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닭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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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귀신통 소리
글쓴이
김대조 글/박은희 역
파란정원
평균
별점9.2 (5)
날아라닭다리




파란정원의 맛있는 역사동화 귀신통소리를 읽고, 석이와 피아노가 생생하게 보이는 듯 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동화는, 조선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것을 소재로 하여 제중약방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처절하고 아픈 우리 민족의 고통을 그렸다. 석이의 입장이 되어 울분이 터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길을 가는 모습에 교훈도 얻었다. 역사적 사건에 동화형식의 내용을 입혀 한층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강정고령보에서 낙동강 하류로 5km를 가면 사문진 나루터가 있다. 사문진 나루터는 1900년경에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 보텀 부부가 낙동강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대구로 피아노를 들어온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운반하던 인부들이 나무통같이 생긴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서 귀신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10월이면 사문진 나루터에서는 100대의 피아노 연주회가 열리기도 한다. 사문진 나루터는 조선 시대부터 낙동강의 유명한 나루터이기도 하다. 잔잔한 강물을 따라 나룻배가 오고 가고, 인근 주막에는 행상들과 나그네들의 허기진 배도 채우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나그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던 곳이다.

 

피아노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나무토막 안에 죽은 귀신이 들어 있어 괴상한 소리를 낸다면서 귀신통이라고 부르며 신기해 했다.

 

강객주의 심부름으로 부산포에서 올라오는 짐배를 타고 오는 비구니 스님에게 귀한 약재를 전달해준 석이. 약방에서 사문진까지 숨을 몰아쉬며 달려와 저 멀리 보이는 낙동강을 그제서야 바라보니 짙푸른 물빛은 미동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제자리에서 쉬는 법도 없었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쯤이야 사소한 듯 다 받아주고, 그저 아무 일 아니라며 그렇게 말없이 흘러가는 낙동강.

 

석이 아버지는 춘근이었다. 철길이 무엇인지 쇠말이 무엇인지 본 적도 없는 이들이 그저 일하러 가면 일당을 넉넉히 준다는 말만 듣고 모여, 더러는 억지로 끌려와서 영문도 모르고 철길을 만드는 중이었다. 함께 일하는 덜딸이가 언뜻 보기에 흰쌀밥처럼 보였지만 바작바작 모래가 씹히고 콩알만한 돌멩이까지 섞여있는 밥을 먹다가 십장을 향해 일한 돈도 안주면서 먹는걸로 장난친다고 대들었다. 오 순검과 함께 긴 검과 곤봉으로 덜딸이를 해한 십장.춘근은 눈이 뒤집어져서 덜딸이를 해한 이들에게 나가다가몽둥이 찜질을 당했고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석이는 아버지를 위해 몸에 좋은 약초를 캐고 돈을 번다. 강 객주가 준 약첩까지 감사히 들고 약방을 나와 동산을 넘을 즈음 헤이! 아녕!”, “갠차나. 곱먹지 마.” 라고 말하는 눈이 시퍼런 도깨비같은 사내가 말을 걸어온다. 대낮에 만난 귀신에 석이는 줄행랑을 치고 만다.

 

다시 객주의 심부름으로 혜안스님을 만나러 사문진 나룻터에 간 석이는 나무로 짠 커다란 상자를 보고 사람들이 신기한 듯 구경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관처럼 생긴 나무통, 무겁고 검고 처음보는 물건. 사람들에겐 호기심보단 무서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그것을 귀신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귀신통을 옮겨줄 짐꾼이 필요하다기에 보릿고개를 걱정한 석이도 다리를 달싹이며 작업에 참여하고자 했다. 이 귀신통은 서양선교사 사보담이 가져온 피아노라는 악기였다.

 

손잡이도 없고 매우 무거운 이 물건을 어떻게 옮길 것인가 고민하든 일꾼들은 상여처럼 짊어지기로 결정하고, 새끼줄을 꼬아 피아노에 묶었다. 사무진 나루에 모인 사람들은 신기한 구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30여명이나 되는 일꾼들이 사흘이나 피아노를 이고 갔다.

 

사보담 선교사의 부인인 에피부인이 피아노를 연주하니 목련 꽃잎을 닮은 맑고 순결한 소리가 아련히 퍼져나갔다. 아버지를 닮아 노래를 잘하는 석이는 에피부인의 피아노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무슨 일인지 거리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이 국모를 죽이고 백성을 약탈함에 분노한 벽보가 붙어있었다. 약방은 순검들이 아수라장을 만들어 버리고 사람들을 위협했다. 불온 문서를 게시한 강 객주를 잡아들이려는 오 순검에게 당당히 따라나서는 객주 어른.

 

축 처진 어깨의 석이는 노래를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던 에피부인의 말이 생각났다. 피아노로 아리랑을 연주해주는 그녀는 석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작은 불꽃들이 모여 세상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제중약방의 권리를 왜놈들에게 모두 넘기는 댓가로 풀려난 강객주와 약방 식구들은 모두 흐느껴 울었다. 옥사한 혜안스님의 소식을 들은 석이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사보담 선교사는 석이 아버지의 병환 치료를 돕고자 의사를 모시고 왔고 석이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복사꽃이 눈부시게 핀 날에 아버지는 떠났다. 양지바른 산 아래 잘 묻어 드리고 내려오는 내내 석이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불러준 노래가 피아노의 울음소리와 함께 자꾸만 귓전에 들렸다.

 

제중약방을 다시 찾기 위해 뜻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로 했다. 피아노 연주회를 열어서 말이다. “한 끼의 밥처럼 조선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합니다.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노래처럼 희망이 널리 퍼지면 조선인이 원하는 밝은 세상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전 피아노 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고 싶었습니다. ”라는 사보담 선교사의 말에.

 

에피부인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자 사람들은 홀린 듯 눈과 귀를 한곳으로 모았다. 피아노의 맑은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 귀신통이라 카길래 귀신 곡소리라도 날 줄 알았는데 영판 잘못 알았네.” 사람들은 웃고 좋아했다. 여기에 석이의 노랫소리까지 더해지자 사람들의 가슴 속 깊이 여운이 남았다. 강 객주는 말했다. “흩어진 소리가 모여 제자리를 찾았을 때 아름다운 노래가 되듯 우리도 힘을 합쳐 제중약방도 살리고 약전 골목도 다시 살립시다. 여러분의 힘을 모아주십시오.”

 

이빨빠진 호랑이가 된 오 순검은 노다지로 한몫 잡을 생각에 사로잡혀 석이와 최의원이 파놓은 구덩이에 빠졌다. 새로운 금광을 판다는 말에 전 재산을 건 것이다. 물론 금광같은건 없었지만. 백성들 피 빨아 모은 이 돈은 제중약방을 일으키는데 사용하기로 했다.

 

강물처럼 세월은 흘러 객주어른은 중노인이 되었고 석이는 제법 청년티가 났다. 여전히 나라를 빼앗으러 안달난 일본의 도적심보에 울분과 깊은 한숨이 배었지만 석이는 말했다. “객주 어른, 저는 믿습니다. 세상이 바로 설 날이. 믿는대로 노력할 겁니다. 제가 갖고 있는 불꽃을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줄 겁니다. 틀림없이 세상은 밝아집니다.”

사문진의 하얀 모래톱은 유난히 밝았고 강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귀신통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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