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부터 쭉 읽고 있어요

꿈에 날개를 달자
- 작성일
- 2023.3.23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 글쓴이
- 김서해 외 4명
자이언트북스
단편소설을 읽는다는 건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행복하지만 그만큼 집중하고 예민해야 한다. 이야기의 흐름이 때론 내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끝나기도 하고, 난해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가끔 단편소설을 읽는 이유는 장편에서 만나지 못하는 신박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단편집을 냈다. 제목부터가 사랑이 충만할 것 같은. 하지만 읽어보니 사랑이 충만하기보다 묘한 씁쓸함을 남기는. 5개의 단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이유리 작가의 ‘내가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와 천선란 작가의 ‘뼈의 기록’.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는 주인공 수진과 친구 영인의 거래로 시작된다. 수진과 영인이 거래하려고 하는 것은 ‘파트너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 남편이 외도해 마음이 아픈 영인은 이혼하지 않고 남편과 잘 해보려는 마음으로 수진의 감정을 전이 받으려 한다. 전 연인과 헤어진 것이 고통스럽고, 반려묘 순대의 치료비를 위해 돈이 필요했던 수진은 친구와 감정을 전이한다. 이후 수진에게 부작용이 찾아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남자를 소개받는다. 이 남자 또한 감정 전이를 한 사람인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아픔과 상처를 남긴다. 그 시간을 이기기 위해 새로운 사랑도 좋지만, 결국엔 시간이 약이다. 어른들의 말씀.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당시에는 너무 싫었는데 이젠 안다. 사랑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별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감정을 전이 받고 계속해서 새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 이별의 아픔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 살면서 매일 아플 수 없고 매일 행복할 수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오만가지 감정을 다 겪을 필요는 없지만, 적당히 다양한 감정을 겪으며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때론 그 감정이 영 익숙해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양한 감정 덕에 더 단단해지는 것은 아닐까?
‘뼈의 기록’은 장의사 로봇 로비스의 이야기다. 로비스 상사인 무영, 청소부 모미와 함께 일하며 시체를 염하는 작업을 하는 로비스. 로비스에게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다양하다. 무연고 노인이나 항공우주국 대위 첼의 동생, 교통사고를 당한 서채호 그리고 직장 동료였던 모미까지.. 안드로이드이기에 오히려 죽음을 더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직 죽음이 내 곁에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살아계신다. 앞으로 나에게 장례서비스를 이용할 날이 결국에는 올 테지만, 나는 어떤 감정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 있을까? 화장의 절차들이 어떤 건지 잘 모른다. 화장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아직은 모른다. 언젠가는 이런 행위들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마지막 가는 길 정성을 다하는 것. 감정이 없기에, 더 나을 수 있으려나? 사는 동안 화려했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한 줌의 재가 된다. 자신의 재산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죽을 수도 없다. ‘죽음이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다르며, 볼 수 없는 존재의 삶을 끊임없이 보고 있는 뼈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로구나.’ (277) 결국에는 인간 모두 죽지만, 죽음의 순간이나 모습은 다 다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죽음은 그걸 다시 생각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 아닐까?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