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시골아낙
- 작성일
- 2018.2.25
회색 인간
- 글쓴이
- 김동식 저
요다
그는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고작 인터넷으로 글 쓰는 법을 검색하고 '오늘의 유머' 공포이야기에 글을 올리면서 네티즌의 댓글로 지도를 받아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었다. 훌륭한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독자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을테지만 어쨌거나 그의 글을 읽었줬던 사람들의 지도를 받아 그 전에 없던 방식의 이야기꾼이 되어버렸다. 그는 작정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는 우연이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필연이다.
그의 이야기는 한편의 우화다. 무릇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성을 가지고 있어야 짐승이 되지 않을 수 있고 우연한 어떤 계기, 어떤 조그만 제어 장치로 인해 인간임을 자각하고 그로 인해 인간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각각 다른 모양의 이야기로 표현해낸다. 쉬운 언어로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은 그만의 순수한 말로, 그래서 귀하다고 그를 발굴한 김민섭작가와 한기호 발행인은 강조한다. 회색인간은 초간단소설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 그의 글을 접한 충격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첫째이야기 '회색인간'이 제일 인상 깊었다.
'회색인간'은 어느날 대도시에서 만명의 사람들이 땅속세상 인간들에게 잡혀온다. 땅속인간들은 자기들이 거주할 지하세계가 부족하다고 땅을 파도록 인간들에게 시키면서 땅을 다 파게 되면 도시로 돌려보내준다는 약속을 한다. 처음에 인간들은 지하세계를 탈출하려고 시도하지만 땅속인간들에 의해 다 저지당하자 땅을 다 파내서 도시로 돌아간다는 희망만을 꿈꾸면서 오로지 땅 파는 일만 한다. 땅 파는 일 말고 다른 일들을 모두 잊었다는 듯이 하루종일 땅을 파고 자고 다시 일어나서 또 땅을 파고 죽어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땅을 파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로 한 여인이 돌을 맞는다. 그 여인은 계속 돌을 맞지만 노래를 계속하고 어떤 사람이 그 여인에게 빵을 가져다 주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또 신기한 일은 계속 벌어진다. 화가에게 우리가 겪은 일을 그려서 남겨주라고, 소설가에게 여기에서 있었던 일을 다 기억해주라고 빵을 가져다 준다. 이제는 노래를 불러도 돌을 던지지 않고 몇몇은 눈 감고도 그려낼 수 있도록 벽에다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몇몇은 머릿속으로 이곳의 이야기를 써내었다. 사람들은 꼭 살아남아서 우리들 중 누군가가 꼭 살아남아서 이 곳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회색인간'에 실려있는 모든 글들은 무엇이 우리가 인간임을 기억하도록 하는 지와 인간성을 유지하게 하는지, 왜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 지와 인간임을 망각했을 때 나타나는 참혹한 결과를 감정을 섞지 않은 문장으로 말한다. 그의 문장은 건조하지만 오히려 절절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희한하게 독창적인 그의 특별한 문법, 가히 김동식표 문장이 탄생되었다.
그의 소설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것이다. 서사가 부족하고 이게 소설이냐 따져보면 부족한 것도 많다. 읽어보고 내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안 읽으면 그만이다. 제일 유사한 소설가를 굳이 꼽으라면 이기호작가 정도인 것 같다. 그가 책을 많이 안 읽었다고, 글쓰기를 배운적이 없다고 하니 글쓰기 교실을 수강하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던 나의 노력이 다 부질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글이 그냥 나온 건 아니다. 직접 겪은 삶과 노동속에서 계속 해왔던 생각(사유)들이 그의 글을 만들었을 것이고 오히려 글쓰기를 배우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글과 독특한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뭐든 그냥 이뤄지는 것은 없다.. 그러니 더 읽고 쓰자,,,,가 아닌 그냥 읽자... 뭔가 결과를 내려고 하는 욕심과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닌 그냥 즐거운 글 읽기를 해보자. 그러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한심함을 위해 기록은 하자.. 초간단명료한 리뷰 쓰기까지만,,,리뷰를 쓰려고 괴로워지면 그게 행복은 아니지 않은가? 이래 놓고 쓰려고 땀을 쏟을 건 분명하다.........이렇게 나의 독서와 서평은 밀당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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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