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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d20
- 작성일
- 2013.12.4
인문학, 동서양을 꿰뚫다
- 글쓴이
- 박석 저
들녘
공자(孔子)가 “사(賜: 자공)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라고 묻자
자공이 “그렇습니다. 아닌가요?” 라고 대답했다.
이에 공자는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 뿐이다.”라고 하였다.
위 내용은 논어의 구절이다.
일이관지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뚫는 다는 뜻이다.
제자들의 눈에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해박하게 답하는 공자가 존경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내 머릿속에 대단한 지식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그 하나가 실마리가 되어 모든 질문에 답 할 수 있고
많이 아는 것 처럼 보일 것이다.나는 하나의 이치를 알 뿐이다.
공자가 일이관지 한다고 할 때의 그 하나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이 복잡한 세계나 인간관계의 현상들을 하나로 꿰어 설명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하나를 알고 그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어 통달 할 수 있다면 분명 멋진 일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이관지가 생각이 났다.
동서양의 종교,철학,문학,회화,음악,건축 문화의 전영역에 걸쳐 비교하고
일목요연하게 설명 할 수 있는 것은 일이관지 할 수 있는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대교약졸일 것이다.
대교약졸이라고 하니 화광동진이 또 떠오른다.
서문에서도 말했듯이 저자는 인문학자이자 명상수행자이다.
과거에 무기한 단식 수행을 통해 통찰 한 것 중의 하나가 화광동진이라고 한다.
화광동진과 대교약졸이 서로 쌍을 이루고 있는데,
저자의 내면과 전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치가 대교약졸에 앞서 화광동진이라는 생각이다.
명상이나 종교적 수행을 통해서 이 세계의 본질을 안다는 것은 결국
벌어지고 있는 현상적인 이 세계만이 아닌 초월적인 어떤 세계가 있음을 상정한다.
예수도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였고 불교도 윤회나 깨달음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그 모든 세계는 성스러운 초월의 세계이다.
성스러운 초월의 세계를 깨달았지만,
성스러운 초월의 빛을 감추고 현상계인 울고 웃는 이 세상의 일상으로 돌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 화광동진의 의미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노자나 옛 각자들도 세상과 하나됨을 말 하였지만 저자는 그 보다 더 적극적인 참여의 의미로 완전한 화광동진을 말한다.
화광동진이 넓은 의미의 체라면,
종교 철학 문화를 읽는 코드인 대교약졸은 용으로 보고 싶다.
저자가 왜 이런 책을 쓸까? 의 그 바탕에는 화광동진적인 삶의 실천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用인 대교약졸로 종교,철학 다방면의 문화를 논하고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짚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큰 솜씨는 마치 서툰 듯 보인다는 뜻인 대교약졸이라는 단순한 키워드 하나로
까다롭고 어려운 종교와 철학,문화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갈까 호기심을 가지고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종교나 철학의 태동도 그때 당시의 문화나 역사적인 배경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음도 알게 된다.
동서양 문화의 특징들을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 할 수 있게 한다.
음악이나 회화 건축물을 보는 안목의 향상과 새로운 시각을 얻기도 한다.
내면이 꽉 찬 사람은 굳이 자신을 치장하거나 드러낼 필요가 없다.
그것 하나로 충만하기 때문이다.그러다 보니 표현에는 서툴다.졸하게 보이는 것이다.
진짜 고수는 자신이 고수라고 광고하거나 선전하지 않는다.
이미 스스로가 고수임을 알고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문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구나 자신의 삶이 아름답기를 원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삶을 이루는 종교,철학,문화의 미학을 통해 진정한 삶의 미학을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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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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