지나가는 과정을 자존감과 존경심이 넘치는 과정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거나 화난 것처럼 보이는데, 두려움과 분노의 두 감정이 갈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이상하게도 서로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자각을 했든 안했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는 아니더라도 현재와 과거를 구별해주는 일정한 한도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이 진전된 환자들은 더 이상 이러한 구분을 하지 못한다.(p.44)”
“알츠하이머병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특별히 편애하는 집단은 없어 보인다. 알츠하이머병은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이든 아주 똑똑한 사람이든 발병할 확률이 거의 같다. 이 병은 열악한 생활환경이나 약물 및 알코올 남용이 발병 원인인 일부 질병과는 달리, 가난해서 혹은 부자여서 생기지는 않는다.(p.49)” 이처럼 알츠하이머병은 인종과 빈부차별 없이 오는 병이라고 한다. 발병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큰 원인이고 다른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아버지가 알고 있는 당신 삶의 마지막 밤에, 아버지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자신을 무단침입자로 내모는 엄마를 마주해야 했다. 나는 부모님 집 부엌에 서서 아버지가 엄마를 설득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난 당신 남편이야. 날 못 알아보겠어?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았어, 당신?” 마치 엄마의 시각까지도 달라진 듯했다.
“당신? 난 당신을 몰라! 당장 여기서 나가.”
아버지는 끈질겼다. “우리가 결혼한 지가…”
“난 당신이 누군지 몰라.” 엄마는 아버지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설득하려 하고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상기시키려 할수록 점점 더 흥분했다.(p.73)
위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엄마가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엄마의 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엄마의 감정 기복이 커지고 갑작스럽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성격이 변덕스럽고 나이가 들어서라고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단다.
“알츠하이머병의 놀라운 점은 이 병이 어휘를 빼앗아가기 전에 정체성과 연산능력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엄마는 대화를 나누는 상황과 관련이 없는 말이지만 완전히 잘못된 감정을 담아 아주 똑똑한 사람이 내뱉는 것 같은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말에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고, 그냥 화가 치민 사람 같을 때도 있었다. 두 분의 이야기는 러브 스토리였지만, 그들의 말로는 다정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p.170)” 이처럼 대화할 때에도 자기의 감정만 앞세우고 상대방의 배려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감정적으로 힘들어 지고 환자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보이는 것은 뇌기능의 저하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결코 회복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약물 등으로 그 진행 속도를 완화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사랑에는 기억마저도 필요하지 않다.’ 엄마가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기억은 삶을 마감하던 그 순간에도 우리 부모님이 서로에 대해 품었던 사랑과, 부모님에 대한 사랑의 전제조건이 아니었다.(p.238)” 기억력이 사라져 가족과 지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알츠하이머병은 환자의 말에 동의를 표할 때 고집이 사라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아가기도 한다.
저자는 엄마의 알츠하이머병 초기에는 병에 걸린지 몰랐다. 엄마의 세심한 주의와 아버지의 침묵으로 인한 것도 있지만, 노인이 되면서 그런 경향을 보인다고 지레 짐작한 면 또한 적지 않았음을 저자는 자책한다. 늦게서야 알게 된 실상 때문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자식의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저자는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가족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고령화 사회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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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