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부터 쭉 읽고 있어요

꿈에 날개를 달자
- 작성일
- 2022.6.8
나는 파괴되지 않아
- 글쓴이
- 박하령 저
책폴
‘침묵은 너를 보호하지 못할 거야.’ (211)
침묵이 나를 보호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이야기했을 때,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 가해자는 잘살고 있는데 피해자는 외려 더 움츠러들고 소외되고 도망가야 하는 현실. 이런 현실에서 침묵은 너를 보호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진짜 달라진 게 맞을까? 의붓아버지가 추행해도, 엄마는 침묵하거나 오히려 딸을 나무라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엄마가 되어서 딸의 고통을 그냥 눈 감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엄마라는 사람은 이 남자가 아니면 어렵고 힘든 인생이 펼쳐질 거라 믿어서일까? 딸이 조금만(?) 희생하면 편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세상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지만. 이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떤 인생이 그들에게 최선인지.
예민하고 강박적인 엄마, 가부장이라는 이유로 큰소리치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아빠. 나연에게 부모는 그런 사람들이다. 힘든 가정 형편 중에 아빠는 사촌 집 별채에 살게 되었다고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서 학교에 다니는 나연은 존재감 없는 투명 인간이다. 따돌림을 당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다. 세상 어디 기댈 곳 없는 나연에게 사촌 오빠 ‘루’는 햇빛 같은 존재다. 자신을 제일 잘 이해해주는 사촌 오빠 루. 하지만 사촌 오빠는 나연에게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고 무리한 부탁을 해 온다. 세상 친절한 사촌 오빠 루의 선의를 믿고 싶었던 나연은 루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이 또한 괴롭다. 부모에게 말해 봤자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어느 날 ‘그건 범죄야’라고 말해주는 주홍 샘을 만나게 되는데...
친절을 가장한 폭력. 결코, 상처가 사라지지 않을 폭력. 때리고 패는 것만, 폭력이 아니다.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말이나, 혹은 눈으로 하는 폭력도 상처가 된다면 폭력이다. 친절하다는 이유로, 나를 이해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나를 조종하게 놔둘 수 없다. 그건 범죄니까. 하지만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건 더 절망적이지 않을까? 부모가 있지만, 부모보다 더 어른 같은 아이, 부모가 있지만, 방패가 되어주지 않는 부모,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부모, 그냥 권위에 기대어 소리치거나 윽박지르면 당연히 따라와 줄 거라 믿는 무식하고 무지한 부모.
자신이 지구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걱정해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연이를 보면서 씁쓸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평등하지 않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는데? 누군가는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누군가는 사랑받지 못한다. 존재 자체를 쓸모없다 여기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가뜩이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난리면서 왜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건지. 이런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되는지,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많다면,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더 각박하지 않을까? 사랑에도 양극화가 생기는 것 아닐까? 곁에서 너는 파괴되지 않는다고, 이겨 낼 수 있다고 말해 주면 좋겠지만, 솔직히 말한다고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음을 걸 알기에 그냥 씁쓸했다. 나연이 앞에 펼쳐질 세상이 답답해서. 청소년 책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루밍 성범죄와 가스 라이팅.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그리고 이런 일로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지면 현실과는 달라 많이 아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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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