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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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글쓴이
할레드 호세이니 저
현대문학
평균
별점9.4 (360)
삶의미소





얼마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의 자살폭탄테러와 아프간에서 한국 정부 활동에 협력했던 현지인 직원과 그 가족 380여 명이 국내로 이송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조직이 텔레반이었고 이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숨어 들어가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전을 벌였다는 정도였다. 몇 해 전 할레드 호세이니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쓴 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인간의 잔혹성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충격과 착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끝없음에 책을 읽으면서 너무 힘들었었다. 그러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 궁금증도 가지게 되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아프간의 아픔이 그만큼 처절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을 읽게 되니 자연스럽게 후속작인 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겨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마리암은 정식 부인이 세 명이나 있는 아빠 잘린과 가정부였던 엄마 나나 사이에 태어난 하라미(사생아를 비하하여 일컫는 말)이다. 헤라트의 외곽에서 엄마와 함께 둘이서 생활하던 그녀는 15살 생일을 맞이하며 삶의 큰 변곡점을 맞이한다. 엄마가 저주같이 내뱉었던 말처럼 하라미인 그녀에겐 믿었던 아버지도, 그녀 앞에 놓인 삶도 녹록치 않다. 15살의 나이에 30살이나 많은 카불에서 온 남자 라시드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고 거듭된 유산으로 남편에게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너 같은 계집애를 학교에 보내 어디다 쓰려고? 그건 타구(唾具)에 광을 내는 것과 같다. (중략) 너나 나 같은 여자한테 필요한 유일한 기술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날 봐라.”



(중략)



단 하나의 기술만 있다. 그것은 타히물(참는 것)이다.”



엄마, 뭘 참아요?”



그게 뭔지 알려고 안달할 건 없다. 그럴 일은 쌔고 쌨으니까.” (P.30)



 



마리암은 소파에 누워 무릎 사이에 손을 넣고 눈발이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나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했었다. 그 모든 한숨이 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작은 눈송이로 나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 위로 소리 없이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P.125)



 



 



라일라는 죽은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엄마의 보살핌은 받지 못하지만 교사인 아버지의 사랑, 친구들과 우정 그리고 타리크에게 의지하며 생활한다. 부모님과 함께 내전으로 혼돈에 빠진 카불을 떠나기로 하고 짐을 정리하던 중 폭격으로 부모님이 사망하고 중상을 입었던 그녀는 라시드의 집에서 기거하며 몸을 추스린다. 타리크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타리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순에 가까운 라시드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딸 아지자를 출산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라시드에게 마리암과 같은 존재가 된다.



 



라일라는 침대에 누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은 샤하드(순교자)가 되지도 않았고 이처럼 살아 있으며, 희망도 있고 미래도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아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자신의 미래가 오빠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그녀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죽을 때도 그녀는 그들에 가려 미미한 존재일 터였다. 엄마는 오빠들의 삶을 보관한 박물관의 큐레이터였고 라일라는 그곳을 찾은 방문객일 뿐이다. 그녀는 오빠들의 신화를 위한 피난처에 불과했다. 그녀는 엄마가 그들의 신화를 기록하는 데 필요한 양피지일 뿐이다. (P.193)



라일라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명예롭지 못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명예스럽지 못하고 부정직하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마리암에게는 너무너무 부당한 짓이었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가 오디보다 크지 않았지만, 라일라는 이미 엄마로서 감당해야 하는 희생에 대해 알았다. 미덕이나 정조는 그다음 문제였다. 그녀는 배에 손을 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P.294~295)



 



 



마리암은 자신의 자리를 뺏은 라일라를 적개심으로 대하지만 아지자에 대한 애정을 키우며 둘 사이는 모녀같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라시드의 행패를 견뎌낸다. 라시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아지자가 4살이 되었을 때 아들 잘마이가 태어나고 라시드는 잘마이를 애지중지한다. 일정한 수입이 없고 가뭄이 지속 되자 아지자를 고아원으로 보내라는 라시드의 결정에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된다. 라일라는 죽은 줄 알았던 타리크가 카불로 돌아와 재회하지만 둘의 만남을 잘마이가 라시드에게 고자질하며 큰 사건이 일어난다. 분노한 라시드의 손에 라일라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마리암은 라시드를 죽이게 된다. 마리암은 아무리 라일라를 살리기 위한 길이었어도 잘마이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빼앗아 간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처형을 당한다. 마리암 덕분에 아이들을 데리고 타리크와 함께 파키스탄으로 간 라일라는 평온한 생활을 하게 된다. 미군이 카불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파키스탄이 아닌 카불이라는 생각해 카불로 돌아가기로 한다. 카불로 오기전 마리암이 살았던 헤라트로 가 그녀를 기린다. 마리암에게 코란을 가르쳤던 파이줄라 선생의 아들을 만나 마리암의 아버지 잘린이 마리암에게 남긴 사죄와 후회를 담은 편지를 받게 된다. 카불로 돌아온 라일라의 뱃속엔 새 생명이 자리 잡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리암은 이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많은 걸 소망했다. 그러나 눈을 감을 때, 그녀에게 엄습해온 건 더 이상 회한이 아니라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그녀는 천한 시골 여자의 하라미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쓸모없는 존재였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잡초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마리암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P.505~506)



 



그들이 카불에 처음 왔을 때, 라일라는 텔레반이 마리암을 어디에 묻었는지 몰라 괴로워했다. 그녀는 마리암의 무덤에 찾아가 머물다가 한두 송이 꽃을 놓고 왔으면 싶었다. 그러나 라일라는 이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한 시편, 아지자가 서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P.562)



 



이 두 여성의 출발점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하라미라는 이유로 정식 학교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마리암과 달리 라일라는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그 둘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같은 길을 가게 된다. 라시드가 가하는 지속적인 신체적 ·언어적 폭력에 시달리고, 아들을 낳아야 하는 의무가 강요되고, 라시드의 말은 무조건 따라야한다. 왜냐면 마리암과 라일라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5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아프가니스탄의 험난했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마리암과 라일라‘ 라는 두 여성을 통해 그 시대의 여성들이 처했던 기구한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때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여성의 교육과 사회 참여가 상승하는 듯했지만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아프카니스탄의 정세는 여전히 불안했다. 소련을 몰아낸 저항군들 사이 내부 분열은 서로 간의 학살로 거듭되는데 그 혼란 속에서도 한가지 변하지 않는 공통된 점은 여성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다는 것이다. 텔레반이 장악한 이후엔 남성과 동반하지 않은 외출은 허락이 되지 않고, 외출 시 부르카로 온몸을 감싸야 하고, 교육을 받을 수도 없는 등 여성의 인권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 책의 끝에서 라일라의 가족에게 미군이 점령한 카불은 다시 빛나는 천 개의 태양의 영광이 다가올 것 같이 희망 차 보이지만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미군 철수가 결정되고 텔레반이 재집권했다. 그러니 또다시 폭압 정책을 펼치고 여성들의 인권은 무시될 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고통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막막하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단순히 가상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현실에 존재해 있음이 더욱 안타깝다. 이런 시점에 다시 만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처음 만남과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 읽었을 당시 전작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처음과는 달리 책이 묘사한 그녀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이번엔 다시 <연을 쫓는 아이>를 읽어보고 느낌을 비교해 봐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사실 그 책을 읽고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인간의 사악함과 고통에 대한 연민이 오랫동안 떠나지 읺았다. 다시 그 느낌을 감당할 자신이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기 전까진 책을 펼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가 아프가니스탄 출신이기에 아마도 자신의 조국 사정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깊이 있게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바람처럼 아프가니스탄의 평화가 찾아와 무고한 자들의 희생과 고통이 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지붕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P.259, 사이브에타부리지라는 시인이 17세기에 카불에 관해 쓴 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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