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뉴리더
  1. 기본 카테고리

이미지

도서명 표기
뛰는 사람
글쓴이
베른트 하인리히 저
윌북(willbook)
평균
별점9 (39)
뉴리더

간헐적으로 러닝을 할 때면 꼭 한두 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 러너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분들은 나보다 나이가 곱절은 많아 보이시는데도 나보다 훨씬 단단하고 다부진 몸매에 지치지 않는 체력을 보유하셨다. 경보 수준으로 뛰는 내 옆을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지나쳐 일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지신다. 나의 페이스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러닝은 체력이 한창인 20~30대나 바짝 할 수 있고, 나이가 들면 버거운 운동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분들을 보면서 러닝 할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여든의 러너, 베른트 하인리히를 만나고 가능성은 확신이 되었다. 여든의 나이에도 계속 뛸 수 있다!




특히 달리기 같은 행위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힘에 부치고 많은 사람에게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습관과 경험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얼마나 많은 일을 평생 가지 않은 길로 만드는지 알지 않는가.




 베른트 하인리히는 생물학자이자 마라토너이다. 두 직업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생물'을 다루는 생물학자이자 '달리는' 행위를 몸으로 표현하는 마라토너는 공통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생물이 탄생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출발선에서 시작하여 결승선에 다다를 때까지 뜀을 멈추지 않는 달리기 역시 시간의 흐름이라는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많은 생물의 탄생, 진화와 성장, 죽음을 봐온 생물학자로서 달리기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생물이 탄생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한 단어인 노화로 정의할 수 있다. 즉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기 위해 늙어가는 것이다. 노화는 어떤 생물이고 피할 수 없으며 시간의 흐름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저자가 생물학자이자 마라토너로서 사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일(노화)에 또 다른 시간이 흐르는 일(뜀)을 보탠 것이다. 늙어가고 있지만 달리기라는 강한 활력이 더해져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힘이 생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에게 달리기란 죽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더해지는 행복하고 즐거운 기다림인 것이다.




시간이 우리에게 하는 일은 한 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적응해야 한다. 이 사실은 달리기에서 유독 두드러지고 인간의 생물학적 의미와 메커니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저자는 폴란드 출신의 독일인이며 제2차 세계대전 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성장했다. 저자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곳은 숲이었다. 숲에서 사냥하고 달리고 자연을 관찰하며 성장한 저자가 마라토너와 생물학자가 된 것은 숙명인 지도 모르겠다. 소위 말해 달리기에 타고난 체격이나 체력을 갖춘 것도 아닌데 저자의 달리기 이력은 가히 대단하다. 이름만 들어도 위대해 보이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 우승 경력과 24시간을 달리는 마라톤 대회, 수차례의 올림픽 참여 이력,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여 나이대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등 러닝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다 겪은 진정한 러너이다. 저자는 부모님과 떨어져 보호소에서 자라야 했던 유년 시절에도 시간만 있으면 뜀박질을 했고,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을 때는 업무와 뜀을 병행하여 어떻게든 뛸 시간을 마련하였다.




1.6킬로미터에 한 번씩 트랩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트랩을 확인한 다음, 다시 트럭을 몰고 1.6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식이었다. (···) 온종일 일에 얽매이다 보니 달릴 시간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일과 달리기를 병행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일부러 트랩에서 100미터 멀리 주차한 뒤 달려가서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여든 살에도 마라톤을 할 계획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건강과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래도 이 나이까지 러닝에 대한 갈망과 열의가 대단한 것은 모든 러너들에게 희망이 되어준다.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운동임을, 여건이 좋지 않아도 계속 뛸 수 있음을.




이 남성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누군가가 자연을 산책하는 것 이상으로 달려도 된다고 권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대단한 이력을 보유한 마라토너인데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우승 경력이나 힘에 부치는 대회를 완주한 경험에 대해서는 크게 자랑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하고 있다. 그에게는 1등의 성적이나 완주의 경험, 노령의 참가자라는 타이틀보다 '참가'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 때문인 것 같다.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무명의 마라토너가 우승이 보장된 젊은 마라토너를 제치고 결승선에 먼저 닿을 때의 짜릿함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저자가 이처럼 엄청난 성과에도 덤덤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을 마치 물 흐르듯 살아가며 그 순간 순간에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을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뛰는 순간 열심히 뛰었고, 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잡았을 뿐이다. 각각이 매 순간의 최선이었기 때문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다 보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40세가 되면 달리기 선수들의 생체시계는 한물갔다는 뜻에서 '언덕을 넘었다'라고들 말한다. 이 나이가 되면 궁금해진다. 힘을 다할 수 없는 데도 계속 달려야 할지, 아니면 쉬어야 할지 말이다. 최선을 다해 뛰는 건 어렵지만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어렵고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물론 죽는 날까지 계속 열심히 달려볼 수 도 있지만 지금껏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면 앞으로 지금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도전했다 실패한 거라면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만, 실행할 수 있음에도 가치 있는 일을 시도하지 않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생체시계가 머릿속에서 큰 소리로 똑딱거렸다. 나는 이제 막 40번째 생일을 지났고 지금이 아니면 이번 생에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일 년 후인 10월 4일에 시카고에서 열리는 100킬로미터 US 전국 선수권 대회에 도전하기로 했다.




 



저자의 생물학 실험과 달리기를 연계 짓는 내용이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동물이나 식물은 태어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고심하지 않는다. 곤충이 번데기를 거쳐 탈피하고 짝짓기 후에 알을 낳고 죽는 것이나, 나무가 봄이면 꽃을 피우고 겨울이면 죽은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 의지에 의해 행해지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인간도 어쩌면 마라토너로서 자질을 갖춘 채로 진화했을지 모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털이 없고 땀을 흘리는 신체적 특징이나 달리면서 사냥을 했던 고대의 인류처럼 현대 인류는 '뛰는 사람'으로 진화해왔다.



 



이처럼 어쩌면 자연 안에서 인류와 동물, 식물은 모두 동등한데 세상은 인간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출발 신호에 맞춰 뛰는 인간과 둥지를 떠나 날갯짓을 시작하는 새는 똑같은 메커니즘이 작용하지만 인간은 다른 생물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존재하는듯 하다. 해충과 익충을 구분 지어 해충을 박멸하고 그로써 익충과 타 생물까지 영향을 준다. 동물을 먹기 위해 가축으로 길러 고통스럽게 죽인다. 과거에 '생존'을 위해, '사냥'을 위해 가했던 죽임과는 어쩐지 다른 느낌이다. 인간이 위에서 군림하는 동안 생물들은 자연에서 사라지고, 언젠가는 자연이라고 칭하는 영역마저 소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증명되지 않은 유일한 개념은 지구와 지구 안에 있는 모든 존재가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한 채 오로지 인간의 사용과 혜택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보는 관점이다. 우리가 감사와 경외심을 가지는 것은 곧 소중히 여기고, 고무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그 길에 있다. 아직 그렇게 정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밝혀진 사실에 근거한 자연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을 발밑에 두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성장시키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만든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개인은 영원한 생명 속에서 계속 된다. 우리는 이 지구에서 하나뿐인 존재지만 그건 멧돼지, 곰, 호랑이, 제왕나비도 마찬가지다. 어떤 합리적인 프로토콜도 어느 하나를 나머지 전부보다 높이 치켜세우지는 않는다. 자연 안에서 모든 존재가 동등한데도 인류는 여전히 지구가 오직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양 행동한다.






달리기는 매우 공평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러닝을 하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모두 고독한 혼자와의 싸움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다고 해서, 배움이 짧다고 해서, 차별받는 인종이라고 해서, 여성이라고 해서 더 고독하고 힘든 것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고독과 힘듦이 적용되는 공평한 스포츠이다. 그 중간에는 노력과 인내, 그 끝에는 성취감과 뿌듯함, 영광마저 공정하게 배분하는 정직한 스포츠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러닝을 사랑하고 참여하는 것 같다. 지금 달리는 길이 트랙이든, 모래밭이든, 아스팔트 위든 두 발을 내질러 달리기만 하면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모두 취할 수 있는 위대한 운동이다. 달리기처럼 경쾌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감명 받았다. 저자에게 죽음은 '자연으로의 복귀'이며, 결승선에 닿은 때처럼 '축하'의 순간이다. 모두 모여 록 음악을 들으며 자신이 토양의 거름이 되어 자란 묘목을 한 그루씩 가져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벼운 뜀박질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죽음이 달리기처럼 경쾌하고 뿌듯한 순간이 되면 얼마나 멋질지 생각만 해도 벅차올랐다. 그의 달리기에 대한 사랑을 과분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죽을 때까지 달리고서야 원 없었다 라고 말할 것 같은 사람, 지구 4바퀴 길이 만큼을 뛴 사람, 80년 동안 러너로 살아온 사람의 러닝에 헌정하는 이 러닝일지를 뛰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구절을 꼭 글에 담고 싶다. 진정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달리기로 얻는 기쁨을 꾀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흡수하는 무해한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다. 2018년 10월에 저자에게 온 친구 맥스의 편지 내용이다. 그는 트랙 위의 시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달리기의 진정한 의미와 러너로서의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멋진 글을 썼다. 한 번이라도 달리기의 기쁨을 맛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감동받을 글이라고 확신한다.



 



시간이 참으로 속절없이 흘렀군. 베른트 자네처럼 나 역시 우리가 트랙에서 함께 달리던 저 눈부신 날들과 분투했던 도전을 소중히 간직해왔다네. 그 시절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거든. 햇빛이 쨍하던 날, 우리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맹위를 떨쳤지. 젊디젊던 1070년대 몇 번의 계절 동안은 하늘도 우리의 이름을 알았을 걸세. 생명의 기운과 황홀감이 밀려들었지만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느꼈지? 하지만 그때 우리들은 형언할 수 없는 마법 속에서 하나가 되어 시간과 필멸의 끈을 끊고 도망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네. 한때 우리는 꽤나 실력 있는 뜀박질 선수들이었고, 그게 아직까지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지.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야. 가슴과 영혼을 채우는 지복至福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자네 말대로) 우리가 누린 그 달콤한 시간, 황금 같은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라네.



달리기가 주는 황홀함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운 좋은 사람들인지. 모두 참 대단했지. 긴 시간 동안 불을 지펴준 자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네. 영원히 소중한 나의 벗 베른트, 최후의 순간까지 달릴 위대한 주자.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뉴리더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3.3.1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3.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3.2.6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2.6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3.1.2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1.25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59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7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