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평론

필리아
- 작성일
- 2020.7.3
거대한 분기점
- 글쓴이
- 데이비드 그레이버 외 7명
한스미디어
포스트 자본주의, 포스트 코로나19,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란 어휘가 일상의 언어가 된 지금이다. 무언가 현재까지의 삶의 방식에 대한 대전환을 위한 갈래 길에 도달해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책은 이것을 '거대한 분기점'이라 명명하고, 분기점이라 자각케 하는 요인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경제적 사고에 기초한 그로부터 변화되어야 할 가치관, 제도, 정책을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여야 할 세계는 역사적 자료가 있는, 즉 경험을 지닌 세계가 아니다. 경제학자 최배근 교수의 말처럼 '새로운 처음' 앞에서는 매뉴얼 같은 것을 작동시킬 여지가 없는 세계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전염병, 고도화된 테크놀로지라는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새로운 세계를 결정하게 될 오늘의 우리들에게 그 중대함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지금의 결정이 인류의 미래 존재 가능성을 쥐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이 책의 대담자들인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여섯 명의 학자들은 바로 지금(원작의 출간년도, 2019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인식된 세계의 가치들을 어떻게 변화하고자 하는가?
1. 현재의 이해에 대해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논의의 키워드는 자본주의, 그리고 AI 로 대변되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이다. 부의 극단적인 양극화, 대대적인 일자리의 소멸로 인한 대량 실업과 소비 위축, 빈곤의 확대, 기술 독점 특권계급의 자본 독식과 같은 승자독식의 위험 등에 대한 부정성의 증가이다. 즉 계층 격차의 심화, 공존의 파괴가 가져올 인류 미래의 불확실성 증가에 대한 우려이다.
1-1. 현재의 긍정론자들
뉴욕시립대 경제학 교수인 폴 크루그먼은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할 포스트 자본주의란 것은 없으며, 또한 AI의 위협이란 과장된 것으로 대량 실업같은 것 또한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는 일이며 대신 다른 일이 생겨난다고 낙관론을 펼친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설계자다운 인식능력이다. 이러한 이해는 미국 조지메이슨대 경제학 교수인 타일러 오웬에게서도 발견되는데 결코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논리의 배경으로 "역사적으로 50~100년 단위로 기간을 잘라보면 경제가 성장할수록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다른 일자리로 대체되며, (...) 단지 경제의 대사가 일어날 뿐" 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역사적'이라는 과거의 매뉴얼에 의존하고 있으며, '성장'이라는 환상적 개념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과연 역사적 경험과 경제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우리가 마주할 세계에 적용 가능한 것일까를 반문하게 된다. 우리의 닫힌 생태계 지구가 성장이라는 무한으로 향하는 욕망이 가능한 세계인가?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자 소위 선진 경제대국이라는 미국, 영국 등 서유럽, 일본이 위기해결에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마이너스 성장이 곧 현실이지 않은가?
반지성이 세계를 잠식하고 있음에도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세계는 빠르고 스마트해지고 있다"고 전제하며, 단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세계로의 진입일 뿐, "경제 전체의 신진 대사가 활발해지고 틀림없이 일자리도 생긴다"고 주장한다. 근거없는 기술낙관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굳건한 신봉자다운 믿음이다.
1-2. 비판, 변화론자들
런던정치경제대 문화인류학 교수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 남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못하는 의미없는 일, 즉 '사회 계층에 의한 권력'을 쥔 이들이 더 높은 보수를 받는 노동의 중요요소에 대한 비틀린 인식을 오늘의 비정상적 부의 편재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편 체코의 경제학자인 토마스 세들라체크는 "아무런 수정을 하지 않고 지금 이 상태가 최고인척하다가 보이지 않는 손이 사회가 아니라 시장에만 힘을 끼치는 사태가 발생한다"며 성장지상주의를 비판한다. 공정하지 못한 오늘의 시장 시스템의 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회의 보이지않는 손이 작동할 수 있도록 반복된 감시와 시정이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승자만 모두 차지하는 격류같은 경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물에 빠지지 않는 정책,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벨기에 학자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삶의 의의, 육아, 행복감과 같은 정작 인간에게 절대로 중요한 것을 측정하지 못하는 GDP와 같은 오늘날의 추정지표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지진과 같은 재난 재건비용이 GDP증가로 표시되는 공허한 경제 지표경쟁, 어떠한 혁신적 창조도 없이 광고플랫폼 제작에 열을 올리는 실리콘밸리, 정부지원금으로 초과이윤을 챙기는 기업자본주의의 현실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또한 이러한 부의 독점체제가 지속될 경우 극히 소수만이 소유하게 될 로봇의 세계는 아마 악몽의 세계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수정하고, 새로운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며, 정책과 제도는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인가?
2. 변화의 양식들
현재의 이해에 대한 차이는 변화의 지향점, 문제해결의 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긍정론자들은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 거대한 분기점이라는 이 현실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던 일이었으니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근미래의 대량실업이나 중산층의 붕괴, 기술격차와 부의 독점은 단지 비근한 경제 불황의 현상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코로나19로 극단적으로 위축된 고용의 악화, 소득과 생산의 감소, 성장 없는 경제는 우리네 정치현장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제기에 대한 반응처럼 그 대응 인식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2-1. 기본소득
기본소득이란 개념은 소득, 사회적 부의 심각한 격차 발생에 따른 일종의 사회 안전망으로 삶의 최저기준을 보장해 모두가 공존하는 유대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여기에 공감하는 변화론자들은 성장이란 경제의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대두로 인한 격차의 심각성에 기초하여 기본소득의 실현을 주장한다. 브레흐만은 기술진보의 혜택은 독식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분배되어야 하며, 과학실증적으로도 삶에 필요한 최저수준의 기본소득은 긍정론자들의 부정적 인식 - 게으름과 무위도식자 양산, 건전한 경제기반의 훼손, 창조적 혁신의 장애, 막대한 재원 동원에 불가능성 등등 - 과 달리 "빈곤을 벗어나면 돈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오히려 자원봉사와 예술적 활동의 활약과 같이 다양한 경제적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제고한다"고 역설한다.
반면에 현실 긍정론자인 폴 크루먼 등은 기본소득에 반대한다.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며, 중산층의 붕괴나 소외는 단지 심리적 문제일 뿐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현실에 맞출게 될 것"이라며, 이의 토대개념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시장을 평형화"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하기까지 한다. 이들에게 오늘의 현실은 사실 거대한 분기점이 아니라는 이해이다. 다만, 굳이 기본소득을 실현하려 한다면 "전 국민에게 세금을 올려" 받아 "효율성 높은 필요인원에 추가급여를 지급하거나 근로소득 공제액을 늘려 수입을 보충해주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금 증대 대상이 부를 독점한 이들이 아니라 전 국민이고, 지급 대상은 여전히 직업을 유지하고있는 효율성 높은 사람이니, 가난한 자에게서 부를 빼앗아 부유한 자에게 나누어주자는 기본소득의 개념과는 다른 해괴한 논리를 펴기까지 한다. 여기에는 성장과 격렬한 경쟁의 논리가 여전하며 불균형에 대한 인식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미래의 세계가 과연 존재 가능할까?
2-2. 의미있는 일로의 전환
지금의 세계는 분명 인류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이다. 공존,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진리가 사라지고 승자가 부를 독차지하는 오늘의 자본주의 체제는 심각한 불균형과 가치의 왜곡을 심화시키기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체제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를 떠받치는 무한한 생산과 무한한 욕망 충족이라는 자본주의의 근간이 붕괴하고, 무차별적인 전염병의 확산은 '사람을 보호하는 노동(Caring Labor)'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인식케 하며, 고도 테크놀로지는 이와 결합하여 새로운 빈곤층을 생산한다. 이에 대한 전환적 가치를 긍정론자에게 찾는 것은 아래와 같이 불가능한 만큼 변화론자들의 논의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더 부유한 사회가 더 훌륭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역설한 긍정론자인 타일러 오웬의 말이 바로 지금 얼마나 근거 없는 헛소리인지 우리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의 어떠한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는 의료서비스의 적나라한 파국 양상은 이들 긍정론자들이 바로 지금을 해독하는데 얼마나 부적절한 지를 입증할 뿐이다.
변화론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그의 저술 『쓸모없는 직업(Bullshit Jobs: A Theory)』에서 노동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대한 대전환을 요구한다. 어떤 일이 의미있는 일인가? 사람을 돌보는 일보다 우선하는 일이 있는가? 코로나19에 직면한 세계는 간호사, 보육자, 요양보호자, 소방관, 구조대원, 택배등 물류배송원 등 인간을 보호하는 일의 가치가 사무직관리원, 변호사, 경제학자, 지자체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보다 훨씬 낮은 보수를 받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게 하지 않는가?
『리얼리스틀 위한 유토피아 플랜』을 쓴 뤼트러흐 브레흐만은 일의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주장한다. 광고 클릭 플랫폼을 만드는데 열심인 IT산업의 비혁신적 비창조적 행위에 재능을 낭비하는 이들의 보수가 왜 높아야 하는가? 과연 기나긴 노동시간이 진정 인간의 삶을 위한 생산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들을 쏟아낸다. 노동 가치에 대한 재정의와 사회계급 권력에 의한 왜곡된 가치를 바로잡는 일도 새로운 표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도 테크놀로지화되는 사회는 분명 기술격차를 야기한다. 여기에서 소외되는 무수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일의 가치에 대한 재정의는 기본소득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재정의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누가 되겠는가? 라는 물음은 긍정론자들의 기득권 향유의 안주에 경종을 울려 댈 것이기에. 그때에도 그들이 기본소득을 반대하게 될까? 빅데이터연구 전문가인 옥스퍼드 대학의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가 주창하는 금융자본주의에서 데이터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이와 궤도를 같이하여 상대적 약자들에 대한 기회의 공평한 제공이 격차해소는 물론 모든 사람들의 새로운 권리를 일깨운다.
소위 GAFA(Google, Amazon, Gacebook, Apple)라 불리는 정보와 부를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이들이 지닌 엄청난 데이터는 그들의 소유인가? 하는 물음이다. 그 데이터는 참여자들이 제공한 것임에도 그들이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이 불합리한 접근제한은 해제되어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야 하며, 오늘의 독점제한 규칙 또한 수정되어 공평한 경쟁, 누구나 일한만큼 대가를 가질 수 있는 체제로 변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데이터 접근권은 시민권으로 추가되어야 한다”는 최배근 교수의 이해는 새로운 세계관에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가 될 것 같다.
3. 마무리 글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세계의 경제 유명인들을 대상으로한 대담집인 이 책이 일본 경제 진단을 중심으로 아베노믹스의 현재에 대한 검토, 4차 산업혁명등 격변하는 기술환경에 직면한 자국의 현주소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려는 의도로 구성되었다는 점과 아울러 2020년 1월부터 전 지구를 휩쓴 코로나19가 몰고 온 문명 변화적 요인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결정적인 한계라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욕구와 능력의 한계에 대한 자각, 저성장의 정상화라는 성장지상주의의 붕괴와 인간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새롭게 찾아가야 하는 새로운 가치관, 세계관의 정립을 말하는, 뉴노멀의 진짜 거대한 분기점을 말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2020년이라는, 오늘의 시점이 지니는 중요성을 다시금 성찰케 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 책에 논의되는 것은 직면한, 그리고 다가오는 세계에 대한 극히 지엽적인 담론에 불과할 것이지만, 기본소득이나 기술격차의 해소, 인간존엄을 토대로하는 자본주의의 인간화라는 사변적 가치나, 일의 가치개념 검토와 같은 문명 표준의 변화에 대한 주장들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결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주제를 시사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다만, 프레임, 즉 사고의 틀이 바뀌어야 함에도 포스트자본주의는 없다는 헛소리에 기초해서는 변화될 인간형, 신인류의 삶의 태도에 대한 기준들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아쉬움을 뒤로하며...(終)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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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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