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vel..

때비
- 작성일
- 2011.10.10
어나더
- 글쓴이
- 아야츠지 유키토 저
한스미디어

일련의 '관 시리즈'로 국내 미스터리 독자들에게도 본격 추리의 맛을 전달했다고 소개되는 일본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 그의 소개글에는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수수께끼의 건축가가 일본 곳곳에 만들어 놓은 독특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이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1987년 발표된 시리즈의 첫작품인 '십각관의 살인'은 당시 일본 미스터리계의 주류였던 사회파 리얼리즘 스타일의 변격 미스터리에 반기를 들고, 추리문학 고전기의 본격 미스터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신본격 운동'의 효시가 된 작품이라고까지 소개된다.
본격 미스터리를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작가의 작품은 얼마전 읽어본 '살인방정식' 딱 하나 뿐이다. 오직 트릭에만 집중하는 본격 추리소설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기는 했지만, 독자를 사건에 한발 더 다가가게 만드는 방식이나 실현 가능성에 상관없이 이론적인 가능성이 명확한 트릭을 사용하는 등 본격추리를 즐길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책장을 덮고서는 부담없는 추리소설을 읽고 싶을때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작가의 또다른 작품이 눈에 띄었다.
살인방정식은 작가의 초기작품이라고 했는데, 이건 최근작이었다. 2011년 미스터리를 읽고 싶다! 1위, 2010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3위 제10회 본격미스터리 대상 최종후보작.
작가 스스로 자신의 새로운 대표작이 될 거라고 공언하기도 한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는 성장의 열병에 휩싸인 청소년들의 미묘한 심리를 건드리고 있는, 미스터리와 호러를 결합한 청춘 호러 미스터리물이다. 도쿄에서 지방 도시의 요미키타 중학교에 전학 온 사카키바라 코이치는, 뭔가에 겁먹고 있는 듯한 반의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낀다. 코이치는 이상한 존재감을 발하는 미소녀 미사키 메이에게 이끌려 접촉을 시도하지만 수수께끼는 오히려 더 깊어질 뿐. 그런 가운데 반장인 사쿠라기 유카리가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비밀을 찾으려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코이치 앞에 새로운 수수께끼와 공포가 기다리는데..
신본격 미스터리계의 기수라 소개되는 아야츠지 유키토. 하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호러 미스터리 대표작이라고 소개되고 있었다. 본격 추리소설을 완전 좋아하지 않는 나같은 독자의 경우엔 2009년 출간된 작품을 대표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게 좀 어색한 느낌이 드는게 당연했다ㅡㅡ 어색했다. 가끔 '본격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면 되겠네~'라는 정도의 이미지인 아야츠지 유키토에 대한 찬사가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내가 좀 그렇다.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에도 책의 겉표지나 띠지에서 뜬금없다 싶을 만큼의 찬사나 광고가 있으면 거부감이 든다. 이 책의 첫인상도, 솔직히 별로였다.
눈길을 잡아 끈건 표지의 그림이었다. 홍채 이색증(虹彩異色症, Heterochromia iridum).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른 현상을 일컫는 단어다. 하지만 이 대신에 더 많이 쓰이는 표현이 있다. 오드아이(odd-eye). 홍채 세포의 DNA이상으로 멜라닌색소 농도 차이 때문에 생기는 이 현상은 인간에게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주로 페르시안, 터키쉬 앙고라 등 흰 색의 고양이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보통 과다색소 쪽은 짙은 갈색, 과소 색소 쪽은 짙은 파란색을 띈다. 표지에 그려진 소녀의 눈동자는 한쪽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왜인지 그녀가 오드아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그곳에 있을 리 없는 누군가의 모습이 사진에 찍혀있다는.. 일반적인 학교괴담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게 조금 오싹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프롤로그에 담아두고 시작되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는 지방의 어느 중학교, 어느 반에만 대대로 전해지는 연쇄적인 죽음을 그 배경으로 하여, 그 죽음의 비밀을 캐려는 소년 사카키바라 코이치와 소녀 미사키 메이의 미스터리한 경험을 들려주고 있는 청춘 호러 미스터리다.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으로는 풀어낼 수만은 없는 장르의 작품이기에, 특별히 하나하나 꼼꼼하게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안에서 유지되는 특유의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만들어낸 전학생이 느끼는 이상한 분위기의 학급, 존재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여학생, 그리고 전학생과 여학생 사이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 그 모든건 식상해보이는 학교괴담이 전할 수 있는 분위기 이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작가 고유의 특징인 잘 다듬어진 스토리 전개와 트릭, 철저한 복선은 이야기의 짜임새를 촘촘하게 만들고 있었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 내내 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독자의 혼을 빼놓는 반전이라는 소개문구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 반전은 단순하게 풀 수 있었다.
마음가짐 넷째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 작품이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물론 그 답을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Who?를 어렴풋이나마 짐작이라고 할 수 있도록 해준『구관조의 "레이! 잘 잤니? 레이. 어째서 레이.. 어째서? ..기운, 내요. 기운.." 등의 말』이 있었다. 그리고『할아버지의 불쌍하게 말이야. 리츠코는 말이야, 불쌍하게, 불쌍하게 말이지. 리츠코도, 레이코도..』역시 그랬다.
이 두군데서 느낀 위화감은 이 작품에서 가장 주요했던 반전 Who? 를 풀어내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약간 아쉬웠다. 어떤 본격 추리소설의 리뷰에도 적어놓았는데, 난 수수께끼를 푸는 것보다 멋지게 속아넘어가는게 더 좋다.
책을 다 읽고 출판사 서평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서야 아야츠지 유키토가 본격추리 작품만을 썼던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다. 서스펜스 색채가 짙은 '암흑의 속삭임'과 '황혼의 속삭임'을 묶어서 속삭임 시리즈라고 불리는 소설, 그 밖에도 '안구 기담'이나 '미도로가오카 기담' 같은 호러 소설도 써온 작가란다. 그러니까 아야츠지 유키토는 자신의 두 가지 작품 경향 -본격추리와 호러- 을 잘 버무린 청춘 호러 미스터리인 이 작품을 두고 스스로 자신의 새로운 대표작이 될 거라고 공언했다고 한다. 남들이 붙여준 말이 아니었던거다ㅡㅡ '어나더'는 일본에선 추리 마니아뿐만 아니라 뭇 청소년들까지 열광시켰으며,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고.
재미보다는 분위기, 반전보다는 짜임새가 좋았던 작품. 두껍지만 결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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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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