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만난 영화

leak424
- 작성일
- 2011.5.7
토르: 천둥의 신
- 감독
- 케네스 브래너
- 제작 / 장르
- 미국
- 개봉일
- 2011년 4월 28일
지금까지 정말 질릴 정도로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히어로 영화가 많이 나왔고, 그 중에서 슈퍼맨, 배트맨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히어로 영화의 거의 대부분은 마블 히어로다. 거의 매년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히어로 영화를 만들었던 마블 코믹스에서 올 해 들고 나온 히어로 영화는 토르다. 스파이더 맨, 헐크, 아이언 맨, 엑스맨, 캡틴 아메리카 등등 익숙한 영웅들의 이름으로 가득한 마블 코믹스였지만 토르는 무척이나 생소한 히어로였다. 내가 알던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둥과 번개의 신인데... 그 캐릭터가 마블 코믹스에도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코믹스가 다루는 토르와 아스가르드 세계가 내가 알던 토르라는 신과 그 세계와 똑같다는 걸 알았다. 진짜 신화를 가지고 만든 히어로물이라니. “정말 코믹스의 세계가 넓고 방대하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사설은 여기까지.
영화의 홍보 문구대로 지금까지의 수많은 히어로가 ‘인간’이었다면 토르는 북유럽 신화의 캐릭터 그대로 ‘신’이다. 묠니르라는 파워풀한 망치를 들고 다니며 천둥과 번개를 불러올 수 있는 신. 토르가 다른 히어로와 다른 점 중 하나는 힘의 원천이 되는 묠니르가 없으면 체격이 크고 몸만 좋은 일반 사람과 똑같다는 점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히어로 영화가 평범했던 사람이 특별한 능력을 얻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책임감을 깨달으며 성장하고 활약을 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에 비해 <토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능력에 대한 책임감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 능력을 되찾게 되고 활약을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상계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 이 세계를 통치하는 오딘은 전쟁까지 치룰 정도로 팔팔(?)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늙을 만큼 늙어서 후계자에게 왕위를 넘겨주어야 할 때를 맞이하게 된다. 그에게 있는 두 명의 아들 토르와 로키 중에서 그는 용맹하고 호전적인 장남 토르에게 왕위를 넘겨주려고 한다. 그렇게 왕위 즉위식을 거행하려는 순간, 휴전을 맺고 있던 요튼하임에서 침입자가 습격한다. 이에 분노한 토르는 오딘의 허락 없이 요튼하임을 쳐들어간다. 이에 실망한 오딘은 토르의 능력을 빼앗고 지구로 추방시킨다.
아스가르드 세계를 그려내는데 있어서 이 영화의 감독인 케네스 브레너의 장기가 빛난다. 사실 이 영화에 주목하게 된 게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케네스 브레너 때문이었다. <헨리 5세>, (러닝타임 4시간에 달하는) <햄릿> 등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에 능통한 감독으로서 블록버스터를 만들 것 같지 않은 감독이 만든 히어로물이라니. 그러나 적어도 아스가르드만큼은 히어로물보다는 다분히 브레너적이다. 이전에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만들던 느낌 그대로 신의 세계인 아스가르드를 무척이나 고전적인 느낌을 지닌, 묵직한 느낌의 세계로 그려냈는데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영화의 줄거리가 <헨리 5세>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도 한 몫 거두었으리라.)
케네스 브레너의 이런 세계관 덕분에 살아난 캐릭터는 로키다. 토르에 대한 히어로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감독이라면 로키보다는 토르에게 신경 쓰겠지만 왕권 안에서의 배신과 권력 다툼 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로키가 토르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토르에게 주는 애정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이 모든 걸 저질렀던 로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그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내적인 고뇌에 빠진다. 무식하게 힘만 내세웠다가 힘의 올바른 사용과 그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토르보다는 로키가 훨씬 더 입체적이고 공감할 부분도 많이 있다. 훨씬 더 똑똑하고. 이 둘의 갈등을 1차원적으로 선과 악의 대립으로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스가르드 세계와 그 속의 인물 관계와 권력, 음모, 갈등 등의 이야기가 (케네스 브레너 감독의 영화답게) 잘 구현되어있지만 영화는 딱 여기까지다.
토르가 지구로 추방당한 이후,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다소 심심하고 가볍다. 기존 히어로물에 비해 차별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고전적이고 묵직한 느낌의 아스가르드 세계와는 달리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기존의 히어로물과 차별점이 거의 없고, 로맨스는 평이하고, 몇몇 장면은 오그라들며, 힘을 잃었다는 점에서 오는 좌절과 자책감을 느끼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물의 고뇌는 전혀 없으며, 모든 게 너무나도 술술 풀리며 이야기의 전개에서 몇몇 부분의 흐름은 실소를 자아낸다. 단순히 힘이 강하다고 해서 다는 아니며, 공격보다는 방어할 때 힘의 사용이 더 의미 있고, 더 책임 있는 사용이 될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부분과 다수를 위한 희생을 통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너무나도 무난하다. 기존의 히어로 영화와는 반대 방향을 통해 깨달음과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기존의 히어로물과 다를 게 전혀 없다.
CG와 시각적인 볼거리도 아쉬웠다. 아스가르드 세계의 CG와 토르가 지구로 추방되기 전까지의 액션 장면은 확실한 눈요기를 선사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볼거리와 액션의 강도가 약해지고 심심해진다. 아스가르드 세계가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전반부에는 신기하게 느껴졌던 CG가 후반부에 가서는 심드렁하게 느껴지고, 막강한 적이 등장해야 할 타이밍에 나타나는 적들은 너무나도 시시하고 쉽게 넉다운된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다소 짧은 길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지막 대결은 너무나도 싱겁고 급작스럽게 끝난다.
영화는 결국 <어벤져스>를 위한 전초전 수준에 머무른다. 상당히 독특한 히어로물이 될 뻔했지만 결론적으로 영화가 가지고 있었을 그 어떠한 야심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어벤져스의 일원 중 한 명인 토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감칠맛 나기 직전까지 끌고 간 후 영화는 마무리 짓는다. 예상외로 작은 스케일에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 이 영화는 결국 어벤져스의 또 다른 장편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난한 킬링 타임용 영화로서는 손쉽게 추천할 만 하다.
p.s.
1. 작년 <아이언 맨 2>에 이어서 올 여름 시즌의 (공식적인) 첫 번째 블록버스터도 결국 <어벤져스> 밑밥 깔기 목적의 영화였다. 호크아이가 나오고, 스타크 이야기도 나오고, 대놓고 쉴드 이야기가 나오고(작년에 <아이언 맨 2>를 보지 않았다면 <토르>를 보면서 “응?” 이랬을 거다.), 마지막에 엔딩 쿠키까지. 영락 없는 <어벤져스> 기대 증폭용 영화다. 그리고 올 여름에 나오는 <퍼스트 어벤져>도 결국 <어벤져스>의 떡밥 쌓기 목적만 달성하고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정도 되면 내년 여름 시즌의 첫 번째 블록버스터인 <어벤져스>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게 만든다. 잘 나오지 않는다면 2년 동안 공들여서 한 마블의 떡밥 공사는 한 줌의 재로 변할테니.
2. 보면서 중간에 제레미 레너가 왜 나왔는지 궁금했는데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어벤져스의 일원 중 한 명인 호크아이로 제레미 레너가 캐스팅 됐다고 하더라. 본 시리즈에도 캐스팅 되고 톰 크루즈 대타로 미션 임파서블을 이끌어 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무튼 이 배우 갑자기 확 떴다. 작은 영화에서 블록버스터로 범위 확장. 정말 부러운 배우다.
3. 2D로만 봤다. 그리고 이건 절대 2D 관람가다. 3D로 보면 안 될 영화다. (그리고 3D로 보신 분들의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2D로 봐도 어둡고 색감이 많이 죽어있는 장면들이 적지 않게 있는데 이걸 3D로 본다고? 에이. 농담도 심하셔. 이러면서 가볍게 넘어가고 싶지만 왠만한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는 죄다 3D 상영이다. 그러면서 (배급사 사정 때문인 걸로 알고 있는) 3D의 꽃이자 3D를 보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인 아이맥스 3D 상영은 아예 없다.
4. 보고 나서야 알았다. 아사노 타다노부가 이 영화에서 나왔다는 것을. 분량이 안습이다. 나탈리 포트만도 나오는데, 주연급 캐릭터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비중이 가슴 아프게 한다. <리쎌 웨폰> 시리즈에서 주인공 만큼이나 한 성질하는 여형사로 나온 르네 루소도 “정말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여전한 포스를 보여주시는 안소니 홉킨스 정도. 맞다. 헤임달이 정말 멋있었는데 배우 이름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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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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