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아
  1. 에세이,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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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 아래
글쓴이
나오미 앨더만 외 14명
아날로그(글담)
평균
별점9.3 (35)
필리아

살갗이란 사람에게만 사용하는 살가죽의 겉면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살갗 아래, 이 가죽을 비롯하여 이것으로 에워싸인 것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독특한 이름을 가진 책은 담낭에서 콩팥 등 장기 및 기관, 더불어 혈액, 갑상샘에 이르는 사람의 몸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적인 움직임과 그 독창성에 대한 기록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일상적 언어인 피부가 아닌 살갗인 것은 이처럼 문학적 뉘앙스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이 말을 신뢰하고 정말 순진하게 시적(詩的)’이라는 문학적 향취를 쫓으려는 의지는 그리 쉽게 달성되지 않는다. 또한 독창성은 몸의 요소에 대한 15인의 영국 작가들의 글에서가 아니라 그 장기(기관) 자체가 지닌 오묘한 구조와 기능에 대한 수식어에 가깝다. 그렇다. 의학적 정보도 있으며 사람들의 보편적 자기연민의 흐느낌과 어울린 신변잡기도 있다. 이를테면 이 세상에는 반드시 무언가 잘못되어야만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는 문장처럼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그로인한 고통이 발생되어서야 비로소 돌아보게 되는 질병적 관심에서 연원하는 단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발견하게 된다. 하찮음 속의 그 독특한 개성이 있음을.

 

뚱딴지같은 얘기가 되겠지만 별 볼 일없는 무미건조한 인간에서조차 흥미로운 독특함이 있듯이 평이한 글들의 모음에서도 또한 발견할 새로움이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으며 더욱 이러한 자기 종용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러한 인내의 결실로서 134쪽에 이르러 지적 쾌락을 갈구하던 내 뇌를 보상해주는 글을 발견했으니 이 책의 미덕이라면 문학적 독창성이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희소성의 가치일 것 같다. 그런데 그 몇 편의 글이 꽤나 대단하다는 것이다.

 

재미와 섬세함과 통찰력을 갖춘 작가라고 유명세를 지닌, 국내에는 불복종(Disobedience)이라는 소설 작품으로 알려진 나오미 앨더먼(Naomi Alderman)’이 쓴 인간 생물학이 하는 지독한 농담으로서 창자에 대한 에세이는 그야말로 황홀한 시적 아름다움, 문학적 은유의 풍요로운 세계를 선사해준다.

 

항문이 생식기에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사람이 겪는 노이로제의 모든 원인은 아니라 해도 확실히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을 슬쩍 인용하면서, 항문과 항문이 생산하는 배설물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테러라고까지 비유하고, 이윽고 어떤 황홀경에 휩싸이든지 본질적으로 언제나 (창자는) 똥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상기시킨다. 결국 항문과 항문이 만드는 이해할 수 없는 불쾌한 생산물을 물리적 결정론과 관계뿐 아니라, 육체를 가진 모든 존재의 숙명인 부패와 죽음을 나타낸다.”며 창자와 배설과 인생의 그 신비로운 연계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는 몸의 철학’, 세계 이해의 주체로서 신체가 발하는 지각에 대한 내 신념을 강화시켜주기까지 했다.

 

아마 이 풍성한 지적보상과 겨루는 글이라 할 수 있는데, 2016년 맨부커상 후보작이었던 Serious Sweet(아주 달콤한)를 쓴 스코틀랜드 소설가 ‘A. L. 케네디는 읽는 내내 즐거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떤 의도를 담지 않고 사용하더라도 냄새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어떤 의미가 담긴다고 포문을 연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평가할 때는 어딘지 모르게 구린내가 난다거나 썩은 내가 진동한다.”고 표현한다. 이는 뇌가 은유적인 역겨움도 진짜로 역겨운 자극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인간 진화와 관련하여 발달한 나쁜 냄새의 재빠른 인식의 중요성이 만들어낸 인간의 오래된 인식 산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명화와 냄새의 단절을 향한 노력의 역사, 게다가 상스럽고 추잡한 온갖 것들과 관계하는 코에 얽힌 이야기들은 재미와 철학적 사유의 선물들을 안겨준다.

 

신경외과학에 관한 주제로 에세이를 쓸 수 있다는 미친 생각을 하게 하는 바로 그 뇌의 오묘함을 의학기술의 진보와 함께 맛깔나게 지펴낸 소설가 '필립 커(Philip Kerr)'가 쓴 를 이야기하며 맺어야 할 것 같다. 아버지 조 케네디(Joe Kennedy)가 자기주장이 강하고 반항적인 딸이었던 로즈메리 케네디(F. 케네디의 여동생)에게 강제로 실행한 전두엽절제술의 야만성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당시 지적으로 최상의 기반을 지닌 가문에서 조차 예외가 되지 않는 가부장제가 지닌 여성에 대한 폭력성의 단면이다. 수술 후 그녀가 말하지도 걷지도 변을 가리지도 못하는 두 살 박이로 퇴화했음은 굳이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권력과 과학이 결합했을 때 발산하는 그 폭력성의 전형일 것이다.

 

1962년 발표된 켄 키지(Ken Kesey)’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주인공 랜들 P. 맥머피에게 행하던 수술이 바로 전두엽절제술이다. 수술 후 불은 켜져 있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음을,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게에 진열해 놓은 마네킹 같았다.” 과학의 무모함과 야만성이다. 이 기술로 노벨의학상을 탄 사람도 있었으니 인간의 역사 또한 실로 아이러니와 무지의 역사, 오만의 역사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지금, 현재의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양 떠드는 꼴들을 생각하면 어떤 모멸과 자괴감이 휩쓸고 지나간다. 요즘은 장비의 발달로 전방 측두엽 절제술이라 보다 구체적인 부위의 이름으로 수정해서 간질환자의 치료에 제법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짧은 리뷰로 마치려 했음에도 제법 긴 감상이 되고 말았다. 알지 못하는 것,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통절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몸, 인간 신체에 대한 각양의 해석과 정보, 사연을 엿듣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이 책은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학적 철학적 보상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정말 감질(疳疾)나는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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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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