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의 일본 출간 당시 원 제목은 [시급 300엔의 사신]입니다.
말 그대로 동급생 히나모리와 함께 우연한 기회에 시급 300엔짜리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책인데요.
그 아르바이트란 미련이 남아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사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저세상으로 보내주는 일입니다.
다양한 사자를 만나고 그들이 세상에 가진 미련을 떨쳐내는 방식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 소설은, 문체 자체가 가볍고 대부분이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소설책보다는 만화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360여 페이지로 분량도 많지 않은데다 빠르게 읽을 수 있어 휴일 오후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하면서 읽기에는 딱이더라구요.

어디로 보아도 다단계 물건 강매처럼 느껴지는 '사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주인공.
갑자기 찾아온 동급생이 아르바이트의 상급자가 되고, 둘은 함께 조를 이루어 '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사자는 생전에 미련을 가진 채로 사망한 이들인데, 그들의 미련을 해결해주면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다고 하죠.
그들이 미련을 버리거나(체념하거나) 그들에게 주어진 추가시간이 끝나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고, 이 세상은 '그들이 죽었던' 세상으로 바뀌어 다시 재구성됩니다.
즉, 사자가 다시 살아나서 사라지기 전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없던 것이 된다는 것인데요.
추가시간 동안 있던 일들은 사자들만이 기억하게 되고,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사자 역시 추가시간의 일들을 모두 잊는다는 것.

주인공 사쿠라는 처음에는 이 기묘한 이야기를 믿지 못하지만, 다양한 사자들과 만나고 여러 가지 경험을 거치며 점차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시급 300엔의, 아주 고약한 근무환경이지만 말이죠.

이 책은 계속해서 어떤 이의 삶에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요.
사신 아르바이트는 사자들의 미련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을 통해 그들의 인생 전체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사자가 떠나고 나면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추가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자의 마지막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죠.
그렇다면 앞으로 더 많은 삶이 남은 우리들은 '인생'이라는 추가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까요.
누군가의 기억에, 추억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기억될 추가시간 말이죠.

아마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행복은 쉽게 망가지지만, 그래도 어떤 순간 행복했음을 기억하는 것,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라고 말이죠.

후지마루 작가의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아주 가벼운 내용만은 아닙니다.
겨울을 따뜻하게 해 줄 감성 미스터리로, 미스터리 장르 소설 매니아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할텐데요.
개인적으로 소설 후반의 반전은 좀 예측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잔 하며 편하게 읽기 좋았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