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리뷰

삶의미소
- 작성일
- 2022.8.4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 글쓴이
- 리러하 저
팩토리나인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는 제1회 K-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지옥에 세를 줬다는 참신한 설정과 함께 로맨스도 복합된 이야기라니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옥에 세를 준 거면 집이 지옥이 되는 것인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지옥에 세를 준 것일까? 그 궁금증으로 들어가 보았다.
지옥이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적절한 크기의 부동산을 얻은 뒤에야 창의력을 발휘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옥의 형태는 정말 다양했다. 할머니가 나를 가르치기 위해 빌려 오면 동서고금의 지옥 이미지는 댈 것도 아니었다. (p.37)
낡은 주택에서 오래도록 하숙집을 하던 할머니는 악마와 계약해 하숙집 빈방을 지옥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한다. 할머니의 친손주가 아닌 서주는 10년 전 할머니의 도움으로 이곳에 머물며 하숙집 일을 돕는다. 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등록금을 벌기 위해 현재는 휴학 후 아르바이트 중이다. 가끔 정신을 잃고 섬망을 경험하는 할머니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한데 할머니에게 쫓겨났던 둘째 아들이 주변을 서성이며 서주의 불안감은 더 커진다. 이래저래 심란한 데 빈방에는 지옥의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고 벌을 받는 자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집안 곳곳에 울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들이 지옥을 상상했던 건, 지옥에 보내고 싶은 인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주가 나 대신 복수해준다니 좋잖아.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위한 지옥을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까? 어디의 누구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용없어요. 내 지옥은 여기 있으니까. (p.44~45)
할머니는 나를 이 집에 들여 아낌없이 먹였고, 그런 이유로 나는 '우리' 집을 쓸고 닦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집을 '우리 집'처럼 여기게 된 악마는, 대체 무엇을 받아먹으며 홀린 것일까. 대추를 받아 먹은건 아귀였잖아. 질문을 바꿔보자면, 악마는 대체 무엇에 굶주려 있을까. (p.172)
그런데 이 지옥의 담당자인 악마는 이상하리만치 친절하다. 악마는 남이 잘못되길 바라는 게 상식인데 이 악마는 먹을 것을 챙겨주고 서주의 심란한 마음을 다독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사랑 고백까지 하는 이 악마의 본심을 믿지 못한 서주는 악마의 마음을 거절한다. 돈 때문에 쫓기던 할머니의 둘째 아들의 사고사를 처리하기 위해 지옥에서 벌을 받는 자들에게 시체 처리 방법에 대해 자문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하는데 결국 악마와 서주의 합작으로 이 사건은 잘 해결되지만 할머니의 상태는 악화한다. 서주는 할머니와 혈연관계가 아니었기에 할머니의 부재 이후 그의 처지는 밝아보지 않는데 과연 서주는 이 암담한 미래와 악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말로만 듣던 끔찍하고 살벌한 지옥을 만났다. 그런데 이 지옥을 담당하는 악마가 순수하고 진솔해 보이니 악마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지옥에 있는 이들에게 가혹행위를 가하는 걸 보니 악마가 맞긴 한 데 악마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의지하게 되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살아서 먹는 거로 나쁜 짓을 했던 이가 하숙집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먹는 정체불명의 복합적 먹거리는 구토 유발을 담당하니 이 하숙집에 있으면 절로 살이 빠질 것 같다. 스릴러, 코미디와 로맨스가 이 오래된 하숙집에서 펼쳐지는데 급기야 사망 사건까지 겹치며 이 하숙집 정말 어마어마하다. 서주는 괴팍스럽고 깐깐한 할머니 덕분에 나쁜 행동 하면 안 된다는 잔소리가 귀에 박히도록 들었지만 죽어서 지옥으로 갈지 안 갈지가 결정되는 나쁜 짓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지 답을 구하기 어렵다. 지옥문 앞에서 당당하게 난 나쁜 짓 안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이 힘든 질문과 함께 악마와의 로맨스 또한 감당이 안 는데... 여러 장르의 요소를 두루 갖춘 스토리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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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