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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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불의 기억
글쓴이
전민식 저
은행나무
평균
별점7.6 (10)
갈꽃

집을 떠나 아니 부모님의 보살핌과 감시의 눈을 피해 친구들과 낯선 장소로의 여행이라는 설레임과 처음 타보는 기차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수학여행이엿지만 막상 경주에 도착한 내게 그곳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온 착각에 빠지게 했다. 도시 전채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며 곳곳에 전설이나 이야기 한자락씩 담겨있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조상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그 곳을 부지런한 발걸음과 호기심가득한 시선으로 하나라도 빠뜨릴까, 기다랗게 늘어선 줄을 혹여 놓칠까 싶어 종종걸음을 옮기며 얼마나 집중했었는지 모른다.


 



그 후에도 여러번 경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내 관심은 불국사도 설국암도 첨성대 등 이름난 유적지와 유물이 아닌 온통 주조과정에서 어린이를 바쳐 종이 울릴 때 어머니를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낸다는 전설이 있는 '에밀레종' 에게 가 닿았다. 신라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구리 12만 근(27t)을 들여 완성한 성덕대왕신종은 모양도 아름답지만 그소리는 태산을이 무너지는 듯한 장중한 소리이면서도 옥처럼 맑은 소리가 긴 여운을 가지고 멀리 퍼저나간다고 한다, 그 소리가 절대자의 목소리요 부처님의 소리라 하였다. 서울 보신각종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냈으나 훼손이 우려돼 타종이 중단되 애석하게도 실제소리는 들어보지 못하고 녹음한 소리만 듣곤 했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의 유래와 종을 만들 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이 적힌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었고, 독특한 구조에 소리의 비밀이 숨어있는 이 에밀레종은 종교와 과학 그리고 장인의 예술혼이 빚어낸 위대한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종의 제작을 둘러싼 인간들의 욕망과 사랑, 예술을 향한 광기어린 집념을 그린 소설은 <불의 기억>은 전민식의 두 번째 장편로 세계문학상 수상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퍽이나 인상 깊게 읽은 내게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의 종소리를 듣고 처음 구상하였다는 책은 글 중간중간 경주 방문 때마다 늘 들러서 보았던 에밀레종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종을 만드는 과정이나 두 종쟁이의 삶과 예술론을 담아내고 있어 보는 내낸 한시도 눈을 떼려야 뗄수게 한다. 한달음에 읽은 책을 막상 내려 놓기가 아쉬워 몇번씩이나 뒤적이며 종에 관한 글들을 읽고 또 읽었는지 른다. 읽을 수록 저자의 해박한 종에 관한 지식과 잘다듬어진 문장에 감탄하게 된다. 글을 쓰기 위해 저자가 보냈을 땀방울의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책은 두 종쟁이와 그들의 자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그들의 삶을 네 명의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금속공예학과의 졸업전을 앞두고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동주는 불쑥 찾아온 낯선 남자의 방문에 당황해 하지만 곧 그 사내가 아내를 살해한 죄로 징역을 살다가 갓 출소한 자신이 사랑하는 헤원의 아버지란 걸 알게 된다. 사내와 아버진 친구이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연적이며 종쟁이로 최고의 장인이자 맛수였다. 최고의 주철장이자 무형문화재였던 사내는 아내를 살해한 범인으로 현장에서 채포되고 살인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사내의 친구인 동주의 아버지가 사내의 딸을 맡아 키우게 된다. 사내는 딸을 찾아 왔으나 이미 그녀는 자취를 감춘 뒤였으며 동주의 아버지 역시 그녀가 사라진 후 실종되었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는 청년과 실종된 딸을 찾는 살인자의 이상한 동행이 시작된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쫓는자와 그들보다 한 발 앞선 진실을 밝혀지는 걸 두려워하는 그녀의 숨막히는 여정속으로 동행하며 점차 다가오는 진실과 마주하기게 된다. 그들이 칯아 헤메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녀가 그토록 숨기고자 하는 비밀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해는 또다른 오해를 부르게 마련이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혹과 복수를 꿈꾸는 와중에도 종과 소리에 대한 집념을 놓지 못하는 사내,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완벽한 종을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속죄의 길이라 여기며 대대로 내려오는 비서를 찾고자 하는 남자의 엇갈린 운명과 소리에 대한 간절함이 광기에 이른 장인의 고뇌찬 절망를 마주하며 섬뜩함과 동시에 애잔함이 느껴진다. 감히 신의 소리를 탐내다 끝내는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간 장인들의 이야기에 왠지 숙연함 마저 든다.


 



쇠 냄새와 용광로의 이글거리는 불에 대한 기억이 세상과의 첫 대면으로 더오르는 동주는  천재적인 음감을 타고났으나 종쟁이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쳐보지만 도망치면 칠수록 운명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늪 위에 세워진 폐차장 겸 동주와 아빠의종의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곳은 장마가들면 늪이 가둔 물뿐만 아니라 늪 속에서 시간을 먹고 쌓여 온 낡은 물건들을 헤집어 올려 토해 놓는다. 폐차직전의 교통사고 난 버스의 핏물 속에서 건져낸 온갖 물건들과 절단 난 신체의 일부, 말다툼 끝에 충동적인 칼부림은 피를 부르게 되고 인간 본능과 광기는 스산하고 음침한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평생 종을 만들어 왔듯 한 여자에 대한 간절한 사랑은 아름답고 가슴시리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품고 있다. 작가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종의 완성까지의 과정을 염원을 담아 오롯이 한마음으로 지키는 외골수 인생을 통해 인간에 대한 속죄와 구원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미움과 애증의 세월을 녹이고 두 목숨의 희생으로 탄생한 종소리의 울림이 마치 에밀레 종소리와 닮았으리라. 죽음은 소멸이 아닌 소리로 남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리움을 으로 영원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종소리처럼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다.

소리는 두꺼운 구리 뒤에 꽁꽁 숨겨져 있던 그리움이 깨어나게 만들었고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은 깊은 곳의 눈물을 끌어올렸다. 한순간에 미움을 삭혀 버렸고, 화를 부드러운 물처럼 녹여 지옥까지 흘러내려 보냈다. 계곡으로 흘러 들어오는 종의 여운을 따라 사람들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종소리에 젖은 계곡은 금방이라도 출항할 배처럼 꿈틀거렸다. - p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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