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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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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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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리더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비로소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전에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편파 수사에 대해 규탄하는 목소리는 항상 존재했다.



일명 ‘불편한 용기’라는 이름의 시위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편파 수사를 규탄하고 디지털 성범죄로 자행되는 성 착취에 대한 문제성을 알리기 위해 결집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는 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고, 이후 더 큰 사건이 발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위에 관한 기사를 보던 중, 눈에 띄는 피켓 하나가 있었다.



몇 년 전 한 줌의 재가 된 내 친구가 어째서 여전히 동영상 속의 XX녀로 살아있는가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죽어서도 영상 속에 살아남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물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죽음이라는 선택을 하고도 여전히 피해자 신분으로 남아 있었다.



인터넷에 유포된 영상은 일순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동영상을 소장하고 있던 개인이 재유포를 하면 좀비처럼 살아나 피해자의 인생을 갉아먹는다.



 




그것들은 좀비였다. 좀비 하나를 죽여도 새로운 좀비는 그보다 빨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원본 사진은 물론 딥페이크로 조작한 사진과 영상도 처음에는 몇 명만 내려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곳에 그것들을 게시하면 몇 배로 늘어난 사람들이 내려받게 되는 것이다. 재이는 인터넷에서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지워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아득함에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살아있는 피해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피해자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고, 피해자 다움을 강요받아야 했다.



도리어 피해자를 탓하는 2차 가해까지 감내해야 했다.



리온과 재이가 바로 이 책에서 죽은 거나 다름없는 디지털 성범죄의 살아있는 피해자들이다.



 



모리는 ‘흔적지우개가 운영하는 디지털 장의’라는 사이트의 주인이다.



사이트 이름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모리는 일명 ‘흔적지우개’가 되어 온라인에 퍼져있는 성 착취물을 지움으로써 장례를 치르는 일을 하며 사이트의 존재 의의를 지켰다.



사이트를 개설한 목적은 물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구제할 목적도 있었으나, 어렸을 때 사고로 실종된 쌍둥이 여동생을 찾기 위함도 있었다.



온라인 세상의 음지에서 살아 있을지도 모를 여동생을 찾기 위해 시작된 일은 어느새 규모가 커졌고, 결국 오해가 생겨 경찰서까지 드나들게 만들었다.



 



사이트 운영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폐쇄를 마음먹었을 때, 모리는 예상치 못한 인물로부터 도움을 요청받는다.



같은 반 친구이자 유명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리온은 모리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자신의 영상물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한다.



모리는 리온에게 알 수 없는 친밀감을 느끼고 도와주기를 결심한다.



리온의 영상물 유포의 진상을 추적하던 모리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 충격적인 사실들은 가해자가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 현준과 리온의 하나뿐인 절친한 친구 재이라는 것과 재이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현준에게 자신의 영상물로 협박 받고 있는 또 다른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라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책을 완독한 뒤표지 사진을 찍는데 전에 없던 생각이 들었다.



살짝 광택을 내면서 사물이 비치는 종이 책을 찍고 있는 내 손과 휴대폰이 표지에 그대로 비쳤는데, 그 모습이 마치 뒤돌아 있는 여성을 몰래 촬영하는 것 같았다.



표지의 여성을 향한 눈(目)들과 달리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비약적이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러한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잘 쓰였다.



자칫 민감하고 어려울 수 있는 온라인 성 착취물의 문제성에 대하여 청소년들이 읽고 공감하기 좋게 풀어낸 소설이다.



특히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디지털 성범죄로 발생하는 피해 가운데 최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남성은 범죄의 피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가 자행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 의식이다.



 



자신의 신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찍히고 있는지도 모른 채 피해를 입어야 했던 리온이 바로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인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이 불법 촬영물의 피해자가 된 줄도 모르고 살거나, 혹은 알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한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해자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다.



리온은 자신의 샤워 장면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밖에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리온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고 리온을 자살미수까지 몰고 간 재이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인물이다.



재이는 교제하던 현준에게 몸 사진을 찍어 보냈고, 그것을 빌미로 협박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연이 재이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되는 데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재이는 리온이라는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했고, 리온을 2차 가해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다만 재이의 이야기를 통해 성범죄는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과 성범죄에 가담했다면 목적이 어떻든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온, 네가 평소에 행동 똑바로 했으면 이런 일이 생겼겠어? 자꾸 흘리고 다니니까 남자애들이 너한테 그러는 거지. 처신 똑바로 해."



 



재이는 그날 일을 계속 생각했다. 그러면 리온에게 매몰차게 굴었던 것이 별일 아니게 느껴졌다. 너도 그런 영화를 보는데, 남이 네 몸을 보는 게 뭐가 잘못이야. 그때 네가 나처럼 양심에 찔리는 티만 냈어도 내가 그러진 않았을 거야. 모든 게 네가 자초한 일이야. 너네 엄마가 교육을 잘못한 탓이라고. 우리 엄마처럼 잘못하면 소리라도 쳤어야지. 19금 영화 보는 딸을 혼내기는커녕 먹을 거나 챙겨 주니까 네가 경각심이 없는 거야. 그러니 이런 일도 당하는 거지. 리온은 원래 발라당 까진, 이상한, 그렇고 그런 아이라고 재이는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다.




 



현준은 자신과 교제한 여성들의 영상물을 학급 단체 대화방에 서슴지 않고 유포하는 범죄자 인물이다.



심지어는 본인이 등장하는 영상도 거리낌 없이, 마치 트로피처럼 전시하는 악랄한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현준과 여자친구, 둘 사이에서 자행되었던 가스라이팅이 디지털 성범죄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이 커진 것이다.



현준과 교제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이자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동의하에 찍었기에, 자발적으로 찍었기에 재이는 피해자가 될 수 없었고, 현준은 가해자를 모면할 수 있었다.



 




진욱에게 가슴 사진을 찍도록 허락한 것도, 키스하도록 내버려 둔 것도, 몸을 만져도 저지하지 않은 것도 모두 재이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진 상황은 자신이 똑바로 행동하지 않아 벌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재이는 누구나 자기 몸을 봐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없었다. 잘못이라면 진욱의 말을 믿은 것뿐이었다.




 



피해자를 탓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사진을 찍지 말았어야지, 싫다고 말했어야지, 그 남자를 만나지 말았어야지, 그 시간에 밖에 나가지 말았어야지.



분명한 것은 ‘나’가 아닌 타인에게 유포의 권리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동의하에 사진을 찍었더라도, 교제했더라도 그것을 공유하고 유포할 권리는 ‘나’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주장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이며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이러한 책임 전가가 용인되는 사회라면 딥페이크나 나도 모르는 새 찍히는 촬영물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책임을 전가할 것인가.



평소에 가볍게 행동했다고, 옷을 야하게 입었다고, 인기가 있으니 감내하라고.



피해자는 어떻게든, 언제 까지든 피해자로 남아 야만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장마다 리온의 피해를 대변하는 모리와 리온을 자살미수까지 몰고 간 가해자 재이의 입장에서 쓰인 구성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쪽 상황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온라인 세계에 만행한 디지털 성범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자의 고통을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소재로 풀어냈다.



디지털 성범죄로 자행되는 성 착취와 2차 가해의 심각성을 청소년들에게 왜곡하지 않고 잘 전달하는 것이 어른들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잠깐 들끓었다가 식는 가십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몰래 숨죽여 울고 있을 피해자들이 잊힐 권리를 얻고 구제될 수 있도록, 경각심을 가지고 어른과 청소년, 남성과 여성, 모두 노력해야 하는 문제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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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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