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시골아낙
- 작성일
- 2020.3.12
편의점 인간
- 글쓴이
- 무라타 사야카 저
살림출판사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소설, 금방 후딱 읽힌다. 잔혹스릴러로 변할까 싶어 마음을 졸였는데 당신들은 나와 다른 인간, 나는 당신들과 다른 인간이므로 당신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겠다고 선포하고 시원하게 끝난다.
어렸을때부터 보통사람과 다른 사고 구조를 가진 후루쿠라 게이코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면 제재를 가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현실에, 커가면서는 자기 맘대로 행동하지 않고 의견도 말하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간다. 대학교 1학년 때 새로 개장한 스마일마트 히이로마치 역전점에서 알바를 시작한 이후 비로소 이 세계에 소속되었다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고 이후 같은 편의점에서 18년동안 알바로 일하고 있다.
서른살이 한참 넘어, 편의점에서 정식 직원도 아닌 알바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후루쿠라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이상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 나이 정도 되었으면 정식 직원으로 취직을 하거나 시집을 가야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후루쿠라는 본인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고 생활이 불편하지도 않다. 바쁘게 돌아가는 편의점에서 잘 맞춰진 부속처럼 톱니바퀴처럼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삶에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느낀다.
매장의 페트병이 팔리고 대신 그 안에 있던 페트병이 롤러로 굴러오는 데구루루하는 작은 소리에 얼굴을 든다... 손님의 미세한 몸짓이나 시선을 자동으로 알아차리고 몸을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눈과 귀는 손님의 작은 움직임이나 의사를 포착하는 중요한 센서가 된다. 필요 이상으로 관찰하여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포착한 정보에 따라 재빨리 손을 움직인다.
아침이라는 시간이 이 작은 빛의 상자속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의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간 그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돌아가고 있는 나,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이 '아침'이라는 시간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 편의점에 취직한 이후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을 한 것이다.
아침에 편의점에 출근해서 물건을 분류하고 빵, 주먹밥 등등 제각각 맞는 자리에 가지런히 세워놓고 나면 평화를 느낀다.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기에 그는 주위 사람들을 흉내내면서 살고 있는데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이유도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다. 어느날 고향 친구 부부모임에서 "왜 아직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냐" "결혼은 왜 안하냐" 등등 적대적인 질문을 받고 나자 평온한 일상은 무너진다.
밖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차임벨 소리가 교회 종소리로 들린다. 문을 열면 빛의 상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계속 돌아가는 확고하게 정상적인 세계 나는 빛으로 가득찬 이 상자속 세계를 믿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 초등학교 시절의 그때처럼 조금 물러서서 나에게 등을 돌리고, 그래도 어딘가 호기심이 섞인 눈길만은 기분나쁜 생물을 보듯 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후루쿠라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 '시라하'가 편의점에 알바로 들어오는데, 시라하는 게으르고 불평불만이 많으며 남 탓만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시라하를 집으로 들이는데, 시라하는 일하지 않으면서 후루쿠라에게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고 취업을 하라고 내몬다. 편의점을 그만둔 후루쿠라는 지금까지 편의점에 맞춰 살아왔던 삶의 기준을 잃어버리는데,,
한 부류는 차별에 대한 충동이나 욕망을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지만 또 한 부류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아무 생각없이 차별용어를 연발할 뿐이다. 시라하가 그런 사람이다.
육체노동자는 몸이 망가지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무리 성실해도 분발하여 열심히 노력해도 몸이 나이를 먹으면 나도 이 편의점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될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편의점에 합리적이냐 아니냐로 판단하던 나는 이제 기준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채용 면접을 보러 가다 편의점에 들르는데, 자동적으로 주먹밥을 정리하고 소시지를 한줄로 세우면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낀다. 시라하가 그녀를 끌어내지만, 편의점이 그동안 그녀에게 삶의 의미를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세포 전체가 유리창 저편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호응하여 피부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아니 누구에게 용납이 안되어도 나는 편의점직원이예요 인간인 나에게는 어쩌면 시라하씨가 있는 게 더 유리하고 가족도 친구도 안심하고 납득할 지 모르죠 하지만 편의점 점원이라는 동물인 나한테는 당신이 전혀 필요없어요"
"당신은 나에게 아침과 낮과 밤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주고 현실이라는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불가사의한 신발을 선물해주었지요. 내게 당신은 마법사였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침이라는 시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조차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갔겠죠"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본인이 좋다고 하면 좋은 것 아닌가? 나 또한 편의점 일은 알바나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흠, 이 소설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꼭 맞는 것이라는 아니라는 것을 후루쿠라를 통해 보여준다. 전형적이지 않고 약간은 이상한 주인공 후루쿠라의 편의점 삶이 계속되기를 응원한다.
이 책의 저자도 편의점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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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