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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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황홀한 블랙
글쓴이
존 하비 저/윤영삼 역
위즈덤하우스
평균
별점8.7 (3)
산바람

이토록 황홀한 블랙



존 하비/윤영삼



위즈덤하우스/2017.4.3.



sanbaram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했었다. 흰옷을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인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다른 채색의 옷을 입기위해서는 염색하는 일부터 관리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흰옷과 검정, 그리고 염색하기 좋은 갈색 옷을 많이 입은 것 같다. 흰색과 검정색은 또한 죽음과 관계된 색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상가 집에서 주로 흰색 옷을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가 집에 갈 때 검은 색을 주로 입는다. 검은 색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이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책이 <이토록 황홀한 블랙>이다. 저자는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며 케임브리지 대학 엠마누엘칼리지 종신교수이다. 우리가 입는 옷에 관련된 검은색의 역사를 정리한 블랙패션의 문화사도 출간되었다.



 



<이토록 황홀한 블랙>은 더 완벽한 검은색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고 한다. 색깔,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으로 주제의 범위와 밀도, 독창적인 관점과 정보의 양 측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역작이라는 평을 얻었다. 이 책에서는 검은 색과 빛은 어떤 관계인가, 우리가 검은 색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검은 색은 색깔인가 아닌가 하는 검은 색과 관련된 기본적인 쟁점들을 다룬다. 1장 태초의 검은 어둠, 2장 죽음과 공포의 색, 3장 성과 속, 불투명과 영원의 경계, 4장 세속적인 검은 색, 5장 어둠을 그린 카라바조와 램브란트, 6장 멜랑콜리 : 죄로 물든 색, 7장 흑색 피부에 대한 짙은 경멸, 8장 이면의 색, 의미의 전복, 9장 영국의 검은 시대 : 격렬한 불안의 색, 10장 여전히 반복되는 블랙의 역사.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다빈치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검은색은 다른 색깔을 돋보이게 만드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검은색에 열광한 예술가들도 있었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는 검은 색은 힘이라고 표현했고,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고 했으며,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는 색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 색이라고 말했다.(p.7)



 



기독교의 검은빛 세계는 아담, 케인, 함에서 멈추지 않는다. 악과 죄가 검은색이라면, 악마와 그들의 부하들도 타락한 이후 줄곧 검은색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4세기 <바나바의 편지>에서는 악마를 검은 자라고 지칭하며, 기독교 역사에 등장하는 온갖 악마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검은 악마라고 부른다.(p.122)” 성베네딕토의 일화를 생생하게 조각한 작품에서 그는 도깨비처럼 생긴 작은 악마에게 끌려 다니는 타락한 수도사를 회초리로 내려치는데, 그 악마 역시 검은 색이다.



 



전장에서 검은 깃발은 응징을 상징하기도 했지만 메시아를 상징하기도 했다. 최후의 심판의 날 구세주 마흐디가 동쪽에서 성스러운 군대를 이끌고 메카로 올 때에도 새까만 깃발을 휘날리며 온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무함마드의 남자 후손들은 검은 터번을 쓴다.(p.149)” 이슬람 세계에서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는 것은 금기이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흰 베일로 가려져 있다. 무함마드의 딸이자 알리의 아내인 파티마는 파란색 옷을 입고 뒤에 서 있는데, 무함마드처럼 얼굴을 흰 베일로 가리고 있고, 그 주위로 황금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는 쿠라이시족의 전통에 따라 검은 옷을 입고 초록색 터번을 둘렀다. 이후 초록색 터번은 메카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식으로 사용된다.



 



검은 옷이 유행을 휩쓸던 시기에 화단에서도 검은색이 급부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꼬를 튼 사람이 바로 카라바조였으며, 그의 혁신은 빠르게 모방되어 퍼져나갔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로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까운 카라바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명보다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p.197)” 카라바조의 작품은 키아로스쿠로라는 미술용어의 전형적인 사례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키아로스쿠로는 이탈리아어 밝다어둡다의 합성어로 명암법이라고도 한다. 카라바조의 강렬한 명암대비 기법은 이후 회화, 조각, 사진, 영화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무수히 모방되었다. 특히 루벤스를 통해 카라바조의 명암대비 화법은 네덜란드로 건너가 젊고 어두운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마침내 플랑드르와 이곳에서 가까운 홀랜드 지역에 카라바지스티라고 하는 화풍을 만들어 냈다. 더 젊고 더 독립적인 이 예술가들은 키아로스쿠로명암법을 한층 더 발전 시켰다.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이전만 해도 아프리카인을 언급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이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두 희곡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맡으면서 아프리카는 셰익스피어에게, 또 그 시대 영국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영국인들이 노예무역에 나서기 전 아프리카인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보여준다.(p.285)”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검은색에 민감하다. 그의 비극에는 알 수 없는 어둠의 감각이 우리 몸을 옥죄듯 휘감고 있다. 그 느낌은 고대 그리스 비극보다 훨씬 강렬하다.



 



클레오파트라의 검은 피부는 단순히 햇볕에 그을린 것이 아니라, 태양신 포이보스의 끊임없이 불타는 욕정의 손길에 멍이 든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등장한 소네트의 여인처럼 클레오파트라에게서도 거부할 수 없는 성적인 매력이 넘친다. 클레오파트라는 매춘부이자 세 번이나 바람을 피운 음탕한 여자이며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정부였다. 그녀는 늘 새로운 연인을 호사스럽고 음탕하게 골라 뜨거운 시간을 즐겼다.(p.288)”오늘날 과학에서는 검은 피부색이 멜라닌이라는 색소의 피부 보호기능 때문에 진화한 것으로 설명한다. 적도가 지나가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렬한 태양복사열을 받는 곳으로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를 통해 검은 색소가 피부 층에 침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전적 계보학을 따질 때 아프리카인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원주민보다 유럽인과 유전적으로 훨씬 가깝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피부가 모두 까만 것은 각자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온 결과라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역사적으로 검은 옷은 대개 반란자들, 또는 남들보다 불리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역경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주로 입었다. 중세에는 성직자들이 정부 관리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교회의 검은 옷이 어둠의 시대를 만들어 냈고, 16세기에는 급부상한 상인들과 유대인 공동체들이 주로 검은 옷을 입었으며, 19세기에는 새롭게 출현한 엔니지어들과 산업자본가들이 검은 옷을 입었다.(p.477)” 검은색은 이처럼 무겁고 신중하고 결연한 이미지를 주는 덕분에, 방탕한 엘리트 지배층을 뒤에서 면밀하게 감시하고 비판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집단이 즐겨 입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20세기 여자들이 눈에 띄든 안 띄든 검은 옷을 즐겨 입었던 것은, 20세기가 남자들이 드리운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동등한 존재로서 권리를 찾기 위한 여자들의 투쟁의 시기였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옷이나 타일, , 체스보드에서 볼 수 있듯이 검은색과 흰색의 조합이 시각적으로 아주 잘 작동하는 이유는 아마도 대비는 강렬한 반면 빛의 파장은 똑같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밝은 것을 우리는 하얗다고 하는데, 이는 스펙트럼상에서 색깔이 모두 합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얀색이라고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p.539)” 죽음의 색깔은 서양에서 검은 색이지만 동양에서는 흰색이다. 서양에서 상복은 오랫동안 검은색, 새까만 색깔이었던 반면, 인도의 동쪽 지역에서는 대개 하얀색이다. 특히 여자가 그 색깔 옷을 입고 있을 때 사람들은 상복을 떠올린다. 런던의 젊은 여성이 새까만 옷을 입고 결혼식에 가기를 주저하듯이, 델리에서는 하얀 사리를 입고 결혼식에 가는 것은 결례가 된다. 아프리카에서도 하얀색은 죽음의 향기를 풍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검은색은 과학적 설명 이전에 인류가 많이 활용해온 색이다. 또한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사용된 범위나 의미에 변화가 있었다. 흰색과 함께 사용하여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 하는 색이기도 한 이 무채색에는 인류 문화가 깃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휘황찬란한 색채가 생활 곳곳에 스며든 현재도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검은 색의 매력은 인간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색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검은 색의 매력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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